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갑 - 우크라이나 민화 내 친구는 그림책
에우게니 M.라쵸프 그림, 배은경 옮김 / 한림출판사 / 2015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인 저자의 아동문학 관련 서적에서 이 그림책을 분석해 놓았기에 그걸 읽고 호기심이 생겨 구입하였다.   

 장갑은 작가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상징적인 작품이다.  장갑은 단순한 장갑의 기능을 뛰어넘어  

주거 공간의 재탄생한다. 즉 생활 공간이 되는 것이다. 넓은 의미에서 삶의 터전. 

장갑 속에 살기 위해 오는 다양한 동물들.  

그들 중 어느 누구도 거부되지 않고 받아들여진다.  

그건 바로 입구에 설치해 놓은 계단이 그걸 상징하고 있다.   

새롭게 생겨난 창문은 소통의 가능성을 그리고 문 앞에 설치된 종은 또다른 의미를 상징함으로써 

이 작품은 그림책을 뛰어넘어 잘 짜여진 한 편의 시라 하겠다.  

삶의 방식과 본성이 다른 각기 다른 동물들이 장갑 안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그들의 표정은 밝다. 이로써 상생, 배려 등의 주제를 잘 드러내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무선) 보름달문고 44
김려령 지음, 장경혜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려령 작가의 입심은 대단한 것 같다.  작품 <완득이>에서 벌써 입심을 맛보았는데 이번 작품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에서 다시한 번 접하게 됐다.  

김작가는 작품 구성 면에서 새로운 면을 선보여 참신했다. 말하기 방식에 변화를 가져와 새로운 기법을 소개한 것이다. 마치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의 글쓰기를 통해 옛이야기를 듣던 방식을 불러왔다. 이런 방식 때문에 매끄럽게 이어지는 이야기가 마치 한 편의 동영상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작품의 구성이 새로웠지만 인물 면에서 약간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이동식 건널목을 가지고 다니는 건널목 아저씨. 그 아저씨는 마치 우리가 동화라고 부르는 작품에서 나올 법한 인물 상이다. 전형적인 동화의 인물형 인 것이다. 여기서 필자가 말하는 동화란 전래동화 쪽이 더 적합할 것이다.  

  이 책에 나오는 건널목 아저씨는 만능해결사 같은 인물이다. 즉 우리의 마음 속에서 간절히 염원하는 산타클로스 같다고나 할까? 때문에 건널목 아저씨가 등장하는 곳에는 행복이 찾아든다. 아저씨가 아리랑 아파트에 나타나자 아리랑 아파트는 화합의 공간으로 변한다. 그리고 건널목이 없던 곳에는 건널목이 생기고. 부모가 없는 태희와 태석이는 부모의 따뜻함을 건널목 아저씨에게서 느낀다. 특히 부모의 싸움 때문에 갈 곳이 없어 방황하던 도희에게는 피난처를 제공해주는 부모보다 푸근한 아저씨다.  

  아저씨는 어쩌면 우리 현대 인간들이 간절히 원하는 그런 인물인지 모르겠다. 현대인의 각박하고 이기적인 관계속, 그리고 다양한 어려움이 내재한 사회망 속에서 고대하게 되는 마음이 훈훈한 희생적인 인물. 동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문제와 갈등을 말끔히 해결해 주는 이타적인 인간인 것이다. 이런 인물이 동화 속에 등장하다보니 이야기의 긴장감이 다소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필연성인지도 모르겠다.  

  동화라면 모름지기 어려운 상황과 현실을 사실대로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을 읽는 독자에게 훈훈함을 전해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도 중요하다고 본다. 그런데도 김려령 작가가 창조해낸 건넌목 아저씨는 어딘지 모르게 아쉬움이 남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사건에 맞게 자연스럽게 인물들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건널목 아저씨에게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아 찜찜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쉽게 말해 건널목 아저씨는 자신이 아닌 남을 위해 살아가는 희생적인 인물이다. 즉 남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기 위해 태어난 비현실적인 사람인 것이다. 그렇다보니 자신의 욕심을 아니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삶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석연치 않은 점을 보이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비현실 적인 인물이 작품이 등장하면 안 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이야기가  힘이 떨어지는 점을 찾다보니 그점이 발견 된 것이다.  

