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초콜릿 가게
김예은 지음 / 서랍의날씨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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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한 초콜릿 가게》. 책에 대한 설명을 읽지 않고 제목만 보아서는 그저 초콜릿을 다루는 가게의 일상 이야기일것만 같은데, 책장을 넘겨본 순간부터 굉장히 여러 번의 반전을 맞이했다.

 이 책의 표지에서도 볼 수 있는 'Sarang de Chocolate'이라는 가게의 상호에 걸맞는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 그리고, 얼핏 초콜릿 하나하나와 관련된 각각의 이야기처럼 보이던 것들이 하나의 이야기로 이어져간다는 점.



 책의 첫 이야기는 짝사랑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가게의 안내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손님으로부터 시작된다. 이 손님, 서현 씨는 초콜릿 가게의 주인이자 이 책의 주인공인 한주호와 자신의 짝사랑 이야기를 하며 조금씩 마음을 열어가는데, 이 과정이 내게는 마치 처음 책장을 연 독자들이 조금씩 이야기의 흐름에 빨려들어가는 모습을 본떠놓은 것처럼 보였다.


 어떠한 형태의 것이든 사랑이란 인간이 살아가며 뗄레야 뗄 수 없는 감정이기 때문에,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사랑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은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할 것이다. 그러나 흔하다고도 할 수 있는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음에도 이 책이 매력적인 이유를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저자가 만들어낸 예쁜 문장들을 가장 먼저 꼽을 것 같다.


뭔가 세상의 공기와 나의 감정을 대체하는 단어가 만나 억지로 이어져 문장을 만들면 내 사랑이라는 감정이 희석될 것만 같이 느껴졌어요.

p.17

용기내서 한 사랑 고백이 이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빠져나가다가 갈 길을 못 찾고 결국 이야기의 시작점인 이곳에 편안히 그저 머물기를 바랐다.

p.63-64


 그리 어려운 표현을 쓰지 않아 가볍게 읽을 수 있으면서도, 마치 사랑이라는 추상적인 감정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모아 뭉쳐놓은것만 같은 이런 예쁜 표현들이 책을 읽는 내내 몇 번이나 내 눈을 사로잡았다. 자칫하면 어둡고 슬픈 이야기가 되었을 짝사랑이 주요 소재였음에도 어딘가 달달하게 느껴졌던 것은, 작중에 등장한 초콜릿들과 잘 어우러지는 작가의 이런 표현력 덕분이 아니었을까.



 짝사랑의 형태만큼이나 그 결말 또한 다양했다. 보답받은 짝사랑도, 닿지 못 한 짝사랑도 있었으며, 짝사랑을 마치며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기도 한다. 마치 초콜릿의 모양 만큼이나 다양한 결말들 속에서도 공통점을 찾자면, 작가의 예쁜 문장들이 마치 포장지처럼 모든 종류의 사랑들을 감싸고 있다는 점이었다.


쾌쾌하게 묵은 신문지로 꽁꽁 묶인 채 낡은 서랍장 깊숙한 곳에 놓인 오래된 말을 하는 애착인형인 줄로만 알았는데, 꺼내어보니 꽤나 잘 작동하며 아직도 "I LOVE YOU"라는 소리를 카랑카랑하게 제창하는 곰 인형을 꺼내든 기분이었다.

p. 83

"그 앤 아마 세상의 모든 것을 닮았나 봐요. 달을 봐도 그 애 생각, 나무를 봐도 그 애 생각, 컴퓨터를 켜도, 휴대전화를 열어도 온통 그 애가 생각이 나요. 아니 그냥 내 삶에 그 아이가 온통 담겨져 있나 봐요. 아주 예쁘게."

p. 189


 이야기 내에서도 볼 수 있듯 모든 사랑이 원하는 형태로 끝이 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한때나마 존재했던 사랑이라는 감정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무척이나 예쁘고, 소중한 감정이라는 것을 전달하고자 저자는 사랑을 이렇게 예쁘게 표현해놓은 것이 아닐까.


 감상을 쓰는 내내 표현에 대한 찬사만 한가득 늘어놓았지만, 어디까지나 이 책의 전반적인 표현들이 내 취향존에 정확하게 꽂혔기 때문일 뿐 안의 이야기들 또한 무엇 하나 놓칠 것들이 없었다. 처음엔 분명 동떨어진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던 것들이 하나, 하나 연관되어 갈 때마다 느끼는 희열. 그리고 분명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던 글에 어느샌가 몰입해있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의 짜릿함. 그 모든걸 느낄 수 있어서 책을 읽는 내내 무척이나 즐거웠더랬다.

