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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기장 이야기
송영애 지음 / 채륜서 / 2014년 12월
평점 :
왠지 모르게 정감이 가는 책이다
식기장이라고 하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다
말 그대로 식기를 넣어두는 장 즉 가구이다
옷장,, 신발장처럼 식기장 생각해보니 내 어린 시절에도 식기를 넣어두는 장이 있었다
하지만 우리 집에서는 식기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린 적은 없다
"찬장" 찬장이라~~ 왜 이렇게 불렀는지 모르지만 요즘은 우리 집에서는 식기를 넣어둔 장을 찬장이라고 부른다
이 식기장에 대한 책이 읽어 싶어진 것은 예능 프로그램 중에 시골에서 삼시 세 끼를 해 먹는 프로그램을 보게 되면서이다
시골 집도 그런 시골집은 요즘 시골에도 없을 텐데 ㅎㅎ
아궁이에 불을 짚이고 가마솥에 밥을 하고 곰국도 끓인다
집집마다 입식 주방과 싱크대로 인해 사라진 식기장이 이 프로그램에서 등장한다
그것도 내가 아주 어린 시절에 봤던 "찬장"과 흡사한 모양의 식기장이~ 왠지 정겨우면서도 서글퍼지기도 하는 묘한 감정에 빠져드는 것
같다
처음에는 그저 웃으려고 보기 시작한 이 프로그램을 보면 절구로 고춧가루를 빻고, 마당에 아궁이를 만들어 밥을 짓고, 국을 끓이고, 여러
가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옛날의 정서가 가득 묻어나는 생활도구들이 등장한다
화목난로~ 어린 시절 우리 집에도 이런 모양의 난로가 있었다
맷돌로 커피콩을 갈고 면포에 짜서 마시는 모습이 첨에는 조금 괴리감이 느껴졌으나 자꾸 보니 그 모습도 정겹다
드립기를 잊어버려서 커피콩 간 것을 아직 못 내려먹고 있었는데 면포는 어딘가에 있을테니 나도 한번 한약다라기식 드립커피를 시도해 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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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웅박은 그 안에 담는 물건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진다. 또 끈이 떨어지면 쉽게
깨진다. 그게 마치 어떤 남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여자의 인생과 보인다 해서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라고 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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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 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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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속담이라고 생각했던 뒤웅박이 실제로 존재했던 물건이었다
뚜껑이 달린 뒤웅박도 처음으로 알았고 그 쓰임새에 대해서도 처음 알았다
이 책을 보니 이 속담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요즘은 여자 팔자도 하기 나름이고 남자도 어떤 배우자를 만나는가에 따라 인생이 바뀌니 서로 간에 뒤웅박 팔자라고 하는 것이 맞는 표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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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쥐의 한자 표기는 '편북'이다. '복'이 '복福'과 소리가 같다고 일찍이 행복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나비는
부부금슬을 상징하며, 물고기는 다복과 부귀영화를 상징한다. 포도와 석류 문양에는 또 다산과 자손번창의 뜻이 담겨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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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 85-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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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편을 먹을 때마다 보던 문양들에 이런 의미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 했다
그저 속도 없고 고물도 없으니 너무 밋밋해서 문양이라도 넣은 줄 알았는데 이외에도 환갑잔치에는 '수복壽福'이 제사에 쓸 떡에는 '卍'
문양을 사용한다고 한다
또 집집마다 각자의 문양이 지닌 떡살이 있어 문양만 보고도 누구네 집의 떡인지 알 수 있으며, 뒤주와 마찬가지로 빌려주거나 빌리거나 하지
않는 그 집안만의 보물 같은 존재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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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와 소를 잡는 백정을 '쇠백정', 가죽제품을 만드는 피쟁이는 '갖바치'다. 소반을
만드는 '상백정'도 있다. 고리나 키와 같은 생활용품을 만들어 생계를 꾸리는 고리장은 '유기장', '고리백장','고리백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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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 1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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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들 백정이라고 하면 소나 돼지를 잡는 '쇠백정'만 생각하기 쉬운데 그게 아니었다
의적으로 이름난 임꺽정은 쇠백정이 아닌 고리백정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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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구어진 쇠를 집게로 잡고 있는 장인이 바로 '대장大匠'이다. 망치를 들고 쇠를
두드리는 사람을 '매질꾼', 화덕에 풀무질을 하는 사람을 '풀무꾼'이라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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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 1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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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대장장이라고 알고 있던 쇠를 만지는 기술자가 이렇게 다양한 분야로 나누어져 있으며 그 안에서도 분업화가 제대로 되어있었다고 하니 다시
한번 놀랍다
대장간을 본 적이라고는 사극에서뿐이라 늘 한 명이 다 한다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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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이 포크를 널리 사용하게 된 건 프랑스 시민혁명(1789-1794) 이후이다. 삼지창 모양의 포크가 나온 것도
