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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륭 - 63년 4개월의 절대 권력
장훙제 지음, 조유리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2월
평점 :
늘 그랬듯이 관심 있는 출판사와 관심 있는 내용의 조합은 지나치기가 어렵다.
거기다 “황제의 딸”, “옹정황제의 여인”, “연희공략” 등에서 재창조된 가상의 건륭이 아니라 역사서에 기록된 역사로서의 건륭을 한번은 보고 싶었던 마음도 컸다.
책은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가경제 네 명의 시기 동안 이어지는 아이신교로愛新覺羅 훙리弘曆의 생애 전반을 다룬다. 89세(만으로는 87세)까지 장수한 데다가 청 황제로서는 유일하게 양위하고 태상황에 올랐기에 더 이야깃거리가 많을 수밖에 없다.
책에서는 건륭이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을 하나하나 보여준다. 황권에 위협이 되는 일곱 요소인 ①외적의 침입, ②농민의 봉기, ③권신과 간신, ④태감의 횡포, ⑤여인들의 내정 간섭, ⑥황족의 반란, ⑦당쟁을 처리하며 철저히 건륭제 중심의 청나라를 만들어간다. 강희제, 옹정제 대에도 이 일곱 가지를 완전히 제어하지 못했는데 건륭제는 이를 모두 달성한다.
건륭제의 통치기는 크게 청년기(건륭원년-13년), 중년기(건륭13-47년), 노년기(건륭47-가경3년)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사실상 절정기는 청년기가 아니었을까 한다. 효현황후 푸차富察씨의 죽음 이후 들어선 중년기는 공포정치나 다름없는 시기였고, 노년기에는 이성적 판단력을 상실한 모습만 보여주었다. 그나마 중년기의 공포정치는 황권 강화를 위한 목적이라도 있었지, 노년기의 행태는 노욕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것도 없었다. 거기다 지나치게 과거를 준거로 삼은 탓에 급변하는 세계를 읽어내지 못했다. 황권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신권을 죽이다시피 한 바람에 이러한 세계사적 변화를 전달해 줄 능력 있는 신하조차 없었다. 시린교로西林覺羅 오르타이鄂尔泰도, 장정옥張廷玉도 당쟁을 처리한다는 명분으로 힘을 꺾었고, 노년에 곁에 둔 건 부정축재의 귀재인 뇨후루鈕祜祿 허션和珅이었으니 일이 제대로 되긴 힘들었던 것이다.
역사로서의 건륭을 만나보긴 했으나 여전히 아쉬움이 남는다. 건륭제가 주인공인 책이긴 하지만 지나치게 건륭제 중심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부분들이 있었다. 강희제가 옹친왕이었던 아이신교로愛新覺羅 인전胤禛에게 황위를 물려준 것을 훙리弘曆의 능력 때문으로 해석하는 것은 너무 나간 것이 아닌가 한다.
번역에서도 음차 표기 관련 아쉬운 점이 있다. 먼저, 국립국어원 규정 용례의 문제가 있다. ‘규정 용례’에서는 ‘중가르’를 맞는 표기로 삼으며 ‘윤가르, 준가르’ 등을 잘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그 근거는 확인할 수 없다. 몽골어 어원이나, 당시 한어로 굳이 준가르準噶爾로 음차한 것이나, 더 나아가 “조선왕조실록”에서 ‘준이準夷(영조 36년 1월 15일)’라 기록한 것 등을 고려하면 ‘규정 용례’에서 잘못이라고 한 ‘준가르’가 오히려 타당해보인다. 실제로도 대부분의 자료는 ‘준가르’를 사용하고 있다. 연구개음화를 인정하지 않는 현대 우리의 기준과도 부합하지 않는다.
이후의 문제들은 번역 과정에서의 문제다. 대체로 뉴호록으로 표기하는 鈕祜祿에 두음법칙까지 적용해서 ‘유호록’으로 표기한 것은 아니지 않나. 보르지기트의 음차인 박이제길특博爾濟吉特을 ‘박이재결특(p.13)’이라 한 것은 오타로 보인다. ‘박석극도博碩克圖 칸(p.232)’도 이왕 원음을 따르기로 했다면 ‘보슉투 칸’으로 표기하는 게 나았을 듯하다. ‘박라이博羅爾(p.238)’도 다른 지명들처럼 볼로르Bolor로 옮겼어도 좋았을 듯하다. ‘곽이객郭爾喀(p.339)’은 현재에도 통용되는 구르카Gurkha로 옮기는 게 좋아보인다.
“건륭”을 통해서 “황제의 딸” 등 여러 드라마에서 만들어 낸 가상의 건륭이 아니라 역사로서의 건륭을 만나볼 수 있었다. 중국 사극이야 역사적으로 믿어서 곤란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정도면 가상사극이라 부르는 게 타당해보였다. 그리고 이미 “황제의 말과 글(정동훈, 2023)”에서 보았듯이 중국 측의 기록 역시 비판적으로 보아야 할 필요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24.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