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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거란전쟁 - 상 - 고려의 영웅들
길승수 지음 / 들녘 / 2023년 11월
평점 :
역사책을 읽는 것은 꼬꼬마 시절부터의 취미이자 특기였다.
한국사와 중국사를 시작으로 로마사, 일본사, 미국사, 영국사, 비잔티움, 이집트사, 프랑스사, 베네치아와 이탈리아의 소도시의 역사까지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시대의 역사책을 읽어왔다.
음악사, 미술사, 금융사에 최근에 유행하는 음식 관련 역사책까지 기본적인 역사책 외에도 다양한 소재로 출판되는 역사책도 재밌게 읽었다.
한국사도 고대사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는 읽었고, 조선사도 실록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출판된 책들을 괘 많이 읽었지만 어째서인지 고려사에 대해서는 딱히 일부러 찾아서 읽은 적은 없는 거 같다.
고려 초기 역사는 태조 왕건이나 천추태후 등의 드라마를 통해서도 대충 알 수 있었지만 그다음 이야기는 줄거리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이 책의 배경인 고려 거란 전쟁은 바로 그다음 이야기인 셈이다
천추태후의 아들로 목종이 된 무능한 왕과 천추태후의 연인으로 정사를 혼란하게 만든 김치양 무리들을 처단한 강조를 처벌한다는 핑계로 거란의 황제가 직접 전쟁을 일으켜 고려의 국경을 넘어온 것이다.
어머니의 손에 좌지우지된 것은 당시 고려의 목종과 비슷했지만 어머니의 연인이었던 재상은 현명했고 황제의 어머니인 황태후는 남자 보는 눈이 없었던 고려의 천추태후에 비해 잘난 남자를 고르는 재주 하나는 탁월했던 덕에 황제는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는 허수아비 황제이긴 하지만 나름 인자하고 덕이 넘치는 황제로 지낼 수 있었다.
나이 40대가 되어서야 어머니이자 실질적인 통치를 하던 황태후가 세상을 떠나고서야 친정을 시작했으니 그의 설렘이 어땠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어머니의 연인이었던 한인 한덕양에게 유학을 배운 거란의 황제에게 목종 폐위시킨 강조는 자신의 첫 번째 정치적 위신을 위한 전쟁에 좋은 핑계거리였다.
강조를 내놓으면 쳐들어가지 않겠다.
거란의 황제에게 이 전쟁은 황제가 되어 처음 하는 스릴 넘치는 게임 같은 것이었던 거 같다.
황제만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놀이를 거란의 나이 40이 넘어서 어머니의 눈치를 보지 않고 드디어 할 수 있게 된 것이니 얼마나 신이 났을지 이 책에 등장하는 부분적인 이야기들 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을 거 같다.
처음에는 작은 글씨와 끊임없이 등장하는 고려와 거란의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제대로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멍해졌다.
하지만 이내 낯익은 인물인 서희의 이름이 가끔 나오기도 하고 지명 또한 차츰 익숙해지니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졌고 인물들의 특징과 관계 또한 재밌게 읽을 수 있게 해주는 요소가 되어주었다.
가끔 책에서 등장하는 전투 장면에서 무기나 진에 대해 이미지가 잘 그려지지 않아 그림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드라마에서 확인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드라마에 대한 기대가 더 올라갔다.
거란의 대군을 맞은 고려의 상황과 고려 장수들이 지닌 각각의 상황들은 같은 전쟁이지만 역시 인간은 자신의 이익이 가장 중요하구나 하는 당연한 생각을 하게 되기도 했지만 그 또한 사람에 따라 다른 거 같다.
하나의 성을 책임지라고 맡긴 성주이지만 거란군이 성 앞에 다다르자 혼자 도망치는 성주가 있는가 하면 그 성주를 대신하여 다친 몸으로 화살받이가 되어 성을 방어하는 손님도 있었다.
검차의 활약으로 전투는 이겼지만 전장에서의 방심으로 포로로 잡혀 끔찍한 고문을 당하다 죽임을 당한 강조와 그런 강조를 보고 바로 배신하는 인물 물른 이 인물은 이 작품의 주인공이자 잊혀진 고려의 영웅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평화 시에는 그다지 티가 나지 않는 그 사람의 자질의 차이가 전쟁이라는 중대사 앞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한다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된다.
보장된 자신의 안위를 버리고 위험에 처한 다른 이를 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신만의 안위를 위해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도 책임도 관리라는 체면까지도 쉽게 버리고 부리나케 도망치는 사람도 있다.
사람은 극한의 상태에서 가장 근본적인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거 같다.
이 책에서도 그런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처음에는 그런 인물을 보며 욕했지만 스스로 그런 처지에 처했다면 과연 어떤 행동을 했을지를 생각하면 그들을 배신자라고 욕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세에 침입을 참 많이도 당한 한민족의 또 다른 전쟁의 역사를 이 책을 통해서 만날 수 있었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