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얼굴의 여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5
미쓰다 신조 지음, 현정수 옮김 / 비채 / 2019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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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와 함께 2월에 신청했던 책이었다.

책이 괘 두꺼워서 처음에는 한 가지 이야기가 아닌 여러 가지 괴담을 담은 단편 모음집일 거라 맘대로 착각했던 거 같다.

시대는 1930년대 조선의 이야기 등장해서 의아하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다.

일제 시대를 일본 작가들은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생각할지도 궁금했다.

그저 시끄러운 마음을 잠시 잊기 위해 무서운 이야기로 시선을 돌리려고 읽기 시작한 책은 생각보다 무거웠던 거 같다.

책은 첫 시작부터 지금까지 읽었던 미쓰다 신조의 괴기 작품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갑자기 일제 시대의 일본인이 등장하고 조선인 징용과 아시아 전쟁에 대한 부분이 등장해서 어라 이게 무슨~~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내 다른 작품들과 비슷한 이야기로 돌아가겠거니 했다.

만주에서 대학까지 나온 인텔리 하야토는 지금 자신과 자신의 조국 일본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고 그렇다고 미국이나 연합군의 호감이 드는 것도 아니다.

전쟁의 끝났지만 여전히 어수선한 일본 사회에서 지식인의 한계를 느낀 주인공은 가장 힘든 현장인 광산에서 일을 하기로 한다.

질 나쁜 광부 모집인에게 끌려갈 뻔할 때 아이자토 미노루라는 사람을 만난다.

그를 만나 그가 일하고 있는 네네광산으로 가게 되고 여느 광부들과는 다른 이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

과거 자신으로 인해 조선에서 끌려와서 죽은 정남선이라는 청년이 생각나서 하야토를 도와주었고, 그 정남선이라는 청년에 대해 사죄 비슷한 기분으로 하야토 못지않게 인텔리인 그가 힘든 광부 일을 하고 있는 듯했다.

조선인들이 일본 정부 외 기업에게 어떻게 광부로 착취당했는지를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일제 시대의 조선인 노동자의 현실을 알게 되었다.

그저 답답하고 무료한 현실을 잠시 잊어보고자 읽은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게 될 줄은, 일본의 괴담 작가가 들려주는 일제시대의 조선인의 모습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처럼 비참하고 끔찍했다.

광산에서의 생활에 어느 정도 적응도 되고 그곳 사람들과도 어느 정도 친분을 쌓아갔지만 정작 그를 데려간 아이자토는 그곳 사람들과 어떤 교류도 하지 않고 지내고 있었다.

갑작스런 광내 사고로 아이자토가 혼자 지하 갱에 갇히게 되지만 위험 때문에 구조작업은 언제 시작될지 모른다.

사고가 난 같은 날 기도라는 일본 이름의 조선인이 자신의 집에서 금줄을 목에 건 괴이한 모습으로 죽은 채 발견된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이어지는 금줄을 목에 건 괴이한 죽음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아이들이 첫 번째 현장에서 봤다는 검은 얼굴의 여우가 괴담이 되어 퍼진다.

광산의 신사에 있는 검은 얼굴의 여우에 대한 에피소드들이 하나둘씩 등장하고 하야토는 자신에게 이것저것 알려주는 스승 같은 광부 난게쓰에게 검은 얼굴 여우에 대한 경험담을 듣게 된다.

4번째 사망자가 나오자 처음에는 자살이라고 단정 짓던 광산 경찰도 살인사건이라는 점에 눈치를 채지만 좀처럼 범인의 윤곽도 살해 방법도 알지 못한다.

아이자토를 비롯한 며칠 사이 죽은 사람들에 대해 조사하던 중에 언젠가 아이자토에게 들었던 미노루의 배다른 형 류이치가 찾아온다.

정남선의 수기가 발견되고 그 수기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이번에 죽은 사람들에 대해 하나둘씩 진실을 알게 되고 하야토는 드디어 진실에 도달하게 된다.

나쁜 일본인을 향한 조선인 노동자의 복수극~ 이라는 점에서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조금은 속이 시원해지는 거 같기도 하지만 결국 저자의 말대로 전쟁으로 인해 다치거나 죽은 힘없는 사람들은 일본인이건 조선인이건 모두 피해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이라는 결말은 어느 정도는 수긍이 가지만 한편으로는 일본인들의 자신도 피해자라는 일반적인 논리를 말하는 거 같아서 뒷맛이 좋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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