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우를 향한 내 마음을 채반에 받쳐 거른다면 무엇이남을까. 너무나 많은 불순물들이 섞여 있어 나조차도 내마음을 제대로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그럴 리 없는데도가끔 내가 경우를 향한 증오를 숨기고 있는 게 아닌지 진지하게 나 자신에게 물었다. - P228
몸이 없는 존재들의 아우성을 오롯이 느끼며 나는 삶이 지겹다고 생각했다. 죽은 후에도 아픔이 이어진다는것을 미리 알게 된 삶은 줄곧 아득하고 막막했으니까. 남들이 모르는 것을 감지한다는 것은 외로운 일이었다. 나는 나이를 먹어도 지혜나 연륜 같은 건 터득하지 못하고외로움과 아득함만 깨닫고 있었다. - P249
죽은 자와 다름없는 삶이라고 내가 아무리 주장해봤자나는 살아 있다. 아무리 떨어도 내 체온은 36.5도인 것이다. 이 반성 없는 몸으로 앞으로도 살아가겠지. 이런 내가이호에게 손을 내밀어도 되는지, 자신이 없었다. "정말 고마워요, 형." 이호가 내게 말했다. - P261
어디선가 따듯한 바람이 불어왔다. 나의 심연에서 바람이 휘돌며 서서히 내 몸을 녹였다. 이런 온기를 오래전부터 꿈꿔왔지만 막상 따스함을 느끼니 내게는 이런 안온함을 누릴 자격이 없는 것 같아 괴로워졌다. 하지만 익숙해지기를 바랐다. 부디 한번 더 기회가 주어지기를. 햇빛을 쬐면 정화되기를. 경우 없는 세상에서도. - P2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