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밭은 민가로 부터 괘 떨어진 없는 밭들만 있는 곳의 시골 한구석 그것도 그 길의 끝에 있다.
밭 뒤에는 바로 야산이 있어 밭작물들은 항상 그 야산에 사는 고라니, 토끼, 멧돼지뿐만 아니라 새들까지는 매해하는 일이지만 동물들과의 전쟁이 따로 없다.
물른 항상 농약도 치고 동물들에 대한 방책을 탄탄하게 하는 이웃 농가들과 달리 농약조차 치지 않은 우리밭의 농산물들은 주변 동물들의 승리로 끝나지만 말이다.
밭 뒤의 야산에 도라지도 키우고 더덕도 조금씩 키우고 있다보니 그 야산은 자주 올라가신다.
알고 있는 약초나 산나물도 채취해서 오시지만 가끔 특이한 식물을 보시면 사진을 찍어오시기도 하셔서 내게 물어오신다.
아무리 인터넷이 있다고 해도 식물학과 전공자도 아닌 내가 그 식물의 이름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보통 비슷한 종류의 식물을 검색하다 보면 운 좋게 그 식물의 이름을 알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기는 하지만 딱 그 정도였다.
사실 약초라고 하면 뭔가 특별한 약효과가 있는 신비로운 낯선 식물이라는 느낌이 강해서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들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을 보면서 밭이나 밭 주변에, 마당의 텃밭에, 가끔 가는 산책로 길 옆에 흔히 있는 감나무, 살구나무, 석류나무, 버들나무, 아까시 나무 등등 그 흔한 나무들이 모두가 악초 나무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낯선 이름들도 가득했지만 정작 나무들의 모습을 보면 시골에서 자라서 지금까지 살고 있는 내게는 결코 낯설지 않은, 지금은 쉽게 볼 수 없지만 그 시절엔 산에 들에, 길가에서 너무나 흔하게 봤던 그 나무들이 다 나름의 약효가 있는 약초였다는 사실에 살짝 놀랍기도 했다.
매년 노랗고 향기로운 모과를 주는 모과나무는 그저 목에 좋은 차를 만드는 과일을 주는 나무가 아닌 마비의 치료제로도 쓰였으며 관절염에도 효과가 있으며 뿌리는 뿌리대로, 가지와 잎도 구토나 설사병 등에 효과가 있다고 하니 밭에 있는 모과나무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최근에 많이 눈에 띄는 조팝나무도 인후통이나 설사 등에 효과가 있는 약초 중 하나라고 하니 정말이지 지금까지 그저 꽃구경용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나무들이 거의 모두 나름의 약효를 지닌 약초였던 셈이다.
학창 시절 쉬는 시간이며 늘 근사한 그늘을 선물해 주었던 등나무를 다시 이 책에서 만났다.
그저 당연하게 봤던 그 연보라색의 등나무 꽃은 약술로 만들기도 하며 변비나 근육통에 효과가 있으며 뿌리 또한 근골 통증이 나 이뇨, 부스럼에 약효가 든다니 그저 신기하기만 하다.
봄과 초여름 사이 예전처럼 많이는 아니지만 동네를 다니면 연하게 아까시 꽃향기가 난다.
동네 뒤의 작은 산에 유난히 많았던 아까시 그 시절엔 아카시아 나무라고 불렸던 그 달콤하고 은은한 향기가 매력적인 아까시 나무도 꿀만 주는 것이 아니라 신장의 열을 내리며 붓기를 가라앉히며 기침이나 피부질환에도 효과가 있다고 하고 꽃에 가려져 한 번도 유심히 본 적이 없던 잎 또한 어린잎은 나물이나 샐러드에 활용할 수 있다고 하니 신기하기도 하고 어린 시절에 생각나 그립기도 한 묘한 느낌이 들었다.
밭 뒤가 야산이라 가끔 밭에 가신 부모님은 지금은 귀한 진짜 산에서 자란 야생 산딸기를 따오시기도 하신다.
올해도 늦은 봄에 딴 산딸기를 얼려서 냉동 산딸기로 보관 중이다.
산딸기에 대한 정보를 찾다가 이 책에 있는 산딸 나무라는 낯선 이름의 나무도 발견했다.
역시나 어디선가 본 듯한 이 나무의 사진을 보면서 낯선 것은 이름뿐이지 이 책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약초 나무들은 시골에 살았던, 그리고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은 그저 어디선가 많이 본 나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했던 나무들도 그렇지만 칡 나무나 탱자나무, 특히 무화과나무나 감나무, 수국, 모란 등등 그저 마당에 있던 그 많은 나무들이 꽃나무나 과일나무가 아닌 하나하나가 다 저마다 효능을 지난 약초였다는 사실이 아직도 조금은 의아하다
그동안 그때그때 신선하게 잘 익은 과실이나 따서 먹고, 예쁘게 핀 꽃이나 당연하게 봤던 그 아이들에 이런 효능을 가진 약초였는데 그 긴 시간을 보면서도 그 아이들의 진정한 능력을 알아주지 못한 것이 문득 사람과도 비슷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제 이 책이 있으니 부모님께서 앞으로 찍어오시는 어떤 나무도 풀도 예전보다는 쉽게 이름을 찾을 수 있을 거 같다.
몸이 아프기 전에 마당이며 밭에 지천으로 널렸던 약초들을 잘 활용할 수 있었다면 더없이 좋았겠지만 이제라도 지금까지 지나쳤던 그 많은 식물들의 진정한 능력을 알게 되었으니 앞으로는 잎은 나물도, 꽃은 술이나 차로, 먹는 부분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던 줄기나 뿌리 부분까지 효소를 만들 수 있다고 하니 각각의 약초에 맞게 사용할 수 있을 거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