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위대한 질문 - 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위대한 질문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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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 공부하는 학생들 틈에서 "인간의 위대한 질문"을 읽었었다

평소였다면 음악이나 들으면서 편안하게 방에서 읽었을 것이지만 이 책은 왠지 어수선한 기분으로 읽기에는 부족했다

토요일 오전 "인간의 위대한 질문"을 다 읽고 후기까지 쓰고 나니 저녁이 되었다

오랜만에 머리를 너무 굴렸더니 넉다운이 되어서 "신의 위대한 질문"은 얼마 읽지도 못한 채 덮어야 했다

 

일요일 오전 늦게서야 눈을 뜨고 멍한 상태에서 커피 한 잔만을 마시고 독서대까지 챙겨들고 책을 챙겨서 도서관으로 갔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은 시간 도서관 열람실~

학생들도 그리 많지 않았지만 지난번에 비해 확실히 조금은 어수선하다

자리를 잡고 독서대와 수첩에 연필까지 꺼내들고 어제 읽다만 부분부터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기원후 4세기가 되자 인간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원조를 가지고 태어나 스스로 구제받을 수 없는 '죄인'이 되었고, 이 개념은 그 후 그리스도교의 핵심교리로 자리 잡았다. 
페이지 : 21

이런 ㅠ,ㅠ

몇 페이지를 읽지도 않았는데 예전에 가졌던 궁금증 중 하나의 답이 이렇게 나왔다

전도를 받을 때마다 늘 걸리는 부분이었고 언쟁의 대상이 되었던 '원죄'라는 것이 예수나 하느님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한 명의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개념이라니~~

이 부분만 제대로 알았더라도 그 많은 언쟁을 하지 않았어도 되었을텐데 말이다

결과적으로 나에게 전도를 했었던 그들도 이런 사실을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원죄 어쩌고만 하지 않았어도 그 시절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조금은 줄었을텐데 ㅎㅎ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죄는 자신이 꼭 해야 할 일을 알지 못하고 그것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으며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페이지 : 40

조금은 기운이 빠진다

지금의 나는 죄인일까??

 

생명나무는 영생을 보장하는 열매가 맺으며, '선과 악의 지식의 나무' 는 우주의 신비와 비밀을 푸는 '지식'이 담긴 열매를 맺는다 
페이지 : 48

에덴 동산에 있었다던 선악과의 정체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선악과는 에덴동산의 단 한 그루의 나무가 아니었으며 처음부터 선악과도 아니었다

 

이슬람에서는 알라신의 속성을 바로 '컴패션'이라 정의한다. 인간이 가진 컴패션이라는 속성은 아마도 인간의 이기적인 유전자를 억제하고 이타적 인간성인 모성애를 배양시켰을 것이다
페이지 : 67

 

에덴의 동쪽에 거주하기 시작한 인간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내 존재의 위상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 그것이 동생이든 친구든 이웃이든 그들이 어디 있는지가 중요하다
페이지 : 79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인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신이 카인에게 아벨이 어디에 있는지 묻자 가인은 퉁명스럽게 모른다고 답한다

그저 사람의 이름이라고 생각했던 '아벨'이라는 이름이 지닌 의미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그는 가인에 의해 살해될 헛되고 슬픈 운명을 지닌 존재로만 남을 수밖에 없었던 거 같다

성경에 필요한 장치 중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동양에서는 개인이 한 가족의 구성원이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 이름 앞에 성을 붙이지만, 서양에서는 개인이 중요하기 때문에 자신만의 고유한 이름이 성 앞에 온다. 
페이지 : 99

예전에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말이다

 

선은 신이 인간에게 원하는 덕목인데 그 기준이 타인에게 있다는 것이다.
페이지 : 107

 

나와 다르거나 익숙하지 않은 것을 배척하지 않고 그것을 성찰의 기회이자 성김의 대상으로 만들 때 그 다름이 바로 신이 된다
페이지 : 111

서로가 틀렸다고 싸우고 있는 현대의 종교에서 이런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까??

단순하게 종교에서뿐만은 아닌 우리 사회 전반에 이런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아들을 죽이려는 아브라함의 행동은 앞서 설명한 '라이오스 콤플렉스'의 전형적인 예로 해석할 수 있다. 부정적인 아버지상의 원형인 라이오스 콤플렉스는 거의 모든 신화에 등장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페이지 : 127

이런 이야기들은 신화 관련 책을 보면 자주 나와 익숙했지만 "라이오스 콤플렉스'라는 이름은 처음 알게 되었다

 

현현(顯顯) 이란 뜻의 에피파니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대상 속에서 갑자기 경험하는 영원한 것에 대한 통찰의 의미한다
페이지 : 148

앞서 읽었던 '인간에 대한 위대한 질문"에서도 느낀거지만 저자는 램브란트와 카라바조, 샤갈의 작품을 좋아하는 거 같다

주제와 맞는 그림이기도 하지만 그림에 대한 이야기도 다시 읽을 수 있어 재밌었다

 

아브라함의 종교들, 즉 기원전 4세기경에 등장한 유대교, 기원후 1세기의 그리스도교, 그리고 기원후 7세기의 이슬람교는 모두 셈족인들이 만든 종교이다. 이들은 자신을, 셈 즉'이름'의 후예라고 믿었다  
페이지 : 190

비슷할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뿌리가 같은 종교들끼리 몇천 년에 걸쳐서 싸우고 있는 셈이다

 

우리가 신을 만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인간이 정해놓은 시간과 장소에 신을 묶어놓았기 때문이다. 
페이지 : 191

 