  이야기 듣기 교실과 무명의 작가 등 작품을 풀어가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아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뻐꾸기다 - 2009년 제15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일공일삼 52
김혜연 지음, 장연주 그림 / 비룡소 / 2009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품 속 인물들의 환경은 엄청 비관적이지만 인물들의 성격은 긍정적이다. 때문에 작품이 전체적으로 힘이 있고 밝은 기조를 바탕에 깔고 있다.  

 동재는 자신의 아픔에 짓눌리지 않고 무난히 감당해 낸다. 어찌 보면 아픔의 무게에 눌려 삶을 비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데 동재의 정신건강은 아주 양호하다. 보통의 작품에서는 동재 같은 환경의 인물은 자신의 아픔에 헤어나지 못하고 그보다 더한 무게를 가해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소개되지만 이 작품은 그렇지 않다.  

동재와 902호 아저씨, 유희의 성격 때문에 작품 전체가 씩씩하고 힘이 흐른다는 게 감지된다. 그렇다고 해서 동재나 902호 아저씨의 아픔이 느껴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밝은 톤으로 이야기를 꾸려가지만 인물들의 상처를 충분히 드러내고 있다. 이점이 이 작가의 장점으로 보인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덜어내기 위해 인물들은 친구를 갖게 된다. 무게를 더는 데는 혼자보다 둘이 더 낫지 않겠는가. 동재와 902호 아저씨는 세대 차이를 넘어 끈끈한 우정을 틔워간다. 이처럼 우정을 틔울 수 있는 데는 전제조건들이 있다. 인간을 따뜻하게 볼 수 있는 마음과 시선, 그리고 남을 믿을 수 있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다. 
 

이 작품에서는 그것들이 아주 자연스럽게 소개되고 있다. 902호 아저씨는 동재의 부끄러운 사건을 동재에게 부담주지 않고 해결해 준다. 그리고 동재는 자신의 부끄러운 치부(엄마한테 버려져 외삼촌 집에 산다는 것)를 아저씨에게 털어놓는다. 동재의 고백은 아저씨를 믿는다는 조건 내에서 가능한 행동이다. 이와 같은 것들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에 작품이 터덕거리지 않고 물 흐르듯 매끄럽게 전개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 생각은 누가 해줘? - 2006년 제12회 황금도깨비상 수상작 일공일삼 33
임사라 지음, 양정아 그림 / 비룡소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황금빛나래의 시선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이야기로 촘촘한 나래의 심리가 느껴진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편부모 가정에 대해 고정적인 관념을 이 작품을 통해 또다시 심어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이다.  

작품 속 인물 중에서 나래 엄마는 편부모 가정에 대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세상 사람들이 나래를 그렇게 취급할까봐 겁을 낸다. 그렇지만  편부모 가정 내에서 자라고 있는 나래는 엄마의 걱정처럼 결코 부정적이지 않다.  

  양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보다 더 올바르고 밝고 건강하다. 그런데 이에 비해 가정환경이 열악한 나리는 편부모 가정의 전형을 보여주기 위해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나래의 상황과 비교를 위해 작품의 구성상 나리의 상황 설정 했겠지만 이런 부분에서 작가는 좀더 깊은 고뇌를 했어야할 것 같다.  