그 무렵이다. 프랑스 혁명의 기본정신인 자유, 평등, 박애를 상징했다. 삼지창 모양의 포크는 귀족들의 반발로 오래가지 못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네 갈래 포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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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 185-18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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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도 너무나 편하게 사용하고 있는 포크의 역사도 알 수 있었다
포크가 프랑스 혁명에 관계가 있을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못 했다
그 포크가 지닌 의미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귀족들의 반발로 그마저도 오래가지 않았다니 예나 지금이나 기득권층은 안되는 것이 참 많은
종족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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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기의 어원은 '복福'이다. 물건을 싸서 복을 간직한다는 민간 신앙에서 출발한 것이 바로 보자기다. 보자기는
하나의 용기容器이자 포장지다. 상대방에게 예를 갖추어 물건을 정성스럽게 싸서 보냈던 것이 하나의 문화를 이루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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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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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기~
요즘은 잘 볼 수 없는 물건이다
이 책에 나오는 물건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어느 순간인가 사라져버린 보자기를 어린 시절에 가지고 놀던 기억이 문득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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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남자가 한 손에 담을 수 있는 한줌 곡물의 양은 한 '홉合"이다. 양손에 담을 수 있는 한 움큼은 한 '되升'
, 그 열 배는 한 '말斗'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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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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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 살다 보니 익숙하게 듣던 말들이지만 언제나 다시 묻게 되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몇 kg냐고??" 하고 말이다
작년 처음으로 블로그에서 우리 집에서 키운 농작물들을 팔면서 어머니와의 대화중에 가장 만이 사용한 말인 것 같다 ㅎㅎ
이제는 대충은 알지만 그 기준이 이런 거였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유래를 알고 나니 조금 이해가 더 잘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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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사발'이라는 말에는 일본인의 의도가 숨어있다. 조선 사발의 품격을 깎아내리고 전통
자기 기술의 명맥을 끊기 위해서 그런 이름으로 폄하한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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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 2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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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은 정말이지 한국의 도자기를 사랑하나보다
하지만 잘못된 사람의 방식을 도자기에서도 여실히 보여주는 것 같다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이 과연 진정한 사랑일까??
그들의 김치에 대한 애정도 같은 것 같아 안타깝다
그들이 자신들의 문화라며 그렇게 애지중지하는 차도茶道도 이 사발에서 시작되었다고 하니 막사발에 차를 마시는 자신들을 어떻게 말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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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는 조선 초기까지는 왕실에서만 사용했다. 그나마 임금의 전유물이었다. 동궁전
주인인 세자는 청색 그릇인 청자만 사용해야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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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25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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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라고 하면 백자보다는 청자를 높게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철 성분을 완전하게 제거할 수 없었기에 백자가 아닌 청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유약 역시 철 성분이 없는 유약을 개발하지도 못했기에 청자가 백자보다 먼저 나온 것이라고 한다
최고의 도자기로 생각했던 고려 시대의 상감청자도 그런 이유도 있었다니 신비한 푸른색의 비밀이 약간은 풀린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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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에 밥을 담는 건 오복을 담는 거야. 그래서 밥을 다섯 번으로 나눠서 푸는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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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 : 2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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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랐다~
그릇에 밥을 푸는 것이 이렇게 큰 의미가 있을 줄은~
그저 배고픔을 면하고 필요한 영양소를 채우기 위해서 먹었던 밥 한 그릇에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던 것이다
책은 식기장과 우리의 조상들이 사용하던 식기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통해 그리움과 정겨움의 정서를 알려주는 듯하다
잊혀졌고, 지금도 하나 둘씩 잊혀지고 있는 우리 생활의 많은 부분들을 단편적으로 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이 글은 책좋사서평단으로 채륜서에서 제공받은 책을 읽고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