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처럼 일하지 않습니다 - 네덜란드의 탄력근무제에 깃든 삶의 철학
린자오이 지음, 허유영 옮김 / 행복한북클럽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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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처럼 일하지 않습니다, 린자오이, 행복한북클럽

20여년 전, 형부가 네덜란드에서 유학생활을 해서 온 가족이 네덜란드에 간 적이 있다. 아이를 대여섯 명 낳아서 키우는 것도 신기했고, 일찍 퇴근한 남편이 하루 종일 집안 일을 하느라 고생한 아내를 대신해 저녁을 하고, 설거지와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기까지 하는 모습이 신선했다. 경상도 남자인 우리 형부도 그 영향을 받아 네덜란드에서는 여느 네덜란드 남자들처럼 했었다. 수입이 많을수록 세금을 내는 비율이 더 많은 나라,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 집을 사기 위해 애를 쓰지 않는 나라... 20대 중반에 본 네덜란드는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50대가 되면서 네덜란드의 탄력 근무제에 깃든 삶의 철학 <소처럼 일하지 않습니다>를 읽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인 린자오이는 대만에서 태어나 타이완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네덜란드에서 석사과정을 하고, 그 곳에서 직장을 가지고, 네덜란드 남자를 만다 결혼하고 딸을 낳고, 네덜란드에 살고 있다. 그녀가 자란 대만과 네덜란드의 극명한 차이를 내가 20대에 보았던 것처럼 보고 느끼며 이 책을 썼다.

네덜란드는 세계에서 가장 적게 일하는 나라라고 한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오전 오후 15분 휴게시간, 짧은 점심시간 외에 직장에 있는 동안에 잡담, 개인적인 일을 하거나 인터넷으로 딴 짓을 하는 일이 없다. 루즈하게 일하고 야근하는 대만의 직장인 문화와는 딴 판이었을 거다. 요즘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루즈하게 딴 짓 다하며 설렁설렁 일하다 자신있게 칼퇴하거나, 눈치보느라 퇴근 못하는 중간 관리자들을 생각하면 재미있다. 어쨌든 네덜란드 사람들은 "그렇게 늦게 까지 일하면 언제 아이들과 놀아주고 대화하고 소통하냐?"고 의아해 한단다. 네덜란드에서는 주택 구입 부담이 적고, 자녀들에게 무리해서 재산을 물려주려고 하지 않고, 명품에 집착하지 않고, 대부분 상점은 저녁 6시에 문을 닫고 일요일에는 영업을 하지 않고, 재산 축적에 큰 의의를 두지 않고 은퇴 후에는 정부 보조금으로 살아간다고 한다. 그러니 우리처럼 죽기살기로 일할 이유가 없다. 돈은 쓸 만큼 벌면 되는 것이니, 물욕과 허영심을 줄인다면, 돈을 벌기위해 삶의 질을 포기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게 된다.

네덜란드는 평등한 조직 문화이다. 주종관계가 분명한 동양권 나라들과는 매우 다르다. 직위가 높거나 경력이 많다는 이유로 "내가 윗 사람이니 내 말을 들으라"고 하면 거센 항의를 받는 문화라고 한다. 심지어 월급을 주는 사장이라도 권위적인 태도로 지시하면 "그래. 당신이 내 사장이야. 그래서 뭐? 뭐가 그리 대단해?"라고 받아들인다고 한다. 네덜란드 특유의 솔직함과 언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격은 경영자에게도 통하는 것이다. 오히려 직원들이 솔직하게 말해주기를 좋아하고 용감하게 비판하는 민족성을 충분히 발휘하길 기대한다고 한단다. 카리스마가 강하거나 주종관계가 강한 조직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괜히 입바른 소리를 했다가 찍히기 십상이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실제로 요즘 젊은 세대들은 딱 시키는 것만 하려고 든다. 괜히 열심히 의욕적으로 일했다가 윗사람에게 공격을 받거나 일복이 터져 내가 책임져야 하거나 둘 중 하나가 되니, 입다물고 경청하는 태도를 취하게 된다.

우리는 멀티태스킹을 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이것저것 다 할 줄 아는 사람, 무슨 일이든 갖다 놓으면 다 해내는 사람을 선호한다. 네덜란드에서는 "시간"은 매우 중요한 비용이며, 유일한 자원이기에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일에 시간을 쓰고, 그외 다른 일은 그 분야의 전문가에게 맡기는 것을 당연히 여긴다고 한다. 직원들도 상사가 업무 이외의 일을 시키면 "그럴 시간이 없다" 혹은 "그건 제 전문 분야가 아니라 잘 해내지 못할 것예요. 다른 사람이나 업체에 맡기는 게 어때요?"라고 확실하게 얘기한다고 한다. 이 대목을 읽으며 너무 부러웠다. 우리는 무조건 멀티태스킹이 가능해야 한다. 넓은 포용력 혹은 오지랖으로 내 업무에 무관한 일까지 열심히 처리해도 정작 내 일을 제대로 해 내지 못하면 무능한 직원으로 폄하된다. 내 일, 네 일 할 것 없이 뭐든 시키는 대로 다 잘해야 능력있는 사람으로 치부된다. 심지어 진심으로 동료의 일을 도와주고 싶다고 말해도 먼저 동료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기 전에 섣불리 행동했다가는 "이건 내 일인데, 왜 끼어드는 거야? 네 일이나 열심히 해"라고 말할 수도 있다고 한다. 분업과 협력의 경계를 잘 지킬 필요가 있음을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었다. 나 혼자 다 해버리겠다가 어찌보면 멀티태스킹이다. 분업의 또다른 의미를 전문가를 존중한다는 뜻임을 잊지 말아야겠다.

네덜란드에서는 1년에 두 번씩 2주간 휴가를 떠나는 것이 보편적이라고 한다. 동료가 휴가 간 동안 동료의 일을 대신 해주면서 다음에는 내가 휴가 갔을 때 동료가 내 일을 맡아주기를 기대한다고 한다. 근로 시간이 너무 길다면 다른 기회나 선택은 없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라는 저자의 말에 잠시 멍해졌다. 매월 한 번 이상은 일요일에 세미나가 있고, 어떤 때는 토요일이나 늦은 밤에도 교육일정이 잡힌다. 남들은 쉬는 시간인데 나는 일을 했는데, 남들과 똑 같이 출근을 한다. 공기관에서 일할 때는 야근 수당이라도 받았는데, 지금은 무보수다. 제대로 쉬지 못하니 피로가 늘 축적되어 있는 느낌이 든다. 휴가가 필요하다 쉬고 싶다고 해도, 당장 내 일을 대신 해 줄 동료가 없다. 그게 문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일을 하는 목적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았다. 일이 좋아서 하고는 있지만, 건강, 가족, 자아실현도 중요하다. 돈이 목표도 아니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닌데, 내가 나를 혹은 회사가 나를 혹사시키는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았다.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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