메시아는 히브리어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이다. 다윗은 메시아라는 칭호로 불린 최초의 인물이다
페이지 : 231

사무엘이 다윗의 머리에 기름을 부어 지도자로 추대한 것에서 유래된 말이라고 한다

 

자신을 높은 경지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응시'야말로 우리가 지녀야 할 덕목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항상 자신을 성찰하고, 과거의 잘못했던 자신을 인정하고 변화시키려는 마음가짐이다  
페이지 : 258

 

길은 목적지가 아니다. 길이 있다고 믿고 일어서는 순간 그 길이 목적지가 되기 때문이다.
페이지 : 269

 

한자로 '섭리(攝理)' 는 '아프거나 병에 걸린 몸을 잘 조리하다'라는 뜻 뿐만 아니라 '자연계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와 원칙' 혹은 '우주만상에 숨어 있는 신의 뜻'이라는 의미이다
페이지 : 272

뒤의 뜻은 알아도 앞의 뜻의 전혀 의외였다

 

인생의 고통이란 참을 수도 있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참을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때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극복할 수 있다. 
페이지 : 274

살아야만 하는 이유가 분명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선뜻 이 안에 스스로를 포함시키지 못하는 자신이 서글퍼지는 것은 ㅠ.ㅠ

빨리 넘어가야겠다 

 

성대한 의례도 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자신 편이라고 믿는 인간의 정신적인 쾌감을 위한 장치나 다름없었다
페이지 : 289

 

법은 인간이 행복에 도달하기 위한 징검다리다
페이지 : 295

 현대 우리 사회에서 이 징검다리는 부자와 힘 있는 사람들만이 건널 수 있는 그런 다리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정의는 나의 입장에서 옳은 것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구성원의 입장, 더 나아가 상대방의 입장에서 세상을 보는 것이다.
페이지 : 295

 몇달전에 다시 읽었던 "앵무새 죽이기"를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어 더욱 공감이 되었던 거 같다

 

한 종교만 옳다고 주장하는 처사는 지난 2000년 이상 면면히 흘려와 인류 역사를 바꾼 종교에 대한 모독이다
페이지 : 300

 

종교와 이데올로기가 우리 삶을 오히려 더 점점 피폐하게 만드는 이유는 저마다 편리한 신을 자신이 정한 규칙대로 신봉하려 하기 때문이다
페이지 : 311

종교를 좋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오해가 아닐까 생각된다

생각해보면 종교를 종교 자체나 신이 아닌 그 종교를 자신들이 편리한 대로 믿는 신도들을 보고 싫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고 있었던 것을 종교 자체에 대해 하나둘씩 공부하면서 알 수 있었던 거 같다

 

신이 원하는 이상적인 삶은 바로 '선함'이다 그 선함은 우리 사회의 약자들에 대한 관심과 역지사지하려는 마음가짐,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다
페이지 : 312

 

철학은 내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논리적 난점인 '아포리아(aporia)'를 경험하는 순간 시작된다.
페이지 : 321

 

우리 스스로 최선이 무엇인지 찾기를 두려워하고 적극적으로 탐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페이지 : 345

하느님에게 화를 내는 요나를 보면서 낯설지 않았다

요나나 모세가 가졌던 의문들은 누구나 한 번은 생각하는 것들이 아닐까 생각된다

특히 모세의 모습은 지금까지 알고 있던 위대하기만 한 선지자의 모습이 아닌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자신 앞에 나타난 신에 대해 끝없이 의심하는 인간의 모습이라 친근하게 느껴진다

 

여기에서 '생기'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루아흐(ruah)'다. 루아흐는 모든 동식물에 깃든 생명을 유지하게 하는 어떤 것이다
페이지 : 362

책의 마지막 희망에 대한 부분의 앞서 읽은 책처럼 조금 김이 빠지게 한다

"희망이 고통과 절망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과연 고통과 절망을 겪어본 이들 중 몇이나 이 말에 동의할까??

니체의 말대로 희망이 없으니 고통과 절망을 느끼는 것이 아니겠는가

끝까지 희망을 주려는 저자의 의도는 백분 이해가 되지만 주말 오후를 도서관에서 이 책만 읽고 있는 나에게는 조금은 허탈해지는 마무리였다

 

그대로 뒷부분의 에필로그와 부록 부분에서 재밌는 것들을 알 수 있어 조금은 만회되었다

신이 자신이 하기 싫은 일을 할 존재를 찾다가 인간을 만들었다는 여러 나라의 신화를 보다 보니 웃음이 나왔다

솔직도 하셔라~~

 

이슬람의 '알라' 명칭은 '바로 그 신' 이라는 의미다. 
페이지 : 427

 

인간의 의무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직하고 완벽한 인간, 즉 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모습과 일치하기 위해 연습하는 일이다
페이지 : 462

에머슨이라는 사람이 쓴 글이라고 한다

그는 인간이 누군가를 가장 간결하게 표현한 사상가라고 한다

 

그저 오래전부터 공부하고 싶었던 기독교에 대한 공부만을 위한 책이 될 줄 알았는데 성경 속에서 이해가 가지 않던 부분에 대해서도 많이 알 수 있었지만 그 외의 다른 부분들도 많이 알 수 있어 흥미로운 책이었다

기독교에 큰 관심이 없더라도 많은 부분에서 다양한 지식을 쌓을 수 있는 책이었던 거 같다

도서관에서 장장 8시간을 꼼짝 않고 앉아서 읽어낸 책이라 더욱 뿌듯한지도 ㅎㅎ

여러 가지 부분에서 새로운 것들을 많이 알 수 있었다

 

[이 글은 21세기북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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