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타워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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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다시 읽는 도쿄 타워는 10여년전 처음 읽었을 때보다 충격적이지는 않지만 그때는 느끼지 못했던 삶에 대한 묘한 감정을 느끼게 만들어 주는 거 같다.

아마 소설보다는 영화를 먼저 봤기에 소설 속 토오루는 음악적인 소년 토오루보다는 '오카다 준이치" 조금은 어색한 듯한 표정이 먼저 생각났고, 코우지는 지금은 일본의 최고 아이돌 그룹이 된 아라시의 마츠모토 준의 조금은 건방지고 도도한 척하는 모습이 먼저 생각나는 것은 지금도 하는 수가 없다.

영화를 먼저 보지 않았다면 하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지금도 하는 수가 없다.

영화 속의 시후미도, 키미코도 지금 읽는 이 소설 속의 그녀들과는 묘하게 어긋나서 사실 소설을 먼저 읽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다.

'음악적인 얼굴' 을 가진 대학생 토오루는 어머니의 지인이기도 한 자신보다 20살 연상의 연인이 있다.

아름답고 신비로우며 남편도, 자신의 가게도, 그리고 토오루의 마음 전부를 가진 시후미와 만난 지도 벌써 3년이 되었다.

처음 토오루에게 연상의 연인에 대한 것을 들은 코우지는 자신도 연상의 연인을 만든다.

그것도 동급생의 어머니를 상대로 밀회를 즐기다 결국 동급생에게 들키고 그 후 아이가 있는 여자는 만나지 않겠다고 나름의 규칙을 정하게 되었고, 지금의 키미코까지 몇 번의 누군가의 부인이고 연상의 여성들을 만났다.

시후미 하나만 생각하는 토오루와는 달리 동갑내기 귀여운 여자친구도 있지만 그런 것은 코우지에게 상관없다.

키미코는 키미코이고, 유리는 유리이니까~ 그리고 코우지는 자신에게 열정적이고 가끔은 자신에 대한 무서울 정도의 집착을 보이는 키미코가 싫지 않다.

이 소설 속의 네 주인공들은 누구 하나 일반적이지 않다.

남편도 있으면서 지인의 아들이자 자신보다 20살 어린 거의 아들뻘인 남자를 정부로 둔 여자 시후미도, 자신의 엄마뻘인 유부녀를 만나고 그녀로부터의 연락을 늘 기다리고 있는 토오루도, 시후미와는 다르지만 남편에 대한 여러 가지 불만을 토오루를 통해 보상받으려고 하는 듯한 키미코도, 연인이 있으면서도 연상의 유부녀의 정부가 되는 것을 즐기는 듯한 코우지도, 정성적인 정서로는 이해할 수 없는 묘하게 어긋나고 뒤틀린 모습이라 처음 영화를 봤을 때 뭐 이런 불륜+원조교제에 비도덕 덩어리인 내용이 있을까 했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고 끝을 맺는 아름다운 동화 속의 주인공이 결코 되지 못할 사랑을 하는 그들이지만, 지금 현재 그들의 사랑은 자신들의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무언가가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토오루에게 시후미가, 시후미에게 토오루가 지금 서로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지만 언제든 맞이할 수밖에 없는, 그것도 결단코 아름답지 않은 모습으로 이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관계라는 것을 알지만 그렇기에 멀지 않을 이별을 두려워하기보다는 지금 함께 보내는 시간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듯하다.

언젠가 토오루가 시후미에게 버려질 것이 빤히 보이는 일방적인 관계인 것과는 달리 키미코와 코우지의 관계는 그래도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일방적으로 버려지는 것이 아닌 서로가 평등한 관계로 느껴진다.

처음 내용을 알았을 때 뭐 이런~ 원조+불륜 이야기에 딱히 공감도 이해도 가지가 않았는데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은 토오루와 시후미의 사랑은 시후미의 말대로 시간이 어긋나버린 조금은 안타까운 느낌이 들었고 코우지와 키미코는 어쩌면 서로의 성장을 위해 필요했던 성장통 같은 관계가 아니었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의외로 책의 끝부분에서 버림을 받는 것은 토오루도, 키미코도 아닌 코우지였다.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결말이 불확실한 점은 이 작품에서도 확실하게 나타나는 거 같다.

시후미와 토오루의 관계에서는 확실한 결말도 없이 끝이 났다.

언제나 쿨하게 자유로운 연애를 즐길 예정이었던 코우지는 고교 시절의 연인의 딸인 동창생의 요시다의 갑작스러운 등장으로 인해 혼란스러워지고 결과 자신이 버릴 줄 알았던 키미코에게 버림받고 그녀에게 연연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이나 신선함은 딱히 내용을 다 알고 있는 지금 기대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무리이지만 처음 읽었을 때 느껴졌던 에쿠니 가오리 특유의 나른함과 날카로움은 더욱 잘 느낄 수 있었다.

도쿄 타워 후 에쿠니 가오리의 작품을 참 많이도 읽었던 것이 새삼 떠오른다.

그 시절엔 그저 어린 소년을 가지고 노는 불륜녀의 한 명으로만 보였던 시후미의 토오루에 대한 제멋대로인 듯 보였던 행동들이 언젠가 자신이 떠나보낼 수밖에 없을, 자신의 인생에 다신 없을 진정한 사랑인 토오루에 대한 자신이 할 수 있는 배려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지금은 할 수가 있었다.

"사랑은 하는 것이 빠지는 것"이라는 이 작품의 명대사는 이 네 명의 주인공들에게 모두 해당되지만, 가장 사랑을 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연애라는 놀이에 가장 능수능란했던 코우지가 자신도 인지하는 못하는 사이에 키미코와의 사랑에 빠지고 그녀에게 버림을 받고 이별을 통지받은 후에도 그녀를 그리워하는 둥 자신의 행동을 통제하지 못하게 되는 모습에 이 작품의 등장인물 중 사랑으로 인해 가장 큰 상처를 받은 사람은 코우지였다.

토오루에 대한 '동경+ 재미' 같은 기분으로 시작했던 코우지의 사랑놀이는 결국 사랑놀이로 끝나지 않고 그에게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는 결과를 안겨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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