  이 작품 내에서 나래 엄마와 학교 선생님이 편부모 가정에 대해 부정적인 관념을 보인다. 그런데도 일반인들이 보편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관념적인 편부모 가정의 형태를 나리환경에 설정하였다. 이점은 자칫하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편부모 가정의 형태를 나리네 집처럼 일반화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작품의 말미에서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것을 나래가 받아들이는 부분이 있다. 이부분에서 아쉬움이 컸다. 이제 막 세상의 온갖 모험을 겪어 가야할 아이에게 그런 생각을 심어준다는 게 애석하기까지 했다. 자칫 세상은 다 그런거야 하면서 능동적인 도전이 아닌 삶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살아가라는 것으로 잘못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이 작품 결말 부분에서 두리뭉실한 화합을 불러오고 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여름방학 불청객 카르페디엠 26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 지음, 김재희 옮김 / 양철북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만약 자기 집에 교환학생으로 온 애가 가족들과 융화하지 못하고 제멋대로 행동을 한다면 참아내기 힘들 것이다. 예의도 없고 가족들의 생활에 불편을 준다면 당장 자기네 집으로 되돌려 보내는 게 보통 사람들의 행동일 것이다. 그런데도 이 모든 걸 참아내는 것을 보고 처음에는 작위적인 느낌이 들었다. 아니 도입부에서 구구절절 에발트 미터마가 자기 엄마와 아빠 그리고 누나에 대해 늘어놓을 때 작품의 핵심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나중에 알고 보니 하나의 장치들이었다. 에발트의 엄마와 아빠가 재피터 같은 괴물을 껴안아주고 품어줄 수 있는 이유들을 미리 암시하고 있는 장치였다.

자식의 성적에 연연하고 성적을 올리기 위해 극성인 엄마, 자식의 교육 문제 때문에 자신의 생활이 간섭 받는 게 싫어 부인의 교육 방식에 무조건 적으로 찬성을 보내는 아빠. 이런 부모를 서운하게 생각하는 자녀들. 평화로워 보이는 가정 내에 적지 않는 갈등들이 내재해 있다. 그들은 서로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옭아매면서 서운한 감정들을 느끼지만 아무도 그걸 드러내놓고 표출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적나라하게 재피터가 표출을 한다.

장치는 아주 잘 돼 있다. 교환학생으로 온 재피터는 영국인이다. 평온한 오스트리아 가정에 와서 분란을 일으키는데 여기서 문화적 차이를 통해 인간들 내에 형성돼 있는 벽을 자연스럽게 부각시켜준다. 이해할 수 없는 재피터의 행동을 재피터 개인의 잘못으로 지적하지 않고 영국인이기 때문이라는 다소 모호한 형태로 약화시키면서 결국은 휴머니티의 세계로 다가갈 수 있도록 디딤돌을 놓아간다.

이 작품에서 에발트의 부모는 훌륭한 부모이다.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해 내는 성인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아로 지적할 수 있는 재피터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에 부딪치면서 돌파구를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나라 부모들 중에 과연 에발트의 부모처럼 부모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솔직히 나도 자녀를 키운 부모지만 에발트의 부모처럼 자격이 충분해 보이지는 않는 것 같다.

우선 나만 같아도 재피터 같은 아이를 본다면 회피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적인 인간을 회피하지 않고 사랑으로 치유해 주는 에발트의 엄마와 아빠를 보면서 문화의 성숙과 부모의 자격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교육에 대해서도. 문제적인 인간과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함께 살아야 한다. 인간이 살 수 있는 공간은 지구로 한정 돼 있기 때문에 문제인물도 우리와 함께 다른 행성이 아닌 지구에서 부대끼며 살아가야한다.

그렇다면 재피터처럼 문제아인 아이들을 껴안아주고 마음속의 벽을 허물어 주는 것은 우리 모두의 몫이 되는 것이다. 에발트의 부모님을 그걸 알고 있기에 재피터에게 자신의 자식들처럼 진정한 사랑을 쏟아준다. 작가는 아마도 이 작품을 통해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가 재피터 같은 인물을 따돌리고, 손가락질 하고 문제아라고 낙인찍기는 쉽지만 에발트의 부모님처럼 치유해 주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이 작품에서 겉 스토리 라인은 재피터의 상처를 치유해 주는 것으로 나오지만 속 스토리라인이 하나 더 있다. 그것은 재피터의 행동을 통해 그를 껴안아 주면서 에발트네 가족 사이에 쌓여있는 갈등이 해결 되는 것이다. 부모는 자식을 이해하게 되고, 자식들은 부모의 사랑을 체감하면서 이 동화는 각기 인물들 사이에 그물망처럼 형성됐던 갈등이 해결되면서 끝이 난다.

뇌스틀링거의 작품은 단순하게 쓰이지 않고 다층의 의미망을 형성해 놓았다. 때문에 수많은 의미망을 찾아내어 연결했을 때 감동의 파고는 극에 달하는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