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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정의 히말라야 환상방황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4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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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정을 돌아보게 만드는 히말라야

 

 

정유정 작가의 소설 <내 심장을 쏴라>를 읽은 뒤였다.
소설 속 승민이 동경하는 히말라야를 향해 비행할 때 내 심장에서도 함께 폭죽이 터지는 것 같았다. 작가가 히말라야를 다녀온 뒤 에세이를 썼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책을 찾아읽었다. 히말라야를 떠나기 전, 작가는 쫓기듯 살아온 인생에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 심장을 쏴라 마지막 구절인 '전사를 찾아서'를 가슴에 품고 떠난다.

이제 출발선에 섰다. 과연 작가는 무얼 찾아 히말라야에 온 걸까?
출발할 때의 사진은 우리나라의 가을하늘 같고 멀리 보이는 히말라야는 신비로우면서도 웅장했다. 그 길 위에서 작가는 나마스테가 '당신 안의 신께 경배 드립니다'라는 뜻이라는 말을 듣고 어머니를 떠올린다. 뒤이어 동생들만 없다면 인생이 훨씬 즐거울 거라 여기던 선머슴 같던 어린 시절 자기를 불러일으킨다. ‘엄마가 없을 땐 네가 엄마’라던 바위처럼 무거운 말로 인해 작가는 아이였던 시절부터 아이다운 욕망을 누르게 된다. 길가 모르는 사람에게 ‘나마스테’라고 하고 싶어도 망설여지는 손, 그렇게 작가는 부끄럽고 어색해한다. 작가는 원래 태생부터 여리고 여린 천생 여자는 아니었을까? 어머니가 말씀하신 죽는 시늉을 하지 않기 위해 겉으로만 강인한 척해왔던 것은 아니었을까?

작가는 종주를 하면서 시시때때로 보는 자극들에서 과거의 장면을 소환시킨다. 코카콜라 광고판을 보고 민주화항쟁 정점 무렵의 광주, 목 안에서 최루탄이 터진 것 같았다는 코카콜라의 강렬한 경험이 지금 여기서 재현되는 것이다. 땅거미 깔리는 모래밭을 보다가도 툭 튀어나오는 계집아이, 마낭에서 마주친 어린 남매는 과거 나의 모습과 마주하게 된다. 제 삼자인 관찰자가 되어 나를 살펴본다. '그래, 맞아 내가 그랬지. 내 모습은 저랬었어.' 하는 것이다. 또한 여행지 특유의 흥분되고 현실과 살짝 동떨어진 공간에서 불쑥 끼어드는 택배기사의 전화, 엄마 기일을 알려주는 남동생의 문자 한 통, 작가가 현실의 끈을 놓지 않도록 알람을 울려 깨워준다. 이렇듯 여행은 내 삶의 연장선에서 과거, 현재를 이어준다.

작가는 소설 <생존자>를 빌어 자기 생의 구원이 파멸과 동일 선상에 놓여 있다고 보고, 히말라야에서 처음으로 그 주인공에게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스물두 살부터 시작된 어머니의 투병으로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던 20대의 자기, 세 동생을 등에 업고 엄마로 살아온 자기 모습을 말이다. 세상을 전쟁터로, 가정을 살아남아야만 하는 생존터로 살아왔던 작가는 히말라야에 와서까지 산과 전쟁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고 의구심을 던진다. 엄마로서 살아오느라 자신 안의 아이는 잃어버린 셈이었다. 그 아이는 히말라야에서 잊을만하면 자꾸 작가 앞에 나타났다. 왜 이제야 나를 찾으러 왔냐고, 그동안 내가 보고 싶지 않았냐고 말이다. 엄마의 역할을 하는 것이 당시로서는 생존의 길이자 도구였지만, 이제는 그것이 나를 자꾸 무력하게 만들지 않느냐는 것이다.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동생들 없이 놀다 들어오는 게 소원이요, 어여쁜 20대를 맘껏 누려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혼잣말이 나에게까지 들려오는 듯하다.

고산병 증세가 심한 날은 우연히도 어머니의 기일, 히말라야에 와서야 22년 전 오늘 울지 못했던 속울음이 터져 나온다. 작가는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한 번 엎어지면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 두려움은 우리를 추동시키는 힘이지만, 그것이 너무 커버리면 자기가 조금씩 사라지게 된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게 되는 것이다.

여행 십일째, 고산병 증상이 절정에 닿을 때 아들을 낳는 순간이 재현된다. 그 때 작가의 바람을 읽고 애달팠다. '너는 네가 원하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라고.' 이 약속 하나에 작가의 갈망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드디어 쏘롱라패스에서 타임캡슐을 넣으며 스스로에게 다시 내 인생을 상대할 수 있을까 하고 묻는다. 싸움닭 기질은 어디 가는 게 아닌가보다. '전사'라고 표현한 걸 보니. 나는 작가가 전사 대신 히말라야처럼 부드러운 여신의 모습을 찾길 바란다. 분명 자기 안에 있으므로. 자기를 찾는 것은 진정한 나의 욕망을 찾는 것이다. 가족이나 타인의 욕망이 아닌 내 속에서 용암처럼 흘러나오는 욕망. 작가에게 그것은 글쓰기였다. 그 다음 최초 시도는 히말라야 등반? 정유정 작가 본디 모습으로 존재해주어 독자인 나는 참으로 기쁘다. 책을 읽는 동안 마음만은 히말라야 등반을 함께 했다. 숨이 헉헉 찰 때도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날 때도 아들을 떠올리며 죽음과 사투를 벌이는 듯한 순간도 손에 잡히는 것처럼 생생했다.

정유정 작가와 간접 등반을 했으니 나도 언젠가는 꼭 종주하고 말리라! 히말라야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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