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사피엔스 - 또 하나의 현실, 두 개의 삶, 디지털 대항해시대의 인류
김대식 지음 / 동아시아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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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품절


팬데믹으로 일상은 멈췄지만, 비대면 일상을 이어가기 위한 기술 발전의 속도가 눈에 보일 정도로 빠르다. 역사적으로 큰 위기 상황은 변화를 몰고 왔고 지금 우리는 대변혁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서 있다. 그렇기에 팬데믹 이후의 삶은 결코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며, 21세기의 시작은 2020년부터라는 말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그 중심에 '메타버스'가 있다.

메타버스란 단어가 여기저기서 들릴 때 주워들은 설명으로 모호한 개념 덩어리가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메타버스, 가상현실, AI.. 그저 미래의 첨단 기술들이란 말로 뭉뚱그려왔던 개념들은 이 책을 읽고 이해도 100에 가까워졌다. 누구에게 설명하라면 할 수 있을 만큼 독자를 이해시킨 이 책은, 잘 써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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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란 간단히 말하자면 '다중 현실'을 말한다. 저자는 우리가 멀지 않은 미래에 또 다른 현실을 갖게 될 거고, 두 개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게임을 할 때 캐릭터는 나 자신을 대신한다. 이 경우 캐릭터를 '보고 듣고' 인지할 뿐 우리 몸으로 느낄 순 없다. 하지만 메타버스의 경우는 우리가 직접 캐릭터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우리가 직접 그 정보 안으로 들어가서 '체화된 인터넷'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에는 인터넷도 몸을 가지게 되고 우린 그 공간 속으로 직접 들어가 정보를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 메타버스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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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p​
2021년 10월, 페이스북은 사명을 메타로 변경하면서 소셜 미디어 회사가 아닌 메타버스 회사로 자리매김하겠다는 야심을 밝혔다고 한다.

"메타버스는 모바일 인터넷의 후속 모델이 될 것이다."
-마크 저커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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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뿐만이 아니다. 많은 기업들이 사활을 걸고 메타버스에 모든 걸 걸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우리가 지금 핸드폰으로 하고 있는 모바일 인터넷은 메타버스로 진화할 거란 말이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게다가 그 미래는 어쩌면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빠르게 올 것이다. 메타버스는 이미 시작된 것이다.

우리가 아는 '현실'이라는 건, 보이는 그대로가 아니라 뇌의 해석에 불과하다는 저자의 설명이 흥미롭다. 현실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단 하나, 고정값, 불가변적인 것이라는 기존의 생각은 바로 증발해버렸다.

현실은 고정값이 아니었고 뇌의 해석일 뿐이었다. 그렇다면 가상현실이 현실만큼 정교해지면 우린 두 개의 삶을 살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가 곧 두 현실을 살게 될 거란 말은 진실에 가깝다. 이젠 두 삶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가 더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메타버스는 이미 시작되었고 호모 사피엔스인 우리는 메타버스 사피엔스로의 진화를 앞두고 있다.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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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없는 육식의 탄생
체이스 퍼디 지음, 윤동준 옮김 / 김영사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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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도축하지 않고 고기를 먹을 수 있을까?
이런 말도 안 되는 질문에 '예스'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체외육, 배양육, 청정육, 세포배양육, 실험실재배육, 실험실제작육...
이 책은 아직 용어조차 통일되지 않은 '세포배양육'에 대한 이야기이다.
세포배양육은 콩고기와 같은 베지테리안 미트(vegetarian meat)
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살아있는 동물'에서 채취한 세포를 산업용 바이오리액터에서 배양해 '진짜 고기'를 만들어낸다. ​이 책의 제목처럼'죽음 없는 육식의 탄생'이 가능해진 것이다.

우리는 까마득한 옛날부터 고기를 먹어왔다.
그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은 고기를 먹는 일에 부자연스러운 마음이 생긴다. 육식을 하는 일에 생명, 윤리, 환경의 단어들이 점차 목에 걸리면서, '마음 편하게 육식을 해도 되는가?' 스스로에게 묻게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육식을 포기하는 일 또한 정말 쉽지 않다.
그래서 최근엔 비건 지향, 채식 지향이란 말도 생겨났다. 환경과 동물권을 위해 육식을 줄여야 한다는 대의에 대해선 많은 사람이 동의를 하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심화될수록 그에 대한 역효과로 환경은 파괴되어왔고, 이런 역의 관계는 고정된 듯 보였다. 그러나 앞으로 세포배양육이 마주할 거대한 시장으로 대변되는 엄청난 자본주의적 가치와 환경을 위한 일이라는 숭고한 가치는 더 이상 역의 관계가 아닌 정의 관계로 묶인다. 식량과 기후 문제 해결에 있어 이보다 더 좋은 대안은 쉽게 나올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저자는 전 세계를 넘나들며 세포배양육의 현실을 전한다. 앞으로 식탁에 올라올 음식을 아예 통째로 바꿔버릴 '세포 농업'에 대해, 세포배양육의 기술과 한계 그리고 문제점까지 총망라해 담았다.

