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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운더리 - 최신 뇌과학과 인지심리학이 알려주는 마음의 중심을 잡아줄 보호막
김현 지음 / 심심 / 2024년 11월
평점 :

몸이 않좋을 때 '엄마 오늘은 먼저 일찍 잘게.'하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올해는 유난히 그런 말을 많이 하게 되었고, 아들은 같이 헬스장에 가자는 얘기도 하지 못하고 혼자 운동을 다녀왔다. 어떤 날은 약을 먹고 일찍 자려고 했고, 책을 읽고, 넷플릭스로 영화도 보고, 좋은 음악을 들으며 몸과 마음을 가다듬으려 노력했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1~2시간 간격으로 계속 깨고, 평생 코를 골지 않던 내가 갑자기 코를 골아서 그 소리에 놀라 깨기도 했다. 20~40대까지만 해도 하고 싶은 일, 해야할 일이 있으면 잠을 줄여가며 했었다. 24시간은 정해져 있으니 잠을 줄일 수 밖에 없었고, 그럭저럭 잘 버텨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하루하루 열심히 살면서 정작 나를 돌보지 못해 지친 우리를 위한 책이다. 이 책의 저자인 김현님은 컬럼비아대 정신과 교수로 이 책에 담긴 내용은 심리학, 정신건강의학, 인지신경과학에 근거한 인지행동모델(Cognitive Behavioral Therapy, CBT)에 기반하여, 현대 심리학에 효과와 근거가 충분히 검증된 수용전념치료(Acceptance nd Commitment Therapy, ACT), 변증법적 행동치료(Dialectical Behavioral Therapy, DBT), 마음챙김(mindfullness) 등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바운더리를 구축하는 과정은 마음과 뇌의 근육을 키워나가는 과정으로 꾸준한 노력도 필요하지만 정원을 가꾸는 것처럼 소중하고 고귀한 과정이라고 한다. 잘 가꾸어진 정원이 내 중심을 찾아주고 삶을 풍요롭게 가꾸어줄 단단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바운드리를 만들면 힘들 때마다 정원을 찾아와 다시 마음의 여유를 찾아볼 수 있게 된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바운더리의 중심이 내가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나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해 내 삶에 맞는 주관적인 기준을 세우는 것이니, 이 기준은 내 일부로서 존중받아야 하는 것이니 틀린 바운더리는 없다.
내가 약간 착한 사람 콤플렉스(착한아이증후군)가 있다고 하니, 지인이 나는 할 말 다하는 사람이고 착한 사람 코스프레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다. 나는 사람들과 불편한 상황을 만드는게 싫어서 내 의견을 끝까지 강하게 어필하지 않는다. 반면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에게는 할말을 다 하려고 한다. 가족이니까 우린 서로 이해가 되는 사람들이니까.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어주니까. 심리학에서 타인과의 관계로 실망감과 피로, 고립감을 느끼는 것을 '관계 번아웃'이라고 한다. 보통 과로 때문에 번아웃이 온다고 생각했었는데, 사람들과 만나고 교류하면서 외부적 압박과 충돌하고 자기 가치를 낮게 느끼게 되면서 생기는 번아웃이 '관계 번아웃'이다. 나 역시 관계 번아웃을 경험했다. 이 책에서는 유난히 소모시키는 느낌이 드는 관계는 다른 사람이 내 공간에 너무 깊숙히 들어와 불편함을 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흔히 얘기하는 선을 넘은 것이다.
건강한 관계를 지속하려면 여섯 가지 공간이 확보되어 하는데, 나는 심리적 부담으로부터 거리를 둘 수 있는 감정적 공간(지극히 개인적인 가정사를 나누거나 잔인한 소재를 언급함), 생각과 의견을 존중받는 지적 공간(내 의견을 무시함)이 침해당했다고 느낀 것 같다. 내 불편함을 참다 보니 마음속에는 서운함, 실망감이 계속 쌓이고, 이런 감정은 상대방과 나 사이에 두터운 벽을 쌓게되어 참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감정은 솔직한 마음 상태이니 불편한 감정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으면 감정이 해소되지 않고 원치 않았던 방법으로 터져나오게 된다고 한다. 정말 맞는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같이 화를 내면 관계가 깨어질 것 같아 회피하고 참자니 불안감이 생기고, 우울증 같은 마음이 병이 생기게 되니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저자의 솔루션은 관계는 자연스레 변하게 되니 너무 연연해하지 말라는 것과 모든 관계가 좋을 필요가 없으니 적정한 바운더리를 유지하라는 것이다. 사람의 요구에 순응하기만 하지 말고 내게도 엄연한 선택권이 있음을 인지하고 내가 적성선을 결정하는 것이다. 불편한 행동에 대해서는 솔직한 마음을 이야기하며 제지해야 한다. (휴...말은 쉽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어떻게 대화를 하며 제시키킨다 말인가? 오히려 보란듯이 일부러 더 하는데?) 그래도 안되면? 상대방에게 내어줄 적절한 거리가 어디까지인지 범위를 조정하라고 한다. 불편하면 자리를 피함으로써 물리적 거리를 두는 것이다.
저자가 서문에서 요구했던 것처럼, 완벽하게 이 책을 다 읽어야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마음 내키는 대로 시간을 내어 편안한 마음을 이 책을 읽었다. 때로는 내용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렸고, 잘 정리된 지식은 내 생활에 적응해보려고 한다. 저자의 바람대로 이 책을 통해 다진 바운더리가 내 삶의 중심을 다시 잡고,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내가 거머진 운전대로 나의 속도와 방향을 찾아나가리라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