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옳은가 - 궁극의 질문들, 우리의 방향이 되다
후안 엔리케스 지음, 이경식 옮김 / 세계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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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은 내가 굳건히 쥐고 있던 신념과 생각을 마구 흔들어 놓는다. 겉으로는 정적으로 고요하게 책을 읽는 듯하지만, 그 내부는 나의 생각과 책 속의 문장이 맞부딪히고 깨지는 등 굉장히 시끄럽고 혼란스럽다. 이런 역동적 독서는 나를 본래 있던 곳에서 벗어나 다른 장소로 옮겨 놓는 것과 같다. 『​무엇이 옳은가』​는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은 '윤리란 고정되고 영원불멸의 어떤 것'이란 우리의 단단한 신념을 깨뜨려버린다. ​


이현우의 <타인을 듣는 시간>이란 책에서 '이해란 머리나 마음이 아니라 행동으로, 몸으로 하는 것이다. 때로 그렇게 자리를 이동하고 나면 원래 내가 있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라는 문장이 나온다. 『​무엇이 옳은가』​를 읽고 고개가 끄덕여졌다면, 독자는 본래 있던 자리가 아닌 새로운 곳으로 이동을 한 것이고 다신 예전처럼 생각할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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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사이코패스의 뇌 배선을 바로잡는 기술이 발명된다면 사회는 사이코패스의 뇌를 강제적으로 바꿔야 할까?
-우주여행을 위해 인간의 신체를 재설계하는 건 옳은가?
-인공자궁이 개발된다면, 체외 출산을 허용할 것인가?
-치명적인 전염병을 옮기는 모기를 멸종시킬 수 있다면, 없애는 게 옳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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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런 질문들을 쉴 새 없이 던지고, 독자는 자신이 서 있던 단단한 지표면이 흔들림을 느낀다. 이 책은 위의 질문에 대답을 하려는 것도, 윤리에 대한 정답을 이야기하려는 것도 아니다. 저자의 목표는 확실하다. 윤리는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가 윤리적이라 믿는 것은 기술 발전에 따라 생각보다 빠르게 변할 수 있는 유동적인 것이란 인식을 심어주려는 것이다. 저자의 목적만 보자면, 이 책은 성공적이다. 나 역시 이 책을 읽고 내가 가진 모든 윤리 의식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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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란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를 말한다. 뜻만 보자면 윤리는 절대 변하지 않는 어떤 '정수精髓'와 같지만, 윤리는 역사적으로 끊임없이 변해왔다. 노예 문제만 봐도 그렇다. 지금은 야만적인 행위로 여기지만 당시 사람들은 흑인을 노예로 사고파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다. '영국에서 노예제도를 가장 먼저 폐지한 것이, 다른 나라보다 산업화를 일찍 겪었고 노예무역으로 직접적인 수혜를 입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합당해 보인다.


이렇듯, 기술의 발전, 새로운 대안의 등장, 비용곡선의 하락은 윤리에도 변화를 일으킨다. 가까운 미래에 '세포 배양육(살아 있는 동물에서 세포를 채취해 배양한 고기)'이 보편화된다면, 미래 세대는 우리가 고기를 먹기 위해 행했던 공장형 목축, 비윤리적 도축, 환경파괴를 신랄하게 비판할 것이다.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받다 보니, 그 귀결은 반성과 겸손의 마음이었다. 우리가 지금 현재 누리는 기술 위에서 과거를 비난할 일도, 크게 자만할 일도 없다. 다음 세대가 만들어 갈 '신세계 윤리'로 보자면 우리 역시 비판받을 것투성이기 때문이다. 당연함이라는 강력한 물살의 흐름을 버티고 서서, 언제나 무엇이 옳은지에 대한 질문 하나를 마음에 품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 책이었다. 꼭 한 번 읽어보길 강력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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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둘리지 않는 말투, 거리감 두는 말씨 - 나를 휘두르는 타인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책
Joe 지음, 이선영 옮김 / 리텍콘텐츠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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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의 차이는 있더라도, 인간관계는 참 복잡 미묘해서 누구에게나 어려운 문제이다. 작가 박완서는 그의 에세이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에서 '모든 불행의 원인은 인간관계가 원할치 못하는 데서 비롯되며, 인생은 결과가 아닌 과정의 연속일 뿐이기에 과정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선 인간관계를 원활히 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각각 해석하기 힘든 두꺼운 책과도 같아서, 애초에 서로 간에 완전한 이해에 도달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다.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 친한 친구와도 갈등 요소가 많은데, 하물며 다른 인생의 경로를 살아온 타인들이 모인 사회에선 오죽할까. 실제로 회사 생활할 때 가장 많은 갈등이 인간관계에서 나오고 이직을 결정하는 꽤 큰 요소로 작용하는 만큼, 인간관계도 기술적 노력이 필요할 때가 많다.