SF 소설의 소재로 사용될 것 같은 '실험실에서 배양한 고기를 먹는 미래'가 곧 우리의 현실이 될 거란 저자의 말은 웬만한 SF 소설보다 더 재밌고 흥미롭고... 무엇보다 너무나도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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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실에서 '배양'한 고기를 먹을 수 있겠는가?
어쩌면 우리는 이제 이 질문 하나를 앞에 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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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명상 - 알아차림과 치유의 글쓰기
김성수 지음 / 김영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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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꾸준히 해본 사람들은 '글 쓰는 일의 치유력'을 안다. 키보드를 치다 보면 어느 순간 주변의 소리가 꺼지고 현존하는 나의 생각과 감정에 집중되는 에너지를 느낄 수 있다. 백지에 감정을 모두 쏟아내고 나면 실컷 울고 난 후의 기분처럼 후련하다. 이렇게 글 쓰는 행위에 중독되는 것이다.

이 책은 글쓰기가 가진 장점 즉, 감정의 비움과 집중의 에너지를 최대한 이용한 '글쓰기를 통한 명상법'을 제시한다.

글쓰기명상의 목적은 '문장을 잘 쓰는 데' 있지 않고, 쓰는 행위에 집중하면서 '자신의 깊은 내면을 발견하는 체험'에 있다. 그래서 띄어쓰기, 맞춤법, 오타 심지어 비속어라도 상관없이 생각을 모조리 옮겨 적으라고 말한다.

특히나 글쓰기명상이 통상적인 글쓰기와 다른 점은 어느 누구하고도 공유하지 않음이다. 따라서 글쓰기명상을 통해 쓴 글은 바로 지우거나 파기한다는 대원칙이 있다. 쓰고 나서 바로 삭제한다는 사실이, 모든 제약을 없애서 생각은 솔직함의 끝으로 내달린다. 바쁜 손으로 그대로 옮겨놓고 보니 예상치 못한 내 생각들에 낯설고 놀랍기도 한다.

이 책에서 권하는 글쓰기는 마음 깊숙히 박힌 감정을 꺼내는 일과 같았다. 가족, 연인, 친구 그리고 모든 다른 주제로 쓰는 것도 결국은 나의 내면을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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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인 비트윈 : 경계 위에 선 자
토스카 리 지음, 조영학 옮김 / 허블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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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되어버린 팬데믹 상황에서, 팬데믹 소설을 누가 읽겠냐는 우려와 달리 이 소설은 작가도 놀랄 정도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소설 속의 바이러스는 인간 광우병으로 치사율 100%, 백신도 치료제도 없다. 그래서 이 책 전반에는 지구 종말론적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어두운 미래상을 그려낸 디스토피아 소설류라는 공통점만 있을 뿐, 그 외 모든 설정은 다름에도 불구하고 읽는 내내 코맥 매카시Cormac McCarthy의 '더 로드'가 계속 겹쳐졌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두 사람이 황폐화된 도시들을 지나며 먹을 것과 생필품을 얻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사람들끼리 총을 겨누는 상황이 무섭도록 닮아 있었다.

디스토피아 소설은 지금의 편안하고 안락한 상황을 배경 삼아 읽는 매력이 있다. 소설 속 상황들은 극단으로 치닫지만 나는 현실에서 편하게 책장을 넘기고 있다는 여유가 오히려 스토리에 집중할 수 있는 몰입감을 주기 때문이다. 마음의 여유 없이는 혼돈을 그린 소설이 머릿속에 들어올 리 없다. 소설 속 상황이 우리에게 닥칠 미래라는 생각은 길게 늘려버린 시간 속에 묻혀, 실제 공포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은, 소설의 스토리가 마냥 낯설지가 않다. 바이러스가 순식간에 전 지구에 퍼져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끼고 다녀야 하고 매일 사망자가 속출하고 병동은 부족해지고 심각한 경우 도시가 통제된 상황이 실시간 우리의 현실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도 소설 속 바이러스처럼 치사율 100%에 백신도 치료제도 없었다면, 아마 우리도 피난을 해야 하고 약탈이 벌어지는 지독한 혼란 속에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보통 디스토피아 소설을 읽는 것과는 생경한 마음으로 이 책을 읽어 내려가게 되었다. 팬데믹 상황에서 팬데믹 소설을 읽는 건 상당히 '긴장되는 일'이었다. 너무나 개연성 있는 전개에, 우리의 미래가 언뜻 언뜻 보이는 느낌이랄까.

