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의 비밀
에리크 뷔야르 지음, 이재룡 옮김 / 열린책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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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2차 세계 대전을 다룬 책이지만, 독특하게도 전쟁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전투 장면이 나오지 않는다. 다만 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기 직전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긴박했던 상황을 묘사하고 있을 뿐이다. 역사를 다룬 책이지만 인물과 상황의 상세한 묘사들이 문학 작품을 읽는 듯하다.


표지의 사진을 본다. 근엄해 보이지만 어딘가 겁에 질린듯 하고, 구겨진 종이와 구겨진 호주머니를 보면 급한 일을 처리하는 도중 사진을 찍은 것 같다. 그리고 약간은 멍해 보이는 초점이 없는 표정이다. 사진의 주인공은 오스트리아의 총리 슈슈니크이다. 1938년 2월 12일, 그는 히틀러와 면담을 하며 오스트리아가 독일 정책을 돕지 않는 다는 꾸지람을 두시간이나 들었고, 나치당의 일원인 리벤트로프와 폰 파펜에게 총통(히틀러)의 최종안이라며 오스트리아가 국가 사회주의 이념을 허용할 것, 나치당의 일원인 자이스잉크바르트를 내무부장관으로 임명할 것, 오스트리아에 수감된 형법 위반자를 포함한 나치당원을 모두 사면할 것, 오스트리아 선전 지도부를 즉각 파면할 것 등의 내정간섭에 해당하는 요구를 듣고 나오는 길이었다. 조치기한은 일주일 내이다. 이 사진은 독일의 오스트리아 병합을 위한 시초가 되는 사진으로, 당시 상황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듯하다.


슈슈니크는 히틀러가 요구한 자이스잉크바르트를 내무부장관에 임명하는 것에 동의했는데, 그래서 당시 오스트리아 내부 나치당원들은 독일과의 통합이 다가왔다고 여기고 과격한 폭력행위에 돌입한다. 국내 치안이 불안하다고 느껴지자 슈슈니크는 국민투표를 통해 합의를 깨고 오스트리아의 독립을 하고자 시도했으나, 결국 히틀러를 추종하는 오스트리아 내부의 나치당원과 독일의 힘에 의해 독일에 합병되고 만다. 독일과의 합병은 2차 대전의 서막을 알리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아주 조용히 평화롭게 진행되었다. 오스트리아 국민은 독일군을 열렬한 환대로 맞이했고, 독일군은 무저항으로 오스트리아까지 진주했던 것이다. 이는 실은 더 오래전 역사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한나라였으나 나눠진 나라가 되었고, 그래서 같은 민족성과 언어를 공유하는 독일 문화권이라는 관념이 신성로마제국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시민들이 독일과의 통일을 지지했던 이유는 합스부르크 왕조가 만든 "대독일"국가를 이룰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었고, 반면 카톨릭 보수주의자들은 독일과의 통일이 합스부르크의 전통인 오스트리아가 아니라 나치에게 삼켜지는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슈슈니크는 그 반대편의 입장이었다. 결국 국민 투표에서 97%라는 압도적인 찬성표로 오스트리아는 독일에 합병되고, 슈슈니크는 총리직을 사임한다. 2차 대전이라는 재앙은 이렇게 시작했다.


당시 오스트리아 시민들이 독일과의 합병을 반대했으면 어땠을까? 아니면 히틀러의 압박에 나치 정권에 정치 자금을 대던 오펠, IG 파르벤, 지멘스, 알리안츠, 바스프, 바이엘 등이 자금을 대지 않겠다고 했으면 나치 정권이 전쟁을 시작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어쩌면 자신들의 안위만을 생각한 소심한 겁쟁이들이다. 그리고 전쟁 중 유대인 수용소의 노동력을 빌려 사업을 했던 BMW, 다임러, 바이엘, 지멘스, 셸, 슈나이더, 텔레풍켄 이들도 전쟁의 방조자나 다름없다.


이 책은 전쟁의 시작을 보여주며 간접적으로나마 나치의 승리를 도운 그들을 고발 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정치에 무관심할때 독재자들은 우리 삶을 어떻게까지 변화시킬 수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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