 이 책이 김예은 작가분의 첫 작품인 것 같은데, 앞으로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내실지 개인적으로도 굉장히 궁금해질 만큼 취향에 맞는 이야기었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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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 조력자살 한국인과 동행한 4박5일
신아연 지음 / 책과나무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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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사.


언뜻 듣기에도 무거운 이 주제에 대해 읽어보고 서평을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죽음에 대해 생각할 기회가 늘어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처음으로 죽음이 가깝게 느껴진 것은 할아버지, 할머니의 장례식에서. 그 뒤에는 친한 친구의 부친상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그리고 현재진행형으로는, 받아든 누군가의 신분증에 이따금식 보이는 장기기증 의사 표시 스티커까지. 예전에는 막연하게만 느껴졌던 죽음은 어느샌가부터 다가오기 시작했고, 그랬기에 죽음이라는 화제를 더이상 남의 일인것마냥 바라볼수만은 없게 되었다.




그런 내 눈에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의 서평단을 모집한다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문득 깨달은 바가 있었다. 죽음이 가까워졌다고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죽음을 '남의 일'로만 치부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간 죽음에 대해 생각해왔던 것들은 모두, 죽음을 목전에 둔 사람이 아니라 남겨지게 될 사람들에게만 치중되어 있었다는 것을.


그랬기에 알고 싶었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다가올 미래를 기다리고 있을지. 그리고 생각해보고 싶었다. 안락사라는 제도의 필요성에 대하여.







첫째, 당신은 조력사로 생을 마감하려는 사람과 스위스까지 함께 가 줄 수 있는가?


둘째,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한계상황에 처한다면 본인도 조력사를 택하겠는가?



책을 열자마자 나에게 던져진 이 질문들 앞에서 나는 잠시 멈칫할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예/아니오로 대답할 수 있는 문항이었지만,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에 이르러서도 선뜻 대답을 내놓을 수 없는 문제들이다.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명확한 대답은 아니더라도 생각의 방향성은 잡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품으며 책장을 넘기던 나에게 이 책은, 명확하게 좋았던 부분과 언짢았던 부분이 공존했다.



책의 1부는 저자가 조력사를 앞둔 독자의 동행 요청을 받아들인 후 느낀 심경의 변화와, 마침내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이 담겨있다. 여정에 동행하기로 결심했음에도 여전히 결정을 번복해주길 바라는 동행인들에게 때로는 농담섞인 말로, 때로는 한없는 진심으로 건네는 그분의 말은 내가 이 책을 통해 가장 기대했던 것들을 알게 해주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은 어떠한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어떠한 생각을 하며 다가오는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과정들을 통해, 내 안에 막연하게 남아있던 안락사에 대한 생각에 조금 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 모든 과정들이 감정에 휩쓸리기보다는 잔잔하게 묘사되어 있었기에,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독자들 역시 이 모습들을 보면서 두루뭉술하게나마 안락사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싶다.




서평을 작성하기 전에, 나처럼 이 책에 관심을 가진 분들은 무슨 생각으로, 무엇을 기대하며 이 책을 선택했을지가 궁금해서 서평단 모집글을 한 번 훑어보았다. 확고하게 안락사에 대한 찬/반입장을 가진 분들도 많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분들은 이 간접체험을 통해 안락사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보고 싶은 마음에 서평단에 지원을 하신 것 같았다.


책의 1부까지만이라면 이 책은 그에 부합하는 책이 되었을텐데. 내가 지금까지도 아쉽게 생각하고, 또 언짢음을 느끼게 된 원인은 그 뒤에 이어지는 2부에 있다.




조력사의 여정에 동행한 이후, 저자는 어떠한 계기로 인해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한다. 그 사실을 밝히며 저자는 안락사에 대한 확고한 반대 입장을 밝히는데, 그 과정에서 나온 표현들이 나를 자꾸만 불편하게 했다.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에 거두는 이 역시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는 말. 안락사는 자살이며, 자살하면 천국에 갈수 없다는 말들이.


이것이 인본주의와 신본주의의 차이점인지는 모르겠지만, 특별한 종교적 믿음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사후세계는 그리 큰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나에게는 사람이 더 중요하다. 그랬기에 눈앞의 이 사람이 죽는것보다 사는게 더 고통스럽다 말할 정도로 괴로워하고 있다면, 그것 역시도 우리가 존중해주어야 할 의사가 아닐까. 그것이 잘못이다, 아니다를 판단할 자격은, 그 고통의 당사자가 아닌 어느 누구에게도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저자는 제 목숨을 스스로 끊으려 드는 것이 우리를 쓰고 버리는 물질적 존재로 보는것과 마찬가지라고 했지만, 나는 스스로의 생사조차 결정하지 못한채 다가올 운명을 기다릴수밖에 없는 삶이야말로 물질과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더더욱 공감할 수가 없었다.




