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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 - 만주국의 초상
야마무로 신이치 지음, 윤대석 옮김 / 책과함께 / 2024년 2월
평점 :
원서는 20년 전인 2004년에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2009년에 번역 출간되었다. 2024년 본은 2009년 번역본을 조금 다듬은 것이다. 몇 해 전 알라딘 추천 마법사가 내게 띄운 책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설명만 보고 보관함에 두었다가 2024년 본이 나오고 거의 일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서야 읽게 되었다. 뜬금없지만 "키메라"를 읽어야겠다는 동기는 "청명상하도"에서 출발하였다. 정작 "청명상하도"에서 자세히 다루지 않은 '청명상하도'의 행방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주국'이 걸렸다.
만주국은 탄생과 운영이 상당히 엉망진창이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라는 것이 대규모로 나타면 이렇게 되겠구나 싶은 수준이었다. 만주국의 황제였던 푸이, 얼마 되지 않았던 중국인 고위층들, 그리고 사실상의 설계자이자 지배자인 일본 관료들 개개인의 입장이 모두 달랐다.
만주국협화회는 창립선언에서 자본주의, 공산주의, 삼민주의를 배격함을 강조… (p.223)
자본주의, 공산주의, 삼민주의 등 실현가능한 거의 모든 것을 배격하게 된 배경이 지나치게 많은 사공 때문임을 확실히 알 수 있다. 거시적인 수준에서도, 미시적인 수준에서도 의견이 동일한 사람은 사실상 아무도 없었다. 만주국은 철저한 동상이몽의 공간이었던 것이다. 만주국이라는 이상과 달리 현실은 냉혹했다.
오히려 하늘이 만든 재난은 피할 수 있다. 자신이 만든 재난은 피할 수 없다.(p.337. 푸이가 자서전에서 인용하고 있는 서경書經의 한 구절)
서경書經 태갑太甲에 나오는 "天作孽 猶可違 自作孽 不可活"이 그 출전인 말인데, 요새 표현으로 하자면 '스불재'라 할 수 있다. 만주국을 통해 각자의 이상을 실현하려 했던 이들은 스스로 불러온 재앙에 짓밟히는 것으로 그 막을 내렸다.
그리고 나는, 이 와중에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아우렐리우스 "명상록"의 한 구절에서 찾았다.
A man must stand erect, not be held erect by others(Aurelius, "Meditations" Book Ⅲ, Verse 5.)
만주국에서 본인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중국인들, 일본인들.
그들은 스스로 똑바로 선 것이 아니라 서로에 의해 세워진 것에 불과했으므로 그 결말 역시 피할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24.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