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종로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녔던 요즘도 강북 인왕산 근처에 사는 나에게 창덕궁, 창경궁 그리고 그 근처의 원서동을 비롯한 북촌의 거리와 풍경은 익숙하다. 궁궐이기에 서사적인 왕들과 그들 주변의 이야기들로 가득찼던 이곳에 멀리 강화로 부터 시원한 서풍처럼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다.
계간 '창작과 비평'의 연재소설이었고 너무도 많은 궁금증을 남겨둔채 연재가 종료되어서 종료된지도 모르고 새로운 계간지를 받은 후 "왜 없지?"라는 궁금증을 갖고 있던 중 '창비'에서 출간 소식고 함께 #광고 #협찬으로 가제본된 책을 읽을 기회가 생겼고 놓치기 싫어 응모하여 출간 전 읽을 수 있었다.
창경궁과 창덕궁은 조선의 궁궐로 500년을 지켜왔지만 일본 제국의 침략으로 나라를 빼았기는 것을 지켜본 곳이다. 강화도에서 서울로 전학와서 모르면 적당히 따라 할 사람도 도와 줄 사람도 찾지 못하고 상처를 갖게되는 곳도 이곳이었다. 대온실 복원을 위해 다시 이곳에 오면서 내키지가 않는 과거의 소리를 다시 떠올기게 되었고 그 상처는 싶게 사라지지 않지만 보고서를 준비하면서 친구의 딸과의 대화, 그리고 잊지 않았던 낙원하숙의 할머니의 생애르 쫓으며 기다림(?)에 성공하게 된다.
'창작과 비평'에 연재될 때 3개월의 계간지 연재의 기다림과 나의 짧은 기억력, 현재, 낙원하숙 시절의 중학시절, 대온실과 관련된 이야기 등이 교차되면서 그 흥미와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한 채 기대만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단행본으로 나온 소설을 읽으면서 집에서 OTT로 보다 딴 짓을 하면서 끊겼던 이야기를 극장에서 집중해서 본 것처럼 소설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항상 과거속에서 나쁜 기억 속에서 살아가는 날이 많고 그 상처에서 헤어나오기 쉽지 않고 혼자 끙끙거리며 살아가고 일본의 침략으로 왜곡된 사회에서 살고 있지만 지혜로운 산아처럼 과거에 붙잡히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는 기다림을 주는 소설이었다.

"나 중학교 때 서울 가서 살았잖아? 거기가 창경궁 근처였거든. 못난 소리지만 그것도 내키지가 않네." - P19
"대온실이 국가등록문화재이긴 한데 좋은 마음으로 안 보게 되잖아요. 일제잔재라고. 창경궁 복원공사 때 다른 시설 다 철거되는데 겨우 살아남았죠. 생존 건물인 셈이에요. 기관에서는 그런 면을 꼭써달라고 하더라고요." "살아남은 거요?" "네, 그리고 실측이 진행 중인데 지하 공간이 발견됐거든요. 좀 흥미로워졌어요." - P31
사각거리는 불행의 촉각을 느끼며 나아갔다. 여기에 남는 것과 강화로 돌아 가는 것 그 둘 중에 무엇이 더 큰 불행인지 가늠해보고 싶었다. 이 연못이 한가운데까지 완전히 얼어 있는 것과 아직 어딘가는 얼어붙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 그에 대한 긴장과 두려움을 모두 느끼며 질주했다. 구름이 달을 통과하자 달빛이 쏟아졌고 거기서 떼어낸 투명한 빛들이 내가 달리는 방향으로 내려앉기 시작했다. - P38
"몰르면 옆 사람들 적당히 따라 하고, 안 되겠시면 흠자 긍매지 말고 도와달라 그러고." - P43
순종이 창덕궁과 창경궁에 박물관과 식물원 그리고 동물원을 만드는 데 동조한 것도 교육을 위해서였다. 순종은 어찌 되었든 왕국 문을 직접 열어 근대 문물 수용에 앞장서는 행동을 취했다. - P166
만날 수 있을까?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만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미 정리된 과거의 방에 누군가를 다시 들이기 싫었다. 하지만 만나고 싶은가?가고 물었을 때는 의외로 그렇다는 확실한 마음이 들었다. 만나고 싶었다. 낙원하숙 시절 얘기도 하고 기억 속 일들을 울지 않고 웃으며, 공유하는 추억을 펼쳐 남들처럼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고 나서 집으로 돌하오면서는 이제 내가 그 일을 웃으며 이야기하네, 시간이 이렇게 지났네, 덤덤해하고 싶었다. - P190
나는 미래가욕심나는 것이 두려웠다. 이미 차가운 실망 속에서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기 때문이었다. - P222
"좀 슬픈 말이다. 사람을 포기한다는 말." "이모, 그렇게 마음이 약하면 어른으로 살 수가 없어. 안 되는 애는 안 돼. 으이구, 그러니까 엄마가 만날 이모 걱정을 하지." - P251
"그럼 하느님이 칭찬하셔?" "침국하시지. 기도는 답을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다리기 위해 하는 거니까." - P316
트라우마는 그렇게 기본적인 행위부터 부수며 사람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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