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
문득 생각해 보니 '이방인'이란 단어를 이렇게 많이 사용했나 싶다.
그래서일까 이 유명한 '이방인'이라는 작품을 몇 번인가 읽었다고 생각했던 거 같다.
작품의 내용을 알고 있고, 저자에 대해서도 남들만큼은 아니 그들보다 조금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기에 굳이 읽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던 거 같다.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면 어제인지도. 잘 모르겠다."
이방인이라는 작품을 읽지 않았어도 이 유명한 첫 문장이 주는 이미지가 작품을 다 읽고 나서도 머릿속에 맴돈다.
세상에 어떤 아들이 자신의 엄마의 죽음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물른 주인공과 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해서는 별다른 해설이나 설명이 없으니 잘 모르겠지만 요양원에 가기 전까지 함께 살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이가 나쁘지는 않았을텐데 아무리 좋게 생각한들 '냉정한 현실주의자'라는 표현밖에 할 수 없을 거 같다.
주인공인 '나'는 자기 자신에 솔직할 뿐이다.
그는 이 솔직함이 타인들에게 조금은 불편한. 그들이 '예의와 상식'이라는 껍데기 안에 숨기고 싶어 하는 것들이라는 보통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게다가 그는 이런 자신을 숨기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미 이런 부분에서 그는 세상의 일부분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오만한 이방인'
그는 그저 자신과 자신이 처한 상황에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고 타인에게도 거짓 없이 솔직하게 말했고 행동했을 뿐이지만 그를 아는 사람들, 직장 상사,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만난 사람들, 여자친구. 그를 살인자로 만든 재수 없는 이웃까지 그래도 이 사람들은 후에 만날 사람들에 비하면 이기적이긴 하지만 양호한 편이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평소에도 기껏 인사 정도만 하는 이웃 사람 레몽에게 별거 아닌 도움을 주지만 그것이 화근이 된 셈이다.
아니 레몽이라는 인간 자체가 주인공에게 악연을 넘어선 악마가 되어버리니 그저 딱하기만 하다.
어머니의 장례식부터 꼬이기 시작한 그의 인생은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싶게 막장의 끝으로 한순간에 달려간다.
그저 평범한 청년이자 조금은 세상의 통념에 무신경한 것뿐인데 어쩌다 얽히게 된 이웃사람의 치정 싸움에 끼여서 졸지에 살인자가 되고, 하필이며 친족 살인 사건이 일어나서 그 사건의 영향을 그의 사건까지 미친다.
무엇보다 자신의 솔직한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가 하나같이 자신의 인생을 최악으로 치달아가게 한다는 것을 주인공은 알지 못하니 더욱 답답했다.
그의 사건을 담당한 검사도 그의 변호를 맡은 변호사도, 감옥에서 만난 신부도 그저 자신들의 잘난 신념에 빠져서 사건의 본질이나 제대로 조사에는 관심조차 없다.
나름 인텔리 전문직인데 오히려 그래서일까 그들은 자신들의 위대함에 함몰된 위인들이었다.
자신들의 신념을 주인공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의 인생을 자신들의 마음대로 단두대로 보내버린다.
그들에게 주인공은 자신들의 위대함을 받아들이지 않는 이방인이었기에 그의 삶은 그들에게 필요하지 않은 셈이다.
만약 주인공이 그들의 말도 안 되는 억지에 그저 수긍하며 그들이 원하는 대답을 해줬다면 그의 죄는 어머니를 잃은지 얼마 되지 않은 청년이 이웃을 도우려다가 일어나 우발적인 사건으로 끝났을 것이다.
공개 처형이 아닌 그저 몇 년 수감되는 정도나 그나마도 받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랬다면 그는 자신이 독방에서 그리워했던 자유를 이내 되찾았을 것이다.
같은 사람이 한 똑같은 행동도 그저 어머니를 잃은 청년이었을 때와 살인자가 되어버린 후에 평가가 완전히 달라진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사회의 상식 안에서 자신들을 세상의 기준이라고 믿고 있는 그들에게 자신들의 상식에 반하는 말과 행동을 하고, 그들의 권위에 함락되지 않고, 자신들이 베푸는 따뜻한 도움을 거부하는 주인공은 그들의 세상에서는 필요하지 않다.
그리고 그 모난 돌이 존재한다는 것은 자신들이 이룬 사회적 지위에 반하는 것이다.
끝끝내 주인공이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는 그저 사회생활+인사치레에, 그리고 사회적 위선에 익숙하지 않은 자신에게 솔직하고 익숙하지 않은 것뿐이지만 그 대가는 '이방인'이라는 틀이 씌워져 사라져야 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