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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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세 사람이 만났다.

여든여섯 살의 시노다 간지, 여든 살의 시게모리 츠토무, 여든두 살의 눈에 띄는 스타일을 한 미야시타 치사코.

처음 읽었을 때 이 세 사람의 모임은 그저 예전 직장 동료들의 친목 모임 정도로만 보인다.

이 세 사람 사이에는 괘 오래전에 애정관계도 있었지만 이제는 다 추억일 뿐이다.

호텔방에 체크인을 하고 세 사람은 바에서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호텔방에서 엽총으로 죽은 채 발견된 3명의 노인.

새해 첫날 이 사건으로 세상은 소란스럽다.

그리고 그들의 남은 가족들은 유족이라는 공통의 이름 아래 경찰서에 모이게 된다.

이런 일이 아니었다면 평생 만날 일이 없었을 사람들이 경찰서의 한 공간에 모여 조사를 받는다.

어린 시절 집을 나간 엄마의 엄마일 뿐인 외할머니. 은퇴하고 시골에서 혼자서 살던 암 투병 중인 할아버지, 그리고 가족은 없지만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받고 있는 전 교사.

소설은 세 사람의 마지막 날의 대화 장면과 그들이 세상을 떠난 후의 유족과 지인들 겪게 되는 일상과 그 일상 속에서 그들의 죽음으로 인한 심리가 묘사되고 있다.

늘 그렇듯이 사건 자체만 본다면 괘나 비극적인 모습일테지만 저자는 그런 느낌을 조금도 주지 않는다.

만약 내가 알고 있던 누군가가 이런 방법으로 생을 마감했다면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될까?

물른 사람마다 개인차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품 속의 세 노인들은 세상으로부터의 도피도 아니고 그저 자신들의 삶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마감하고 싶었을 뿐이다.

노인들 중 한 명의 유언에도 있듯이 가족들에게 새해 첫날부터 경찰서에 들락거리는 번거로움을 겪게 하는 것에 미안함이 있을 뿐이다.

암 투병으로 이제 서서히 혼자서는 생활할 수 없게 된 시노다는 해외에서 유학 중인 손녀에게 자신이 좋아했던 책들을 유품으로 보냈다.

결혼한 딸이 아이들을 두고 집을 나와 남자를 번갈아가며 사는 모습에 더 이상 만나지 않지만 손자와 손녀에게 적지 않은 자금을 상속으로 남긴 외할머니 치사코상.

가족은 없지만 다양한 직업을 거친 덕에 지인들이 많은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마지막 배웅을 받은 시게모리.

이들 중 그나마 평범한 삶을 살았던 사람은 시노다일 것이다.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한 죽음이 아닌 이들의 죽음은 끊어졌던 인연을 다시 이어지게 하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주게 되는 계기가 된다.

장례가 끝나고 시노다의 손녀가 치사코의 딸에게 메일을 보내 자신이 모르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하는 모습은 '러브레터' 와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세 사람이 살아있을 때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던 그들이 세 사람이 죽고 난 뒤에 그들의 존재와 죽음으로 변화를 겪는 모습들은 의외이기도 했지만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에 가능한 영향력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해를 맞이하는 것은 새해를 살아갈 사람들의 몫이라며 마지막 날 세상을 떠난 세 노인의 마음이 이해가 갔고,

책의 광고에도 쓰였던 '갖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보고 싶은 사람도 이곳엔 이제 하나도 없어' 라고 말했던 치사코씨의 체념도 그녀의 가족들을 보니 이해가 갔다.

남은 사람들에게 새해 첫날부터 경찰서를 들락거리게 한 것은 확실히 민폐였지만 세 사람에게 받은 것에 비하면 마지막 가는 일에 이 정도의 수고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나 하는 생각과 소설 속 이야기이긴 하지만 삶도 죽음도 자신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살다간 그들이 부러워졌다.

책을 덮고 이 서평을 쓰면서 죽음 그것도 노인들의 엽총 자살을 이렇게 덤덤하게 그려내는 것은 에쿠니 가오리만의 능력이자 특허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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