물론 한순간에 생사가 좌지우지되는 만큼 안락사에는 심도깊은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미 안락사를 허용하는 국가라 할지언정 그것을 모르는 바 아니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지 않은가.


안락사는 단순히 하나의 관점에서 옳다 그르다를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종교적인 시각에서 안락사를 나쁜 것으로 재단하려는 저자의 태도는 여전히 이해하기가 힘들다. 죽음을 앞둔 그분의 모습을 보며 다양한 생각을 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이런식으로 끝을 맺게 되는게 과연 그분이 바라던 형태의 기록일까. 여전히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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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이치조 미사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모모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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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책에 대한 사전정보를 미리 알고 구매하거나 빌리는 편인데, 이 책과의 만남은 다소 급작스러우면서도 충동적이었다. 대체휴무를 받고 쉬던 날, 집에만 있기가 갑갑해서 집 근처 상점가로 산책을 나갔다가 얼마 전에는 없었던 특이한 부스를 발견했다.



 바로 말로만 듣던 무인 도서관!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친다고, 차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한 번 들어가보기로 했다. 처음엔 문이 안 열려서 당황했는데, 알고보니 출입문에 도서관 회원증 바코드를 찍어야만 출입이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도서관 회원증은 집에 놔두고 왔는데, 다행히 모바일회원증으로도 입장이 가능해서 무사히 입장...! 요즘 세상이 참 좋아졌다는걸 새삼 다시 느낀다.


 들어가면 이렇게 커다란 기계가 날 반겨준다.

 왼쪽에 있는 커다란 모니터에서 책을 고르고, 오른쪽으로 이동해서 대여 절차를 마저 진행하는 방식이었는데... 도서관 만큼 장서가 다양한 편은 아니었지만, 마침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어서 회사 아래층 도서관에 예약을 걸어둔 책이 보여서 고민없이 선택했다.


 그런데 나온 책이... 내가 선택한 책이 아니다?^_^?!




 당황해서 한참을 기계 주변을 맴돌다 깨달았다. 내가 관심있었던 책은 이미 대출중이었고, 내가 선택한 책은 그 책과 표지가 비슷한 다른 책이었던 것으로... 처음엔 그냥 반납할까 했지만,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이겠거니 싶어서 그대로 빌려왔다.

 그리고 정말로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최근 독서기록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책을 많이 읽는 습관을 들이려고 하고 있는데... 다양한 책들을 읽을 수 있었던건 좋았지만, 책을 덮었을 때 그 작가의 다른 책이 궁금해질만큼 정말 마음에 드는 느낌은 한동안 받지 못했다. 그게 나로 하여금 계속해서 책을 읽게 하는 원동력이었기 때문에 늘 아주 작은 아쉬움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는데...


그런데 이 날, 이렇게 우연히 나에게 찾아온 책으로부터 정말 오랜만에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이었다. 어쩌면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그동안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았던 책들이 대부분 일본문학이었던걸 보면, 어쩌면 나는 일본문학의 감성과 맞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게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준 이 책은, 평범한 남학생 가미야 도루(원어로는 아마도 '카미야 토오루'라는 예쁜 이름일텐데...일본어 원문표기에 익숙한 나에게는 일본어의 한국식 표기가 여전히 어색하기만 하다...)와, 날마다 일정 시기 이후의 기억을 잃어버리는 선행성 기억장애를 앓고 있는 히노 마오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책을 잘못 빌린 순간 책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검색하며 알게 된 이 책의 소개를 읽자마자 대강이나마 이 책의 결말이 짐작이 갔더랬다. 그랬기에 큰 기대 없이 읽어내려가던 소설인데... 이 소설은 그런 내 예상을 보기 좋게 뒤집어주었다. 책을 먼저 읽은 분들이 말하던 "기대를 배반했다", "편견이 무너졌다" 라는 평가들을 나 역시도 이해하게 된 것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게 흘러가는 책의 분위기상, 뒤통수를 얻어맞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커다란 반전은 아니었기에 그런 반전을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마구 격동적인 소재의 글들보다는 이런 잔잔한 작품들이 정말 좋다.

 내가 늘 겪고있는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은, 각자의 특수성에 의해 조금씩 다를 뿐인 그런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어지는 평범한 나날들. 그런 평범한 날들을 보내며 느끼는 각자의 기쁨과, 추억,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여 마침내 결말에 이르게 되기까지의 그 흐름들이.

