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독서를 즐겨 하시는 부모님에 경제적으로 여유도 있었던 가정 환경 덕분에 집에는 항상 책이 많았다.
남들은 참고서 사는 것조차도 부담스러운 그 시절에 부모님은 우리 남매를 위해 다양한 책들을 구매하셨다.
그중에 하나가 안데르센 전집이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그림형제 전집 와 한 세트를 이룬 괘 고급스럽고 비싼 책이었다.
도서관도 서점도 없는 시골에서 방 하나 가득한 책이 있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사치스러운 생활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 책들이 지금의 나의 독서 습관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른 된 후에도 안데르센 관련 책들을 다양하게 읽으면서 그 시절 내가 읽었던 그 동화들이 그저 어린이의 꿈과 희망을 위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불쌍하고 가엾은 이야기는 괘나 잔혹한 그 나라 그 시대의 현실이 비참하리만큼 그대로 담겨 있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을 때는 처음에는 사실 충격도 괘 받았던 거 같다.
하지만 안데르센이라는 한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았는지도 알게 되고 그가 어떤 환경에서 동화를 집필했는지도 알게 되면서 '동화'의 '동'자 가 어린이 '동'이 아닌 움직일 동이 아니었을까 생각도 들었다.
같은 동화라도 읽는 사람이 아는 정보에 따라 이야기는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의아했던 것은 안데르센이 작품 중에 내가 알지 못했던 작품들이 이렇게 많았나~ 아니면 읽었는데 내용을 잊어버린 이야기들이 이렇게 많았나~ 하는 생각이었다.
인어공주나 백조 왕자, 그리고 의미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빨간 구두의 이야기에서 빨간 구두가 소녀의 욕망과 운명을 나타냈다는 것도 어린 여성을 통제하고자 하는 당시의 통념이 표현된 이야기라는 점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소녀는 죽음에 이르러서야 그 속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소녀에게 삶 자체가 저주라 고 생각되기도 한다.
욕심의 종착지 편에서는 전쟁의 잔인함과 그 전쟁이라는 그늘 아래서 인간이 타인 특히 자신보다 약한 여자와 아이들에게 얼마나 잔인할 수 있는지 그 근본적인 악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었다.
원작에서 군인들의 행위가 얼마나 잔인하게 표현되었을지를 생각하니 동화 작가 안데르센의 이름이 어색하게 느껴진다.
장미의 요정 편도 제목처럼 예쁜 내용이 아닌 여동생의 연인을 죽인 오빠에게 장미의 요정이 복수를 한다는 섬찟한 내용이라 강한 인상을 남겼다.
어머니 이야기는 어린 시절에 읽으면서 참으로 찝찝했던 동화였다.
가시덤불을 품에 안아 상처를 입고 두 눈을 주고 젊음을 주고 죽음으로부터 아이를 되찾으려 하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다는 아무리 많은 희생을 치러도 운명은 바꿀 수 없었지만 자신이 아이를 되찾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자기만족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부시통이라는 제목의 동화는 읽는 동안도 읽고 나서도 가장 여운이 남았다.
동화의 기본인 권선징악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자신에게 도움을 준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는 등의 나쁜 짓을 하는데도 끝까지 잘 살아남아 공주와 결혼해서 왕까지 되어서 끝까지 행복하게 산다
어린 시절이었다면 뭐 이런 동화가 있어 했겠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노력이나 착한 마음과 성공이 큰 상관이 없다는 것도 또한 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동화는 책을 덮고 나서도 세상에 대한 씁쓸함을 남겼다.
동화라고 하면 예쁘고 착한 이야기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지만 그건 그 동화의 진짜 배경이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