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탈한 오늘
문지안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1월
평점 :
품절


 

 

 

2018.12.31 이번이 두 번째이다. 

2015년에 한번 12.31일을 저녁 내내 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면서 보내고 있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한 해의 마지막 날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이 내일이면 다가올 한 해가 책의 제목처럼 무탈할 거라는 예시 같아서 기분이 편안해진다.

11페이지에 가득한 개와 고양이의 사진들은 처음에 봤을 땐 딱히 이름도 기억하지 못했지만 각각의 강아지와 고양이들의 에피소드를 다 읽고 나서 다시 봤을 땐 불과 3-4시간 전인데도 개와 고양이가 아닌 오공이와 열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었다.


책을 읽는 내내 저자는 참 다정한 사람인 거 같다는 생각과 동시에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읽기도 전에 누워있는 작은 고양이의 발바닥 사진이 너무 귀엽고 깜찍해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첫 시작은 상근이의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아침에 인사하고 저녁에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라는 글에 벌써 죽은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우리집 두리가 생각났다.

형부의 직장동료인 미국인이 키우던 작은 강아지는 주인이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어서 우리집으로 오게 되었다.


아파트에서 고급 사료와 개전용 샴푸를 쓰던 일명 족보 있는 개로 당시 한국에서는 흔하지 않은 종이었다.

지금도 두리와 같은 종의 개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으니 당시에 족보를 그다지 중요하게 보지 않은 것이 조금은 후회되기도 한다.

넓은 아파트에서 살던 고급 애완견인 두리는 우리집에 와서 시골개가 되어 논밭을 뛰어다니고 아버지의 트럭에 자신의 지정석인 운전석의 옆자리에 앉아서 자기 하고 싶은 것은 다하면서 살았다 

가끔 밤늦게도 돌아오지 않아서 찾으러 나가기도 몇`번~ 그래도 항상 돌아왔기에 답답한 목줄 없이 그렇게 8년을 살았다.

어느 토요일 조카들을 보러 가서 1박2일을 다녀온 일요일 오후 집에 돌아왔는데 늘 있던 자리에 두리가 보이지 않아서 어머니께 물었더니 길 건너 집의 쥐를 잡기 위해 놓인 쥐약이 섞인 음식을 먹고 죽어서 늘 아버지와 함께 다니던 밭의 양지바른 곳에 묻어주었다고 하셨다 

 

상근이를 대하는 저자의 마음이 어떨지 생각하다 문득 그리운 두리가 생각났다.

개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어제가 살아있었다고 해서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있다는 것이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님을 생각하게 되었다.

관우의 이야기는 읽으면서 지금의 나는 과연 밥을 먹고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만큼 가치가 있는 생명일까~ 솔직히 그렇다고 대답할 자신이 없는 현실에 조금은 스스로가 안쓰럽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속도로 친해지려는 태도가 가진 자의 여유' 라는 글에 잠깐 책에서 눈을 떼고 생각을 해보았다

아미 이 말은 동물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연이의 에피소드에서 '기대만큼 다가오지 않는다고 화를 낼 이유가 있을까~' 하는 부분도 가진 자의 자만이 아니었을까 생각되었다.

해 질 녘의 보리와 저자의 사진은 보는 내내 마음이 따사로워진다

아무 일 없이 곁에 머무는 오늘이 언젠가 가슴 아프도록 그리워질 일상이라는 것을 저자의 조언처럼 잊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행복을 지키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오늘 나를 스쳐간 말들은 과연 필요한 말이었을까~ 이 저자의 물음에 생각이 많아지는 거 같다.

누군가에게 지금 곁에 있는 개는 많은 동물들 중 하나이지만 그 개에게 누군가는 일생에 단 한 명의 사람이라는 글에 지금 집에 있는 '보슬이' 생각났다.

두리가 죽은 그해 겨울 우연히 우리집에 온 아롱이는 그해 봄에 강아지를 4마리 낳았지만 유난히 약하고 작았던 한 마리는 얼마 가지 않아 죽었고, 남은 3남매 중 얼룩이 수컷 두 마리는 어머니의 지인분들이 데려가셨다.

암컷이고 유난히 하얗고 작은 막내 보슬이는 아무도 원하는 이가 없어서 제엄마 곁에 남게 되었고 그렇게 9년이 다 되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우리집 마당 안에서 살아온 아이~ 그 아이에게 우리집은 태어난 고향이고, 외갓집이고, 유일하게 살아온 자신의 집일 것이다

자신이 한 번도 선택한 적이 없지만 언제나 우리 가족들을 반기고, 작은 체구에도 최선을 다해 집을 지키면서 그렇게 긴 시간을 자기 자리를 지킨 것이다.

두리에게도, 보슬이에게도 선택의 기회는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 당연한 듯이 생각했지만 다시 생각하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휴게소에서 버려졌던 아롱이는 스스로 우리 아버지를 선택해 따라왔으니 녀석은 조금은 예외인 셈인가 하는 생각도 든다. ㅎㅎ

우리에게는 길어야 10여 년이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자신들이 선택하지도 않은 우리를 평생 사랑한다는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몽이의 죽음과 그 후의 저자의 모습은 반려동물을 잃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도 공감이 갈 것이다.

'있을 때 잘해 주었고, 보낼 때 잘 보내주었다는 믿음'  나 역시도 그런 마음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우리집 강아지들을 생각한다.

하지만 문득 생각한다.

우리집이 아니었더라면 그 녀석들은 더 좋은 곳에서 더 행복하게 더 오래 살수 있지 않았을까~~

사람에게는 의식주가 전부가 아니기에 동물만큼 행복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 이 질문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진다.

의식주가 전부였다면 나는 지금 행복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인간의 자만일까 지금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일까~어느 쪽이든 지금 스스로 행복하지 않다는 자각일 것이다.


따지고 보면 멋진 마당이 있는 집에서 자신을 이해해주는 남편과 각각의 사연을 가졌지만 저자의 가족이 된 멍이와 냥이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잔잔한 이야기를 읽는 거뿐인데 자꾸 눈물이 나와서 괘나 힘들었던 책이었다.

사진만 보면 그저 따사롭고 평화로운 모습인데 그 안에 이야기들은 나의 모습과 우리집 강아지들을 생각나게 했고, 그 에피소드 하나하나에 마음에 동해서 화장실로 뛰어가 소리 죽여 울기도 했다.

8년을 살았지만 사진 한 장 찍어주지 못한 채 갑자기 떠나보냈던 두리를 비롯해 처음 키웠던 복실이와 이젠 이름도 기억나지 않은  우리집 멍이들이 유난히 그리워졌고, 지금 집에서 추운 겨울 집을 지키고 있는 아롱이와 보슬이가 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저자와 저자의 사랑스러운 냥이, 멍이들이 언제까지나 저자의 다정한 보살핌 안에서 무탈한 오늘을 보낼 수 있기를 2018년 마지막 날인 오늘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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