『​휘둘리지 않는 말투X거리감 두는 말씨』​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휘둘리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자세한 예시를 통해 타인과 적당한 거리를 두는 법, 기분 나쁘지 않게 거절하는 법, 거절 후의 대처법, 무게감을 가지는 법 등 '기술적'으로 설명한다.


인간관계나 심리에 대한 내용이 깊은 건 아니어서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만, 현재 겪고 있는 문제에 바로 적용할 수 있는 '말의 테크닉'에 집중한 책이라 유용한 면도 있다. 부탁을 거절하기 힘들 때, 사람을 만나고 오면 마음이 개운하지 않은 분들이나 사회 초년생들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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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는 천천히 벌지 않는다
제임스 알투처 지음, 함현주 옮김 / 김영사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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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자는 천천히 벌지 않는다』는 나를 단단히 오해하게 만들었다. 제목만 보고 한치의 의심도 없이 재테크에 관한 책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가지고 있던 돈을 불리는 '재테크 방법론'이 아니라, '내 능력을 빠르게 키워 돈을 벌어들이는 방법론'에 관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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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9.11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에서 단 네 블록 떨어진 곳에 살았다. 매일 아침 세계무역센터 1층에서 아침을 먹던 그는, 그날 어느 비행기가 날아오는 것을 보았고, 고도가 심상치 않음을 느꼈고, 죽기 살기로 도망쳐 살아남았다. 하지만 그날 이후 그는 빈털터리가 되었다. 사고 트라우마로 악몽을 꾸면서도 그는 먹고사는 일을 걱정해야 했다.



예상치 못한 사고나 질병 또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같은 세계적 위기 상황으로 하던 일을 그만두거나 사업을 접어야 하는 경우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가 되었다.『 부자는 천천히 벌지 않는다』​의 저자 역시 테러와 팬데믹의 위기를 겪었고, 20개가 넘는 기업을 설립하면서 성공보단 실패에 익숙한 사람이었으며, 언제나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그에게 '1만 시간'은 영겁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그에겐 한 계단씩 오르는 계단보다 도약을 위한 점프대가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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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시간 법칙'은 미국의 심리학자 앤더스 에릭슨이 발표한 논문에서 처음 소개된 개념이다. 1만 시간의 법칙은 어떤 분야에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선 최소한 1만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이론이다.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어 관련 책이 쏟아져 나왔고, 1만 시간은 '엄청난 노력과 끈기'와 동의어가 되었고, 성공을 위한 필요조건으로 받아들여졌다.



저자는 '1만 시간의 법칙'에서 '시간'을 과감히 빼고, '실험'이란 단어를 넣으며, 성공의 정석이라 받아들여졌던 이론을 쉽게 비틀어 버린다. 그는 한 가지 일에 1만 시간을 투자하기보단,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그 가능성을 빠르게 실험하고 모든 실험 과정에서 배우라고 조언한다. 그것이 빠르게 성장하고 꼭대기로 도약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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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은 단어에서부터 큰 용기가 필요한데, 실험한다고 생각하면 부담감이 확 줄어든다. 실험은 실패를 전제에 깔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번 실패하더라도 그것은 실험 단계이기에 상처받을 일이 없다. 그리고 오히려 실험은 실패를 통해 배울 것이 더 많다. 저자는 심지어 실패라는 단어를 쓰지도 않는다. 실험의 결과는 성공하거나 배우거나 두 가지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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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실험의 법칙' 외에도 능력을 1% 복리로 성장시키는 법, 가능성 근육을 키우는 법 등 빠르게 도약하기 위해 실제 삶에서 적용할 수 있는 미시적 기술들도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이 책은 특히나 젊지 않은 나이에 새로운 일을 하고자 하는 분들이나 창업을 계획하고 있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1만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도약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건 희망과도 같은 이야기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 더 이상 잡을 수 없는 신기루 같은 희망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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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
김헌 지음 / 을유문화사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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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면 우린 미시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당장 매일매일 삶을 살아가기조차 버겁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으면 내 시야는 저 멀리 있는 산과 높은 하늘을 뚫고 그 너머의 우주로까지 가서 지구를 내려보는 느낌까지 든다. '거시적 관점의 전환', 이번에 이 책을 읽고 나서, 그것이 나에겐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는 이유'라는 걸 느꼈다.


