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일 침대맡 미술관 - 누워서 보는 루브르 1일 1작품
기무라 다이지 지음, 김윤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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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대의 박물관 루브르~

모나리자를 비롯한 세계의 명화들이 모여있으며 이집트나 로마, 그리스 등지에서 가져온 각종 역사적 유물들이 가득한 곳이 바로 루브르이다.

그 많은 소장품들은 다른 나라에서 약탈해 온 문화재가 많아 늘 이슈에 시달리기도 하지만 프랑스의 능청과 국력으로 꿋꿋이 버티고 있으니 빼앗긴 나라로서는 참 약오르는 현실일 것이다.

이 책에 실린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정작 프랑스 국적의 화가 작품은 몇 작품 되지 않으니 정상적인 통로가 아닌 전쟁이나 약탈 등의 방법으로 루브르에 머물게 된 작품들과 그리스의 조각상이나 이집트의 오벨리스크 같은 유물들을 모두 돌려준다면 루브르는 더 이상 세계 최대의 박물관이라는 이름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루브르가 말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 많은 작품과 유물들을 한곳에 전시하고 있으니 보는 사람들에게도 좋지 않느냐 하는 빼앗긴 나라의 국민들이 들으면 말도 안 되는 이유 또한 관광객들에게는 그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 책에 실린 63개의 작품 중에 가장 유명한 작품은 역시 가장 많은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는 다빈치의 '모나리자' 일 것이다.

그림은 보는 것이 아닌 읽는 것이라는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이 간다.

같은 그림일지라도 감상자가 지닌 정보에 따라 달라 보이는 것이니 그림이 그려진 배경이나 화가가 그림이 그려질 당시의 시대 상황이나 개인적인 심리상태 등에 대해서도 공부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루브르가 궁전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원래는 파리를 지키기 위한 요새라고 하니 새삼 신기하다.

색채가 짙어 어둡게만 보였던 베네치아의 회화들이 무역의 중심지였던 베네치아여서 고가의 물감을 구하기 쉬웠던 이유도 있다고 하는 부분은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풍경을 정밀하게 묘사한 경관화가 많았던 이유가 그랜드 투어의 마지막 여행지이자 지금처럼 관광지로 인기가 많아 여행객들의 기념화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치미부에"라는 이름으로 너무 유명한 화가가 사실은 '벤치비에니 디 페포'라는 본명이 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프라 안젤리코 역시도 귀도 디 피에트로가 본명이었지만 '천사와 같은 수도승' 이라는 의미의 이름으로 바꾼 전직 수도원의 수도승이었다고 한다.

'피사넬로'라는 화가의 젊은 공주의 초상은 예전에 봤던 귀족부부를 그린 초상화와 비슷해서 같은 화가가 아닐까 하고 궁금했다.

도메니코 가를란디요의 '노인과 소년'의 뒤 배경의 왠지 모나리자의 뒤 배경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봄이나 비너스의 탄생 등의 밝은 그리스 신화를 위주로 그린 작품만을 생각했던 보티첼리 새로운 작품 성요한 성모자를 그린 작품도 루브르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 거상의 부인을 그렸다는 모나리자는 보면 볼수록 이상적인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그린 작품 같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파울로 베로네세의 '가나의 결혼식' 뒤에 등장하는 장 클루에의 작품 모델이기도 한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도 있다고 하니 '윌리를 찾아라' 명작 버전 '프랑수아를 찾아라'를 하는 것도 괴 재밌었다.

지금의 세계 예술의 중심지인 프랑스가 17세기가 되어서야 회화의 시대가 열린 것은 이동식 궁전이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카라바조의 성모의 죽음은 성모의 죽음을 그저 한 인간의 죽음으로 표현한 너무나 사실적인 카라바조 특유의 죽음의 어두운 느낌이 잘 느낄 수 있었다.

티에폴로라는 화가의 아폴론과 다프네는 아폴론과 다프네를 그린 많은 작품을 봤지만 이 작품은 처음 보는 거 같다.

연극의 본고장이 베네치아여서 연극적 요소가 강하게 표현된 작품이라고 한다.

파리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라고만 생각했던 몽마르트 언덕이 성인의 순교와 관련지어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판도라의 상자 속 상자가 사실은 상자가 아닌 흙으로 만든 입 큰 항아리 파토스였다고 하며 작품명의 '에바'가 '이브'를 의미한다고 하니 왜 에바라는 이름이 많은 지도 알 수 있었던 거 같다.

앙투안 장 그로가 그린 나폴레옹은 그동안 봤던 위세 당당한 장군이나 정치가가 아닌 꽃미남 아이돌 같은 모습이라 눈길을 끌었다.

항상 강한 여성을 표현한 화가로만 기억됐던 들라크루아의 무력하게 죽어가는 여인들과 그 여인들을 지켜보는 사르다나팔로스를 그린 그림은 지금까지의 들라쿠루아의 작품과는 느낌이 달랐다.

스페인 회화의 3대 거장 중 벨라스케스를 제와한 두 명 수르바란과 무리요는 이름도 작품도 낯설었다.

벨라스케스의 '거울 속의 비너스'가 자신의 정부를 모델로 그린 작품이었다고 하는 것은 처음 알았다.

이 책에 실린 화가들 중 그나마 알고 있는 이름 중 하나인 엘 그레코도 본명이 아니라 '그리스인'이라는 의미라고 하니 어려운 그리스어 원래 이름이었다면 그가 지금까지 이름을 알리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당연히 자신의 그림에 이름을 남기는 것이지만 이것 또한 얀 반 에이크가 미술사상 가장 먼저 자신의 작품에 사인을 한 화가라고 한다.

도시의 부유층들이 시골 농부를 주인공으로 한 그림을 소장한 이유가 농부에 대한 존중이나 친근함 같은 좋은 의미가 아니라 시골 농민의 비하하면서 그들을 반면교사로 삼기 위한 것이었다고 하니 인간의 오만함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나 보다.

'수태고지'는 참 많은 화가의 작품으로 봤지만 베이던의 수태고지는 낯설고 강인한 거 같다.

루벤스의 작품인 마리 메디치의 연작은 지금도 여전히 이슈가 되는 재벌과 정치권의 정략결혼의 극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가의 신분 상승의 하나로 렘브란트는 도시귀족의 딸과 결혼했다고 하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비틀즈 팬들의 미움을 받고 있는 존 레넌의 부인 오노 요코가 일본의 4대 재벌가인 야스가를 외가로 둔 아가씨였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을 장식하고 있는 페르메이르의 "레이스를 뜨는 여인'은 일본인들이 유별나게 사랑하는 페르메이르의 작품으로 끝을 맺는구나 하는 생각과 그림이 전해주는 평온한 느낌이 와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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