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 싫다
다자이 오사무 외 지음, 김민화 외 옮김 / 보더북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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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평은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직접 읽은 후 작성하였습니다>

술이 싫다, 다자이 오사무 외 10인, 김민화 • 박승하 편역, 보더북

제목부터 묘한 이끌림이 있었던 <술이 싫다>는 다자이 오사무를 비롯하여 일본의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11명의 작품 18개를 싣고 있다. 모든 내용은 술과 관련이 되어 있다. 술에 대한 이야기가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아이러니하게, 때로는 매우 독특한 느낌의 에세이, 소설, 시의 형식으로 실려 있다.

이 책 처음에 실려 있는 글 <술이 싫다>의 주인공은 술을 좋아하지만 집 한쪽에 자리하고 있는 술이 싫고, 그 냄새와 기운이 싫어서 생기는 족족 먹어 없앤다. 술을 없애기 위해 사람들을 불러 술을 마시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이 또 술을 가져와 술이 남는다. 그러면 또 술을 마셔 없애기 위해 또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한다. 술은 나쁜거니 먹어 없애야한다는 애주가의 변론처럼, 이 글의 주인공도 그렇다.

<금주의 마음>은 술을 끊기 위해 매번 결심을 하지만 쉽사리 금주하지 못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옛날에는 술로 호연지기를 길렀다고 하지만, 요즘 술은 사람을 너무나도 비굴하게 만들고 정신을 천박하게 만든다고 단언하며, 장래성이 있는 인물이라면 수을 끊어야한다고 다짐한다. 인간의 의지가 이렇게 나약한 것일까?

이 책의 제목과 동일한 작품 <술이 싫다>와 <금주의 마음>은 자전적 소설 <인간실격>으로 유명한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이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저자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 처럼 느껴졌다. 그는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자랐지만,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과 부모님께 사랑받지 못해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자랐고, 결혼 후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썼지만,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고, 폐질환이 악화되자 <인간실격>을 남기고 카페 여급과 동반자살을 했다고 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많이 접해보지는 못했지만, 글에서 편안한 느낌보다는 뭔가 우울하고 암울한 느낌이 들었던 이유가 그의 삶이 투영되어서 였을까?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술 벌레>도 매우 독특한 느낌이었다. 흔히 말하는 말술을 먹어도 전혀 취하지 않는 주인공이 외국인 스님의 말을 듣고 몸에 있는 술 벌레를 꺼낸다는 이야기이다. 술 벌레를 꺼낸 후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된 주인공은 결국 죽게 된다. 술 벌레가 주인공이었을까? 술이 주인공 인생의 전부였을까? 짧은 글이었지만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주인공이 죽은 이유에 대해 좋아하는 것을 못하게 되면 인생의 의미가 없어진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흔히 말하는 건강한 습관을 가지고 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다 할지라도 억지로 참고 견디며 사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사가구치 안고는 술은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것이라고 했다. 술을 마시고 취하면 잠시라도 세상사 고뇌를 잊을 수도 있으니 취하기 위해 마시는 게 맞는 말이긴 하다. 술 마시고 취해 있을 때에는 기분이 좋을지 모르지만, 술이 깨면서 나타나는 숙취와 고통은 오래간다. 뭐든 댓가는 있는 법이니...

이 책의 묘미는 동시대를 살았던 문인들이 서로 아는 사이라는 거다. 그래서 다른 작가들의 글에 등장하기도 한다. 사가구치 안고의 <술에 따라오는 것들>에는 <밤 하늘과 술집>과 <술은 누구든 취하게 만든다>를 쓴 나카하라 주야가 나온다. 나카하라 주야는 술 버릇이 매우 나빠서 취하면 싸움을 걸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그를 피했다고 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스승인 이부세 마스지는 나카하라와의 교제를 피하라는 충고까지 했단다. 하지만 <술에 대하여>를 쓴 하기와라 사쿠타로는 나카하라 주야를 그렇게 고독하게 만든 것에는 주변의 책임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각성제와 수면제 중독에 의한 정신착란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고, 지방 취재에서 돌아온 후 자택에서 뇌일혈로 급사했다고 한다.

이 책의 작가들은 하나같이 고뇌하며 방황하다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인생이 쓰면 술이 달다고 한다. 술이 싫다고 하지만 술과 함께 했던 작가들의 인생은 쓰고 괴롭고, 고독했기에 술이 달게 느껴졌을 것 같다. 미즈모리 가메노스케의 <술이 생각날 무렵>의 한 구절처럼, 가슴 속에 근심이 있을 대 별것 아닌 것으로 웃을 수 있는 건 술이 있어서가 아니었을까? 술은 커피처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기도 하는 기호식품이지만, 분명 커피와는 다른 뭔가가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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