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지 않다고 외치고 나서야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정순임 지음 / 파람북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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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지 않다고 외치고 나서야 괜찮아지기 시작했다,정순임 지음, 파람북


이 책의 저자는 15대에 걸쳐서 400여년을 산수현(山水軒) 고택 종가에 사는 정순임님과 그녀의 엄머니의 이야기이다. 일년에 열다섯 번 제사를 지내고, 상주와 안동 사람들은 다 알만한 종갓집, 생각만 해도 얼마나 힘들지 머리속에 그려진다. 가부장제의 상징과도 같은 고택에서 둘째 그것도 딸로 태어나 자라는 동안 저자는 수없이 많은 차별을 감당해야했고, 이대로는 도저히 살 수 없을 것 같아 가출을 감행했으나, 50이 되어서 결국 종갓집 산수현으로 다시 돌아왔다. 지금은 일가를 이루던 친척집이 사라지고 혼자 남아 있는 종갓집에 종부(宗婦)로서 살아온 어머니와 둘이 살고 있다고 한다. 평생을 종부로 살아온 어머니와 다른 세계관을 가진 중년이 된 딸이 같이 사는게 쉽지 않을 거라는 건 상상만으로도 너무 뻔하게 그려진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옛날에는 그랬었지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나 역시 남아선호사상이 심했던 시대에 태어났다. 엄마가 세째를 낳던 날, 외할머니가 사위인 우리 아빠 얼굴을 못쳐다봤다고 한다. 생물학적으로 따지면 엄마가 딸을 낳은 것은 명백히 아빠 책임인데, 외할머니가 미안해하며 사위 얼굴을 못보았는지... 4년 후에 남동생이 태어났고, 남녀 차별을 딱히 두지 않으신 부모님이었고, 본인 일에 바쁘신 아빠도 세째딸은 엄청 예뻐해 주셨다는 엄마의 말을 떠올리면 장손인 남동생이라고 딱히 차별하지 않으신 것 같지 않다. 장손을 얻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쓴 줄 알았는데, 최근에 물어보았더니 나와 남동생 사이에 있었던 아기가 유산되어서 텀이 있었을 뿐이란다.


저자가 할아버지에게 산수노트 사야된다고 했을 때에는 돈이 없다고 하시고는 보는 앞에서 오빠에게 빵하고 우유를 사 먹으라고 돈을 주셨다는 대목을 읽으면서 옛날에는 그랬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자처럼 문중의 어른들이나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다면 남녀차별을 받으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대대로 부자였던 외가에서는, 외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는데, 외증조할아버지가 외삼촌에게 전재산을 상속하셨고, 엄마와 외할머니는 상속을 전혀 받지 못했다. 지금이었으면 남녀 차별없이 똑깥이 유산을 나누어야하지만, 엄마와 외할머니는 그러려니 했었단다. 옛날에는 그랬다.


여성운동가는 아니지만 남자와 여자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차별하는 사회 분위기는 달갑지 않다. 내가 대학을 다닐때에만 해도 취업할 때 군가산점이 있거나, 군대 간 기간을 경력을 인정해주기도 했었다. 그때만 해도 부당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남동생이 군대를 가고, 앞으로 우리 아들이 군대에 갈 생각을 하니 꼭 그렇지많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군대간 남자를 우대해 주는 거라면, 애를 낳은 여자도 우대해 줘야하는 것 아닌가? 복학한 선배들을 보면 제대 후에 백짓장이 된 것 같은데, 애를 낳고 키우다 보면 몸도 상하고, 기억력도 감퇴되고, 그야말로 반은 정신이 나가 버린다. 8개월 쉬고 다시 사회로 나오면서 꽤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남녀차별에 흙수저 금수저 차별까지 있는 세상이니 어쩌면 옛날보다 세상이 더 힘들어 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불공평한게 어제 오늘 일인가?


괜찮아 괜찮아 하면 참는게 아니라 괜찮지 않으면 괜찮지 않다고 외치는게 필요하다. 언젠가 읽었던 책에서 인내심이 강한 사람을 좋게 평가하지 않는 내용을 읽은 적이 있다. 참는다는 건 역으로 생각하면 뭔가 거슬린다는 거라는 말에 꽤 놀랐었다. 어쨌든 할 말은 하고 살아야 사회가 바뀐다. 국가 민속문화재 산수현에 사는 저자는 반바지를 입고 마루를 닦고, 우렁찬 딸내미 소리가 감히 담당을 넘으면서 어머니 세대 이전에는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을 하며 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된장, 고추장을 담그며 옛 것을 지키고 보존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저자의 산수현에서의 멋진 삶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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