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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미술 2016.11 - 382호
월간미술 편집부 엮음 / 월간미술(잡지)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현실을 반영하는 무채색 회화 Luc Tuymans
이 일련의 새로운 회화들이 지닌 매력으로는 시각예술의 위계질서에서 더 이상 최상위를 고집하지 않는 재편입된 이젤 페인팅의 유연함과 키치로의 손쉬운 전환, 그리고 연결되는 일이 없는 파편화된 내러티브의 지향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스테판 버그는 ... “현재 시점에서 이미지는 르네상스 시대와 같이 세상을 서술하기 위해 사용되지 않으며, 또한 모더니즘 미술의 자립적 미학에 입각하여 그 자신만을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다 - 작가 (뤽 타이만)는 이러한 주어진 상황에 따르는 필연적 결과를 보여준다. ... 사회 정치적 사건에 대한 관심 ... 물감과 화면 자체의 물성이 환기시키는 순수한 시각적, 감각적 매력 ... 일견 매혹적인 타이만의 화면으로 빨려 들어가는 시선은 그 화면이 다루는 현실의 섬뜩함이나 일련의 주제에 접근하는 작가의 차가운 거리감에 의해 튕겨 나온다.
... 은은한 채광과 전체적으로 흐릿한 톤 ... 모노톤으로 부르기에는 너무나 감미롭고 색조를 따지기에는 극도로 억제된 팔레트를 갖는 일련의 작품 ... 회색 바닥과 석회색 벽면 ... 전시장 ... 건축 내부로 스며들어 사라질 듯한 아련함 ... 회화 작업을 할 뿐 아니라 캔버스간의 상호관계를 중시하는 인스톨레이션 기법 ... 2002 카셀 도큐멘타 ... 벽면에 걸린 무채색을 위주로 한 ... 신기루와 같이 벽면 속 혹은 공간 내로 사라져버릴 듯한 아련한 환상 ... 현실감을 배제하려는 듯한 빛바랜 색조 ... 극도의 파멸감과 실존주의적 분위기에서 제작된 장 포트리에의 팔레트를 생각나게 한다. ... 밀가루 반죽에 비교되기도 한다. ... 타이만은 이러한 포트리에류의 달콤하면서도 처절한 빛이 도는, 말하자면 페이스트리의 단어 내에 함축된 시니시즘을 계승하고 있다.
... 1988 아트포럼 기사에서 ... 얀 반 에이크 ... 플랑드르계의 원초적 사실주의의 차갑고 분석적인 시선과 제임스 앵소르를 필두로 하는 근대 벨기에 회화의 냉소적이며 동시에 연극적인 화풍의 특이한 융합 ... 회화를 통해 차가운 톤으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르네 마그리트 ... 불편하게 만드는 약간 잔인하면서도 자조적인 화풍 ... 사캐즘, 즉 풍자 ...
화려한 색채와 가면을 쓴 은유적 인물묘사 ... 2000년 데이비드 즈위너 갤러리 ... Mwana Kitoko ... 예쁜 남자아이 ... 벨기에의 젊은 백인 왕을 조소 ... 특정 제목의 선택에서 매혹적인 화면 뒤에 숨겨진 ... 시사성
노골적으로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면서도 항상 제삼자의 입지를 유지해온 ... 주제나 형식 어느 한쪽에도 그 구심점을 두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이미지 ... 이 시대 이미지의 결말을 시사하는 회화 ...
... 텔레비전에는 우리가 실제로 경험할 수는 없으나 볼 수 있는 막대한 양의 시각적 정보 ... 이미지의 파편을 만들 뿐이며 존재 자체가 편집된 듯하다... 내가 그림을 그리기 전에도 그 이미지는 이미 존재한다.
텔레비전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 내용은 편집된 이미지로 존재하며 이것이 현실과 직결되거나 그의 말대로 경험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 현실의 표상, 기호로서 어떤 매체의 경우에도 그 매체가 저장하는 이미지는 이미 하나의 기호 체계 내에 편입된 것이며, 현실이 현실의 기호로, 즉 홀로코스트는 홀로코스트라는 사건을 나타내는 하나의 기호로서 해석되어 편입된다. ... 이미 한 단계 편집된 현실의 기호를 또다시 재기호화하는 것으로 이미 그 홀로코스트라는 현실과는 두 단계의 거리를 거쳐 떠나온 것이다. 즉 이런 과정을 거친 후에 타이만이 홀로코스트라는 맨 첫 단계의 기의에 직접적으로 감정을 갖거나 의견을 갖기는 힘든 상태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이다. ... 리히터 ... 무거운 주제를 ... 증거사진 ... 가족사진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일차적으로 편집된 기호로 받아들이며 이러한 여과체를 화폭에 담음으로써 본인과 특정 사건의 관계설정을 최대한 유보한다. ...
이러한 심리적, 기호학적 거리감은 비단 사회적 의미가 있는 사건에 관한 작품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현상은 아니며 ... 그가 찍은 정물 사진이나 인물화, 또는 영화의 한 장면을 그린 작품에서도 마찬가지로 느낄 수 있는 사항이다. ... 타이만은 종종 본인이 찍은 폴라로이드 사진을 화면에 재현해 내는데 이들은 일상생활에서 그가 포착한 장면들로 그 화면은 결코 역사화적 중요성이나 현실의 재현을 뜻하기보다는 이미 흐릿한 기억의 일부로 편집된 한 장면임을 상기시킨다. 또한 폴라로이드의 사용은 타이만의 작품 화면에 감도는 회색조의 그늘과 투박한 경계선 그리고 불투명한 공기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설명해준다.
... 사진을 다시 찍은 것, 즉 책 속의 사진이나 증명사진 등을 다시 한 번 폴라로이드로 찍은 작품도 있다. 이는 곧, 이미 존재하던 사진들이 폴라로이드라는 또 하나의 필터를 거쳐 작가 앞에 제시되는 것이며 ... 폴라로이드라는 매체의 특수성이 이미지 안에 첨가되는 ... 재촬영을 통해 첫 번째 사진이 하나의 완성된 기호에서 타이만이 찍는 폴라로이드의 기의로 전환되는 이중의 기호체계 ... 기의는 인물이나 어느 사건 등 첫 번째 사진의 피사체가 아닌 이를 담는 사진 그 자체가 된다는 것이다 ... 일차적 대상과는 몇 단계 멀어진 기호의 기호로서 ... 촘베가 사진과 폴라로이드라는 이중 매체에 걸러져 캔버스에 옮겨졌을 때에는 이미 촘베라는 존재의 그림자, 혹은 유령과 같이 존재하는 것이다.
사진, 또는 영화 스틸이라는 원본의 사용은 화면의 구도라는 차원에서도 그 특질을 ...
... 타이만의 화면에서 광원은 의도적으로 차가우며, 그 이미지의 원전이 사진이나 텔레비전 화면에서 오기 때문에 대부분 기계의 발광체에서 나오는 형광빛의 무기질적 성격을 갖는다.
... 그림 속의 빛이 조금씩 그림 자체를 지워간다.
무엇을 재현할 것인지, 어떻게 재현할 것인지, 그리고 과연 재현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일으킨다.
... 평면 회화에 대하여, 특히 구상회화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철학적으로 생각하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작가는 결코 많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