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에서 삶을 읽다 - 서러운 이 땅에 태어나
김경숙 지음 / 소명출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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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라고 하면 학창시절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시조나 중국을 소개하는 티브이 프로그램에서 등장하는 두보나 이백의 시를 생각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 등 중 몇몇 유명한 분들을 제외하면 사실 이름조차 낯설거나 역사 이야기에서 들어보긴 했지만 주연도 조연도 아닌 등장인물 정도에 지나지 않았을 인물들이 이 책에서는 드디어 주인공이 되었다.

한시라고 해서 사대부 양반이 쓴 시라고만 생각했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한시들의 저자들 중 다수는 오히려 그런 권력층에서 소외된 서자, 기생, 양반 여성 등 글을 알지만 그 글로 인해 더욱 절망했던 이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러운 이 땅에 태어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 이 시대를 '헬조선'이라고 부르지만 이 책의 저자들이야말로 진짜 '헬조선'을 살다간 인물이었다.

첫 시의 내용 중에 등장하는 그림 <강상이박도> 올 초 아마도 박물관에서 봤을텐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시를 읽으면서 낯선 듯 낯익은 듯한 느낌이었는데 두보의 시와 비슷한 감성이라는 저자의 설명에 그제야 이해가 갔다.

저자는 각 시인마다 두 편의 시를 들려준다.

어떤 시인의 경우 두 편의 시에서 느껴지는 느낌들이 너무나 달라서 잠시 의아하기도 했지만 설명을 읽어보면 한시 앞도 모르는 인생이니 두 편의 시의 차이가 시인이 살아낸 시간과 그 시간 동안 변한 사정의 차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을 나서며'에서 느껴지는 신분의 절망은 지금 대한민국의 힘없는 사람들이 느끼는 절망과 같은 색으로 느껴져서 더욱 답답하기만 했다.

추사 김정희의 시는 다른 책에서도 본 적이 있어 아내에 대한 그리움을 잘 알 수 있었던 거 같다.

허난설헌은 남편복은 없었지만 그시대에 이미 남녀를 차별하지 않고 교육을 시켜준 부모님에, 여동생의, 누나의 재능을 뒷받침해주며 나중에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 해 준 동생까지~ 이 정도 행운을 가진 여성은 지금도 그리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뒤편에 등장하는 뛰어난 글재주를 지녔지만 비참한 인생을 살다간 기생들에 비해 그녀는 행운아가 틀림없다.

한시라고 해서 어렵고 무거운 주제를 그린 시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한 시들은 굳이 따지자면 '시'라기 보다는 '에세이'라고 하는 편이 맞는 거 같다.

소소한 인생과 친구, 연인에 대한 이야기들~

하지만 그 안에서 느껴지는 시대적인 아픔은 그들의 시가 아픈 현실에 주저앉아 서글프고 절망스럽게 우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는 거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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