책을 다 읽고 나니 제목에 모든 함의가 있었다.
라인 비트윈: 경계 위에 선 자

우리 모두는 경계 위에 선 자들이 아닌가. 굳건하다고 생각했던 안정과 질서는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모래로 쌓은 성처럼 밀물 한 번에 형태도 없이 스러져 버린다.

주인공이 사이비 종교에 오랫동안 몸담고 있다가 한순간 신념의 전환이 이루어진 것처럼, 안정과 불안정, 질서와 무질서는 앞과 뒤 같아서 언제든 뒤집힐 속성이며. 천국과 지옥은 단 한 발짝 차이일 수도 있다.

지속되는 건 아무것도 없다. 우리 인생은 변화 그 자체이며 순간들이 모인 집합체일 뿐. 경계에 서 있다는 것은 '불안정함', '변동성'을 뜻하기도 하겠지만, 모든 건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뜻도 된다. 지금 겪는 모든 일은 우리 선택의 결과물이고, 다시 되돌리기 위한 일도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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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치밀하고 친밀한 적에 대하여 - 나를 잃어버리게 하는 가스라이팅의 모든 것
신고은 지음 / 샘터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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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란 용어가 생기기 전에도 분명 그런 행위는 존재했을 것이다. 다만 일련의 행위들이 한 데 묶여 '가스라이팅'으로 불리면서 사회적으로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행위도 이름이 생기고, 사람들에게 불리면서부터 비로소 제대로 된 평가가 이루어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가스라이팅은 '상대방의 상황과 심리를 조작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을 심리적으로 지배하는 행위'라고 한다. 정의만으로는 잘 와닿지 않을뿐더러 가스라이팅은 일상에서 매우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기에 직관적으로 이해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이 책의 저자는 가스라이팅의 모호한 개념을 우리에게 익숙한 소설, 드라마, 영화 속의 다양한 사례들로 한 겹 한 겹 덧입혀 명료하게 해준다.

가스라이팅은 보통 연인, 가족, 친구 등 친밀한 관계에서 행해지는 것이다 보니, 사랑, 관심, 조언의 겉모습을 하고 있어 알아채기가 어렵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많은 사례들을 읽다 보면 결국 내 경험과 겹치는 상황을 발견하게 되는데, 내가 피해자의 사례가 되기도 가해자의 사례가 되기도 한다는 점이 충격으로 다가온다. 내가 가스라이팅을 당하는지도, 하는지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서 살고 있었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든다.

이 책의 저자는 말한다.
내가 정말 틀린 건지, 저 사람에 의해 '틀림을 당하고' 있는 건지, 우린 스스로를 제대로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인간관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에서, 누가 100% 틀리고 누가 100% 맞는 상황은 있을 수 없다. 우린 모두 각자의 인생을 살아왔기에 다른 시각과 생각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상대방이 내가 틀렸다고만 주장한다면, 그리고 그게 반복된다면 내 감정과 의견은 없어지고 결국 나는 빈껍데기만 남을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잃어버리는 경우에는 모든 것을 잃게 된다네'​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나온 구절이다.

나 자신을 잃는 것은 모든 것을 잃는 것이기에,
​나를 잃게 하는 것은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심지어 가족이라도,
또 어떤 명분을 들고 있더라도,
허용할 수 없다는 단단한 신념을 쥐고 살아야겠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중요한 건 어떤 행위가 가스라이팅이냐, 아니냐의 기준이 아니라 '나를 나로서 살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것. 내 삶의 주체가 당연히 나임을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미 심리적으로 많이 위축되어 있어서 그런 관계를 한 번에 끊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저자는 작은 시도부터 하라고 조언한다. 그 시도가 비겁하고 나약한 방법이라도, 관계를 끊어내는 시작이 될 수 있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있다고 용기를 준다. '인식'을 한다는 건 모든 문제 해결의 시초가 된다. 내가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변화의 시작에 서 있는 것이다.
​​
가스라이팅이란 단어가 우리 사회에 떠오르면서 세상은 또 한 번 변할 거고, 앞으로 또 어떤 무명無名의 행위가 이름을 얻어 우리의 인식과 세상을 변화 시킬지 궁금해진다.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서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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