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줄다리기 - 언어 속 숨은 이데올로기 톺아보기
신지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며칠 전에 봤던 어느 책의 소개글에서 '말은 역사의 블랙박스다' 라는 것을 보고 이처럼 적확한 표현이 또 있을까 했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단어들도 그런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첫 시작을 여는 단어는 몇 달전에 티브이 시사프로에서도 회자되었던 "각하" 라는 단어이다.

아마 나이대가 좀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리 낯선 단어가 아니겠지만 요즘 젋은 세대들에게는 낯설고 전근대적이고 다분히 보수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일 것이다.


사극에서 많이 등장하는 "폐하" 나 "전하', '저하" 는  왕이나 황제를 직접적으로 부르는 호칭이 아닌 아랫사람이 그들이 머무는 궁이나 전각, 계단을 뜻하는 의미로, 건물이나 계단 아래 자신들이 있음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한다.

사실 사극 등의 드라마를 볼 때마다 신하들이 그 호칭으로 자신들의 상전을 먼저 부른다는 사실이 조금은 의아했었다.

 "각하" 귀족의 경칭 중 가장 낮은 위계를 말하다는 것도 의외지만, 훗날 정조가 된 세손 '이산' 을 각하라고 불렸다는 사실은 당시 정조가 신하들에게 어떤 대상이었으며 그가 참았을 시간의 참담함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 거 같았다.


대통령을 각하라고 부르는 것도 말이 안 되지만 "대통령" 이라는 단어 또한 민주주의에 위배되는 단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흔히 우리말을 처음 배우는 외국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 높임말인데 이 높임말이라는 그저 생활에서 사용하는 말을 넘어서 말에서부터 나타내는 뿌리 깊은 신분관계를 나타내는 가장 상징적인 것이라고 한다.

특히 호칭은 흔히들 생각하는 기본적인 예의 정도가 아닌 상대가 나의 신분을 어떻게 인식하는지 가장 표현하는 것이라는 글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우리나라에서 다툼이 일어나면 할 말이 없을 때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너 몇살이야?" 일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고 한심한 일이지만 이 말만큼 우리가 가지고 연령 차별을 잘 표현해주는 이야기도 없을 것이다.

이 나이로 인한 차별은 이 나라 이 사회에 살고 있는 어떤 누구도 피해 갈 수 있는 차별이자 이데올로기일 것이다.

요즘은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고 있는 "쓰레기 분리수거"에서 '수거'라는 단어가 잘못된 표현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서 더욱 의아했던 거 같다

저자의 말대로 정확한 표현은 "쓰레기 분리배출"  즉 쓰레기를 수거하는 관이 주체가 아닌 국민들이 분리해서 내놓는 것이니 말이다.


20대 이상 아니 요즘은 좀 산다는 집 꼬꼬마들도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명품~ 가방이나 시계, 의류 등 외국의 유명 브랜드 제품을 우리는 명품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제품들은 진정한 명품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고 그것들의 정확한 명칭은 "명품" 이 아니고 "사치품"이라고 하는 것이 적확하다.

명품은 단순히 비싼 브랜드의 물건들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장인의 손길에 의해 탄생한 시간을 두고 사용할 수 있는 작품을 말하는데 왜 우리나라에서는 사치품이 명품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했는지 그 이유는 어느 유명 백화점의 상술이 시작이었다고 하니 더욱 씁쓸했다.


이 책에서 가장 재밌는 이야기는 아마 "짜장면" 과 '자장면"의 줄다리기가 아닐까 생각된다.

요즘은 두 단어 모두 사용할 수 있어 생활에 큰 불편함은 없지만 한동안 "자장면"이라고 하라는 명령 아닌 명령은 국민들을 괘나 불편하게 했었다.

"자장면"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이런 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고충도 만만치 않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언어는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것이 주목적이다.

그저 말을 소통하거나 글로 읽는 것이 뭐 그렇게 대단할까 생각했던 것들도 그 숨은 의미를 알게 됨으로써 많을 것을 알게 해주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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