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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t's Go 호세아 - 예수님께 청혼받은 고멜 이야기
강학종 지음 / 세움북스 / 2026년 3월
평점 :
세움북스. Let's Go 호세아 강학종
저자는 질문한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것이 어떻게 말이 되는가? 그것이 말이 된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인가?
청년 시절 나는 호세아서를 읽으며 호세아가 참 불쌍한 사람이다 라 생각을 했다. 아내를 잘못 두어서 저 고생을 하나 싶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시키긴 했지만 큰 돈을 가지고 구하러 간 아내, 고멜이 얼마나 이쁜 사람이었을까 하는 앙큼한 생각도 했다. 그게 나였다.
아니, 그 생각을 한 나라는 얘기가 아니라 호세아서를 읽으면서 고멜이 나라는 생각을 못했단 말이다.
강학종 목사님의 레츠고 호세아는 그 자리를 정확히 건드린다. 제목은 가볍고, 입문서 처럼 보인다. 내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저자의 책들은 전통적으로 설명은 쉬운데 내용에는 깊이가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이번 Let's Go 호세아도 그 흐름을 정직하게 이어간다. 거룩한 에로스 아가, Let's Go 로마서에서 이어오는 관계의 언어로 하나님을 읽는 방식이 이 책에도 진득하게 완성되고 있다.
이 책을 다른 호세아 강해서들과 구별하는 지점은 두가지다. 첫번째, 저자는 고멜을 해석의 대상으로 두지 않는다. 고멜을 둘러싼 신학적 논쟁, 즉 그녀가 결혼 전부터 음란했는지 이후에 음란해 졌는지 같은 주석적 논쟁을 빠르게 지나친다. 곧장 '나자신'에게 도착한다.
기존 호세아 강해서들이 종종 본문 재구성에 공을 들이는 것과 다르게, 강목사님은 청중의 심장을 향해 직선으로 걸어들어간다.
"하나님이 그 일로 인해서 마음이 상하셨다. 급기야 이스라엘을 '이 나라'라고 하기에 이르렀다."
눈에 띄는 해석이 있다. 바로 바알이란 단어다. 바알이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단순한 우상의 명칭이 아니라 남편이라는 뜻임을 잡는다. 그렇다고 쥐어 흔들지는 않는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되 하나님을 자기 필요를 채워주는 바알로 격하시켰다는 논지는, 오늘날 번영신학과 기복신앙을 향한 날카로운 비판의 잣대가 된다. 그러나 저자는 그 자리에 서지 않는다. 그 자리를 '나' 그래 내가 서야 할 자리로 만들어버렸다.
이 책을 읽는 가운데 청년때의 나를 다시 만낫다. 고멜이 이뻤을까 궁금해하던 그 청년, 그가 고멜이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은 하나님께 이뻤다. 그런데 이쁜 짓을 안 했다. 강학종 못사님은 그 민망함을 신학으로 덮지 않는다. 그냥 우리 앞에 내려놓는다. 좀 보라고, 본 남편이 아직 기다리고 있다고.
"하나님이 호세아로 말씀하셨다는 얘기는 하나님이 호세아의 인생을 쓰기로 작정하셨다는 뜻이다."
저자의 논증은 세 방향으로 움직인다. 호세아의 고통은 단순한 결혼의 비극이 아니다. 하나님이 호세아로 말씀하셨단믄 명제, 즉 선지자의 삶 자체가 메시지였다는 점을 집요하게 밀어붙인다. 개역한글의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다 와 호세아로 말씀하셨다는 전치사 하나 차이다. 저자는 거기서 한 사람의 인생을 통째로 쓰시는 하나님을 드러낸다.
그러면 저자가 내려놓았다는 우리 보라는 그 본남편이 뭘까 말했다시피 이스라엘은 참 남편되신 하나님을 기능적 남편, 필요를 채워주는 도구인 '바알'로 격하시켰다. 오늘날 교회가 하나님을 내 필요를 해결해 주는 신으로 다루는 것, 그것이 정확히 동일한 죄라고 말한다.
"사랑은 절대 감미로운 감정이 아닙니다. 그 사실을 인정한다면 우리 역시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그렇게 아플 수 있어야 합니다."
책의 중심부, 2장 19-20절 해석이 핵심에 이른다. "내가 네게 장가들어 영원히 살되." 결국 죄를 지은 자의 몸 값을 치르는 것은 하나님이다.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과 진실, 그것이 신랑이신 하나님이 신부인 나를 위해 지불하는 값이다. 그 값은 십자가로 이어진다. 자칫 감성적으로 흐를 스토리를 저자는 그렇게 마무리 하지 않는다. "그런 사랑을 받는 주인공들이다. 그러면 우리는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그렇게 아플 수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어떻게 돌아올까? 단순히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일까 실제 인간이 달라질까?
선언인 듯 하지만 질문한다. 닫히지 않은 문장 열린 결말을 보여준다.
얼마전에 힘들어하는 목사님을 위해 기도하자는 내용을 적었다.
내 얘기도 아닌데 누군가의 댓글이 개신교는 정신병이라는 다소 뜬금 없는 댓을 달았다.
그분이 자신의 기준으로 남을 비판하고 사는거엔 관심 없다.
다만, 일반인에 눈에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그 하나님과 관계는 맺지 않는 제대로 된 분리가 아닌 삶을 산다.
맞는 말이다. 결국 하나님 앞에 우리는 계속해서 질문해야 한다.
나는 하나님을 본 남편으로 섬기는가 아니면 바알로 섬기는가?
나는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을 구별하고 있는가? 쉽게 말하면 나의 신앙이 지식의 누적인가 관계의 깊이인가?
고멜이 나라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집을 나가 남편을 애태우고 있는가? 집에서 콩밭에 마음을 두고 있는가?
언제까지 성경을 남의 이야기로 생각할테인가? 이제는 나를 향한 본남편의 이야기로 생각하고
하나님과 다시금 관계를 회복해볼 고민을 한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하나님이 호세아로 말씀하셨다는 얘기는 하나님이 호세아의 인생을 쓰기로 작정하셨다는 뜻이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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