 작품 내내 쌓아온 그 행복하면서도 청량한 장면들 덕분이었을까. 마냥 행복하기만 한 결말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생각보다는 그렇게 슬픈 이야기로만 남아있지는 않다. 반전 뒤에도 히노 마오리는 여전히 희망을 품은 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으니까. 잊혀졌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도루의 누나가 한 말을 떠올리면서도 아플 동안은 울자고 생각했다. 상관없다. 울보면 뭐 어떤가. 전부 내 것이다. 슬픔도, 아픔도, 추억도, 전부. 전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또 울었다.

p. 362

모두 언젠가는 잃을 것들이다. 없어질 것들이다. 그래도...... 온갖 것이 변해간다 해도. 인생을 삶으로써 과거가, 아름다운 것이 흐릿해진다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있다. 마음이 그리는 세계는 언제까지도 빛바래지 않는다.

p. 374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 두 사람을 곁에서 지켜보는 '와타야 이즈미'라는 캐릭터도 무척이나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블로그 글을 쓰기 위해 알아보는 과정에서 이즈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후속작이 최근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빌린 무인 서점에는 없었고, 평소에 자주 다니고는 했던 근처 도서관에도 없는 책이라 애가 타지만... 조만간 비치를 요청하든, 구입을 하든, 꼭 챙겨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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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 : N번방 추적기와 우리의 이야기
추적단 불꽃 지음 / 이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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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 꼭 도착했다고 카톡 해!"


 어느샌가부터 친구들과 헤어질 때면 빠짐없이 하는 말이다. 내가 잠시 깜빡하더라도 누군가는 반드시 그렇게 인사를 해온다. 그리고 귀가한 뒤로는, 아직 단체채팅방에 도착했다는 말이 없는 친구에게서 메시지가 올 때까지 쉬이 잠에 들지 못한다. 대학생때만 해도 이러진 않았던 것 같은데. 곰곰이 돌이켜 생각해보니, 이런 인삿말을 처음으로 하게 된 것은 아마도 몇 년 전, 강남역 살인사건이 있은 뒤였던 것 같기도 하다.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로 여기저기서 급속도로 젠더갈등에 불이 붙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각종 익명 커뮤니티 뿐만이 아니라 상호팔로 상태에서 유지되는 페이스북 등의 SNS에서도 이와 관련된 주제로 논쟁하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게 되었고. 원래는 없었던 것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인지, 아니면 그동안 그저 관심이 없어 몰랐던 것일 뿐인지, 어찌되었든 각종 화장실에서 불법촬영 카메라가 발견되며 여러 번 뉴스화 되기도 했다. 그 전까지는 있는줄도 몰랐던 구멍인데, 한번 인지하게 된 뒤로는 공중화장실에 갈 때마다 늘 여기저기 뚫려있는 구멍들이 신경쓰인다.

 그리고 내 지갑에는, 친구가 벽에 뚫린 구멍을 막는데에 요긴하게 쓸 수 있다며 건네준 흰색의 원형 스티커가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어쩌다 이런 사회가 되어버린걸까. 한때는 인터넷의 지나친 발달이 문제라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예전이라 해서 이런 일들이 없었겠는가. 물론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현대사회의 매체 확산 속도가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빨라진 탓도, 그로 인해 자극적인 컨텐츠를 접하게 되는 연령층이 점점 낮아지고 있는 것도 무시 못 할 원인이기는 하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여성들의 인식 변화가 가장 큰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전에는 없었던 일들이 자꾸만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특정 사건의 기저에 깔린 혐오적 정서들에 대해 입을 열기 시작했기에 그간 곪아왔던 것들이 차츰차츰 도마 위로 오르게 된 것이라고.

 그랬기에 N번방 사건은 사회적으로 이슈가 될 수 있었고, 앞으로도 수없이 양산되었을지도 모를 피해자를 줄이는 데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러니 다행이다.


 딱 여기까지가, 이 책을 읽기 전에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다.


누군가는 왜 그리 힘들게 인생을 사냐고 묻기도 한다. 왜 별것도 아닌 일을 예민하게 받아 들이냐고. 웃기는 말이다. 내가 불편하고 싶어서 불편한가. 여러 사회문제를 인지하고 불편해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예민하게 구는 것'으로 여겨선 안 된다. 누군가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일상이 다른 사람에게는 쟁취해야만 하는 것일수 있다. 나의 예민함이 사회를 좀더 나은 방향으로 이끈다고 믿는다.

p.157


 N번방의 발견부터 불꽃의 두 사람이 걸어온 과정과, 느껴왔던 감정들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는 이 책은 읽는 내내 내게 놀라움부끄러움, 그리고 분노등 굉장히 다양한 감정을 가져다 주었다.


