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 2022-2023 - 메디치 격년 Biennium 전망서
하지현 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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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촉 2022-2023, 하지현 외, 메디치미디어


연구원 시절에는 10월 ~11월이면 한 해 연구 보고서를 마무리하고, 내년 연구과제 계획서를 쓰느라 바빴다. 회사에서는 11월 이맘 때 쯤이면 올해 사업을 평가하고, 내년 사업계획서를 준비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연말이 가까워지면 사회적 변화에 민감해 진다. 그래서 최근들어 내년에는 사회가 어떻게 변할까에 대한 전망을 기술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촉 2022-2023>은 향후 2년을 전망하며 사회적 변화의 흐름을 짚어 보는 격년 전망서(biennial report)이다. 내년에는 코로나19가 어떤 국면을 맞을지 20대 대통령 선거,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있는 해이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총 8가지 주제별로 2022-2023년을 10명의 전문가들의 시선으로 전망하고 있다. 


1부에서는 정신건강의학과 하지현님이 코로나시대의 심리적 단상을 기고하였다. 코로나19를 경험하면서 우리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을 겪었다. 아무도 정답지를 가지고 있지 않으니 맞는지 틀렸는지 판단하기 보다 현 과학 수준에서는 최선의 방법이니 그저 최선을 다할 뿐이다. 코로나가 마음에 끼친 영향은 실로 다양했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라 이 부분을 읽으며 많이 놀랐다. 첫번째, 코로나는 인지발달 저하를 가져왔다. 영유아의 인지발달 점수가 2020년 86.3에서 2021년 78.9로 떨어짐. 마스크를 쓰고 있으면 상대방의 입모양, 표정 파악이 어려워진다. 말하기 듣기 능력이 저하되므로 가정에서 마스크를 쓰고 있을 않을 때 또박또박 말하는 습관을 길어 줘야한다. 두번째, 신뢰의 흔들림. 저 사람은 안전할까? 나는 안전할까? 우리가 알고 있는 것 믿고 있는 것의 기준이 달라졌다. 세번째, 기회의 상실과 보수화. 계획하고 희망할 수 없다는 생각은 미래를 보지 못하는 것이고 마음은 현재와 과거를 향하게 만든다. 사회 분위기가 열려 있으면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이 적다. 코로나19로 낯선 타인에 대한 경계가 커지고 타 집단과의 거리가 생기게 되었다. 네번째, 불확실성과 편차가 커진다. 앞날에 대한 예측이 불가능해지고 정부에 의해 기준이 정해지고,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는 범위가 넓지 않아지면서 스트레스를 제어하지 못해 자살시도가 증가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작년에 AI로 영양제를 추천하는 프로그램 개발에 참여하였다.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이 우리가 하는 말보다 AI의 추천을 더 신뢰한다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도 비대면 거리두기가 되면서 인터넷이 관계를 대신하고 검색이 정보의 주요한 소스가 되었고,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를 더욱 신뢰하고 자신이 많이 알고 있다는 자기 인식을 하게 만든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인터넷에 나온 정보 중에 잘못된 정보도 많고 가짜 뉴스도 많은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더 신뢰한다니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해야할 일이 분명이 있을 것이다. 요즘 유투브를 보면 계속 비슷한 내용들이 추천되어 나를 따라 다닌다. 이처럼 인공지능과 검색 알고리즘으로 인해 내가 한 번 찾은 것을 내 취향이라고 판단하여 계속 추천되어 보게 만드는 것을 필터버블(filter bubble)이라고 한다. 사실 내 취향이 아닐 수도 있는데, 내가 한 번 검색한 것을 가지고 나의 취향으로 판단하고 추천하게 되니 뭔가 나를 판단하는 것 같고, 감시하는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흥미로웠던 부분은 위생 언어의 지향: 무균사회의 지향 편이었다. 사실 얼마전에 아들과 이 부분을 이야기하며 엄청 싸운 적이 있다. 이 책에서는 유명 인물로 분장한 사진을 졸업사진으로 찍는 의정부 고등학교 학생들이 흑인 그룹 관짝소년단 춤을 패러디했다가 인종 차별 논란에 휩싸였던 이야기를 예로 들고 있다. 의정부 고등학교 학생과 학교 축에서는 흑인 비하나 혐오 의도가 전혀 없었고 정치적 의도가 없다고 했지만, 가나 출신 방송인 샘 오취리는 흑인들 입장에서 매우 불쾌한 행동이라고 비판했고, 비판자들은 의도는 주요하지 않을 뿐 아니라 변명이 될 수 없고 인종차별 행위를 인식조차 하지 못하는 한국인의 후진 인권감수성을 개탄했다. 그러나 정작 관짝소년단은 그들의 SNS에서 학생들의 패러디를 거론하며 졸업을 축하한다는 메세지를 남겼다고 한다. 그러니 차별주의를 주장하고 나선 건 권리에 예민한 다른 흑인, 차별에 민감한 감별사들이었다는 것이다. 모든 편견과 위해 요소가 멸균된 위생언어만 통용되는 무균사회, 정치적 교정주의(Political correctness)는 진보 진영과 페미니스트가 주도하는 패러다임이기도 하다.

포스트 386세대는 X세대, 신인류라 불렸던 197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세대로 현재 40대 후반~50대 초반이다. 나도 여기에 해당한다. "바쁜 일상에 치여 오늘을 살지만 늘 탈출을 꿈꾸며 산다. 이들에게는 허비력이 잠재되어 있다."는 저자의 말에 큭큭 웃음이 나왔다. 정말 내가 그렇다. 허비스토리, 허밍아웃, 허비성인이라는 신조어가 재미있게 다가왔다.


여행과 여가의 미래도 매우 흥미로웠다. 코로나19 되기 전에는 1년에 한두번 해외여행을 갔었다. 여행지와 숙박정보를 대충 둘러보고 패키지여행 예약을 했다. 패키지여행을 구매하는 이유는 비자, 항공권, 숙박, 교통을 모두 해결해주고 언어, 정보까지 해결해주니 우리는 몸만 가면 되기 때문이다. 요즘 패키지 여행은 관광은 거의 없다. 나는 동남아를 선호하는데, 저렴한 비용에 3박 5일 동안 맛있게 먹고, 바다에서 액티비티까지 즐길 수 있어서 너무 좋았다. 액티비티의 종류는 내가 정할 수 있고 하기 싫으면 호텔에서 쉬어도 된다. 코로나19 이전에는 여행사가 해외여행 패키지를 기획하여 솔루션의 역할을 충분히 해 주었지만 해외여행의 루트가 막히고, 국내여행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굳이 여행사를 끼고 갈 이유가 없어졌다. 큐레이션을 정말 잘 하더라도 정보가 금방 오픈되다 보니 국내여행을 기획하는 여행사도 별 재미를 못느끼는 것이다. 차라리 블로그에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 여행의 키워드는 지능적으로 도시를 옮기는 게임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이 표현에 의하했었는데, 생각해 보니 자연을 즐기러 캠핑가면서 바리바리 거의 작은 집 한채를 옮기는 수준으로 다 싸들고 간다. 캠핑 텐트 안에는 없는 게 없다. 우리가 열광하는 제주 한달살기에서도 현지인과의 소통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는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잠깐 여행지에서의 느낌만 느끼고 오는 것이지, 한달을 살면서 현지체험을 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 책을 읽으면서 2022년, 2023년에는 자유롭게 여행하고, 허비하며 일상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가 이 책의 표지처럼 암울하지는 않을거라 희망을 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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