저자 김헌 교수는 또 다른 우주와도 같은 장대한 그리스 로마 신화를 한 권의 책으로 집대성하였다. 수많은 뉴런을 연결하는 시냅스와 같은, 서로 간에 복잡하게 얽혀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 속 신들의 연결고리가 이 책을 통해 더욱 선명히 드러난다. 『김헌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단편적으로 알고 있던 이야기들에 깊이를 더하고 앞뒤 맥락을 연결하여 독자의 인식 속에 합쳐진 하나의 세계를 이루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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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는 서양 문화의 깊은 뿌리 쪽에 자리 잡고 있다. 뿌리에서부터 자라난 줄기가 튼튼한 기둥이 되고, 무수한 가지가 문학과 예술에 뻗쳐 무성한 잎과 꽃을 피워냈다. 최근엔 드라마와 영화를 포함한 미디어 콘텐츠, 브랜드, 게임산업에까지 그리스 로마 신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꼭 알아야 하는 필수 교양의 틀로 가두기보단, 문학과 예술 더 나아가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여러 지침서 중 하나로 생각한다면 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대해 반감을 가진 사람도 상당히 많다. 윤리적인 관점에서 보면, 근친상간, 강간, 살인 등을 일삼는 장면도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우라노스가 자신의 어머니 대지의 신 가이아를 아내로 삼는다거나, 시간의 신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하여 새로이 권좌에 오르거나, 친누이 헤라와 결혼하고도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는 제우스의 모습 등 아이들과 함께 읽기엔 당황스럽고 민망한 내용도 꽤나 많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다고 보긴 어렵다고 말한다. 이런 사건은 신화 학자들의 말처럼 대부분 상징과 은유 일테고, 당시의 윤리적 기준과 현대의 기준은 그 시간의 간극만큼이나 크게 벌어져 있기 때문에 현대적 해석이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해석'과 '길잡이' 역할에 충실하다. 저자는 과장되고 어쩌면 불쾌하고, 또는 재미 요소에 가려진 그리스 로마 신화의 참뜻을 구어체의 편안한 어투로 독자에게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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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책들처럼 명화나 조각상의 사진을 삽화로 넣지 않고, 하나하나 정성껏 그린 세밀화를 큰 도판으로 책에 담았다는 점, '올륌피아', '오뒷세우스'와 같이 관련 표기를 국립국어원의 표준국어 대사전을 따르지 않고 고대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발음을 살려 표기했다는 점도 이 책의 큰 매력 요소이다. 서울대학교에서 20여 년에 가깝게 명강의로 사랑받았던 김헌 교수의 그리스 로마 신화를 한 손에 쥘 수 있다는 것도 종이책이 가진 마법과도 같은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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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하는 세계의 사랑 초월 1
우다영 외 지음 / 허블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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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하는 세계의 사랑』은 각자의 매력이 짙은 다섯 작가의 SF 중·단편을 모은 앤솔러지이다.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출간 예정작의 프리퀄을 모아놓았다는 점에서, 다섯 개의 거대한 세계의 입구이며 찬란한 미래 여행의 시작을 보여준다. ​⠀


최근에 읽은 책 『​거시기 머시기』​에서 저자 이어령은 '흔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과학이고,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문학예술'이라고 말했다. 또한 국어사전에서 'SF'를 검색하면, '시간과 공간의 테두리를 벗어난 일을 과학적으로 가상하여 그린 소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


즉 우리는 'SF'라는 문학예술의 한 장르를 통해서, 시공간을 초월하여, 설명할 수 없는 미래를 가상의 과학으로 설명되는 쾌감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SF를 읽는 재미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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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가 가상의 미래를 그린다고 하지만, 먼 미래 역시 현재를 포함한 시간의 축에 있을 따름이다. 기술이 진화하여 겉모습은 확연히 달라졌어도, 그 안에 내포된 문제들은 현재에서부터 움튼 것이라 낯설지가 않은 것이다. ⠀


이 책을 통해 다섯 가지의 미래 여행을 하면서 나의 인식은 미래와 현재에 공존했다. 우다영 작가의 『​긴 예지』​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미래는 과거의 패턴의 반복일 뿐이지 않을까. 수백 년 또는 수천 년을 지나온 명화와 고전 작품 속 삶이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음도 이를 뒷받침한다. ​⠀


다섯 작가가 그린 다섯 가지의 미래에는 이처럼 과거가 그 밑바닥에 짙게 깔려 있었고 작가의 현실 인식도 진하게 느낄 수 있었다. 그들의 상상력에 매료되어 책에 빨려 들 듯 읽고 나서 이 작품들이 프리퀄임에 감사했다. 프리퀄이라고 하기엔 완성도 있게 쓰인 중·단편이 장편으로 출간될 땐 어떤 이야기가 새롭게 드러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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