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파서 끝까지 읽을 수 없었다. 읽다가 책을 몇 번이나 덮었다. 나에게도 생때같은 아들이 있다.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있어서도 안 될 그 상황을 상상하게 만드는것만 같아 책을 읽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자식을 잃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럼에도 살았지만 사는건 사는게 아니었다. 모든 것은 시간이 약이다라고 하지만 이 세상에 결코 약이 없는 것 도 있다.
뒷산으로 산책을 가 잡초더미에 애처롭게 핀 꽃 한송이를 뽑아왔다. 결코 잡초따위에서 필 꽃이 아닌데 라는 생각을 했다. 집으로 가져와 한숨 자고 일어나 그 꽃을 보니 또 발작적인 설움이 복받쳤다. 설움이 복받친다는 그 대목을 읽기전부터, 그 꽃을 발견했다는 대목에서부터 나는 그가 설움이 복받치리라는 사실을 예측할 수 있었다. 애미란 그런 것이다.
박완서 작가의 한말씀만 하소서는 소설도 수필도 아닌 자식을 잃고 쓴 통곡의 일기이다. 극한의 상황에서도 목놓아 울지못하는 처지에 통곡 대신 써 내려간 일기이다. 저자는 목놓아 우는대신 이 일기를 썼다고 했지만 목놓아 우는 것 이상의 절절한 그때 그 비통함과 절망, 천벌처럼 내려진 견딜수 없는 어마무시한 처지에 대해서 써내려갔다. 읽는 내내 그 고통이 느껴져서 읽는 것이 힘들정도 였다.
아들 대신 딸중 하나를 잃었다면 이보다 조금 덜 애통하고 덜 억울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을 때 황급히 성호를 그었다. 행여 또 그런생각이 떠오를까봐 속으로 주모경을 외웠다. 그리고 용서를 비는 기도를 했다. 과감하게 있는그대로의 심경을 나타낸 것 같다. 그만큼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겠다. 글을 읽는 내내 나도 자꾸 상상하고 싶지 않은 가정을 하게 되어 힘들었다. 그런 생각이 떠오를까봐 두려웠다. 책을 읽는 내내 그런 기분이었다.
아들이 죽고나면 기쁨도 없겠지만 근심도 없을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말은 즉 사랑하는 이가 죽는 것을 보는것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이 이제는 없겠구나 했는데 손자 중 제일 어린녀석이 바닷가에서 제 키의 몇배나 되는 물벼락을 맞으며 보이지 않다가 나타나는 모습을 보며 바다가 아이를 삼켜버릴것같아 걱정이 되었을 때 아직도 사랑이 안끝났음을 알았다는 저자. 병적인 걱정으로 지친다는 그 표현도 마음을 헤집었다.
나아지는 것 같으면서도 매일 처절함과의 싸움이었다. 한 말씀만 하소서. 매일 애원했지만 결코 들을 수 없었다. 신에 대한 분노와 원망. 꿈에서라도 자식을 만나고 싶다는 것조차 허용이 안된다는 사실에 대한 신에 대한 배신감.. 하지만 살아지고 또 스스로가 역겹고 비참하지만 삶에 대한 채비를 한다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 이었다.
죽고싶었지만 그 죽음을 막아선 먼저 간 남편과 아들과 서로 깊이 사랑하고 믿었던 추억의 도움이 없었다면. 가까이서, 멀리서 걱정해주고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들, 특히 착한 딸과 사위들 손자들 덕분에 다시 아들 없는 세상을 사랑하게 되고 살아지게 됨을 느꼈다. 저자는 마침내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도움이야말로 신의 자비하신 숨결이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한 말씀만 하소서.
내가 곧 나으리이다.
어쩌면 그 한말씀은 언어가 아닌것일 것이다. 신은 우리에게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해주는것일거다. 자식을 잃은 어미의 처절한 일기면서 동시에 성찰하는 개인의 기록이었다.
-출판사를 통해 책을 증정받아 작성한 후기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