 가장 먼저, 이 사건을 가장 먼저 인지하고, 사회에 알리고,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 하던 것이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어린 두 명의 여대생이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전공, 논술, 시험.... 이들이 대학생임을 알리는 단어들이 튀어나올 때마다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저 공모전을 위해 시작했던 취재에서 이런 끔찍한 실상을 목격했을 때, 나였으면 어떻게 대처했을까.

 아마 경찰에 신고하는 시도정도는 하려 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 이후는 글쎄.... 이들처럼 사회적 이슈로 공론화 하고, 더 나아가 피해자들을 추적해나가며 적극적으로 돕고자 나서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이들은 그걸 해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존경스러운데, 동시에 나를 부끄럽게 만든 것은 이들의 태도였다. 끝까지 피해자를 먼저 생각하고 피해자를 보호하고자 하는 모습들. 그 모습들을 보는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도, 그리고 우리나라 언론도, 가해자를 악마화하며 욕설을 퍼붓는 동안 그 뒷면에 숨어있을 피해자들에 대해선 어느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사실을.


 같은 여성의 문제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나는 '남'이라는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앞에서 잠시 강남역 살인사건, 그리고 불법촬영 카메라 이야기를 했다. 그때쯤 한창 페이스북에서 가까운 사람들이 논쟁하는 모습을 목격했는데, 그 당시에 나를 가장 화나게 했던건 학교 후배가 썼던 글이었다.


 나는 여동생을 아끼고, 여동생과 사이도 좋은데, 왜 이런 나까지 싸잡아 잠재적 가해자 취급을 하느냐 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그 의견에 설득을 하고, 보다 더 정제된 말로 반박하는 모습을 보았기에 그 속에 섞여 논쟁하지는 않았지만, 그 무책임한 말이 너무나도 싫었다. 그래서 그저 툭 던지듯이, 이런 글을 올렸던 기록이 남아있더라.


 다음 피해자는 내가 되는게 아닐까 불안에 떠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 그저 일반화 당하는 현실에만 불쾌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부럽다



 이때만 해도 이런 생각을 했던 내가, 강남역 살인사건은 나에게 닥쳐오는 현실적인 위협으로 인식했던 내가, 왜 N번방 사태에 대해서는 그래지 못했을까. 이 책은, 그런 나에게 다시한번 경각심을 갖게 해주는 계기가 되어주었다.


 한창 이슈화 되었을 때만큼 주목받지 못하고 조금씩 잊혀지고 있지만, N번방 사건은 아직 해결된 것이 아니기에. 성별을 떠나 한 '인간'이 착취당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문제를 느끼지 못하고 함께 즐겼음에도 여전히 잡히지 못한 수많은 가해자들이 있고, 그나마 검거된 가해자들 또한 자신의 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에서 피해자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분명한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러게 왜 원인을 제공해서...'라는 비난마저 듣고 있다. 그 사실이 나를 분노하게 했다.

 분노해서, 뭐가 바뀌냐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엔 나라는 사람 개인의 힘은 너무나도 미약하지만, 적어도 기억할 수는 있으니까. 오늘부터는 언제까지고 기억하고, 관심을 갖고자 한다. 소리 낼 기회가 주어진다면 소리를 내야겠다. 이렇게 누군가가 몸을 불태우며 알리려 하고, 바로잡으려 하지 않아도, 죄질에 맞는 무거운 처벌을 받는 것이 당연해지는 날이 올 때까지.




"어린 여자아이들은 영원히 어리지 않다. 강력한 여성으로 변해 당신의 세계를 박살내러 온다"

p.96

나는 '별 일 아닌 것'으로 치부하려고 애썼다. 그래야 내가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중략) 나 자신에게 자꾸 묻게 된다. 내 탓인가? 이런 물음은 내 안에 남아있던 명백한 증거들까지 자근자근 짓밟고, 종국에는 나를 그냥 좀 예민한 여자애 정도로 자리매김해버린다.

p.115~116

그러니까 우리 사회가 먼저 선택해야 하는 것이 '누구를 보호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위법적인 수사 절차로 인한 인권침해를 막고 모든 사람의 인권을 보호하겠다, 이건 사실 말이 안 돼요. 일단은 여러 어려운 점이 있어도, '아동이나 청소년을 유인하는 모든 행위는 통제한다'는 법익을 우선시해야 한다는거죠.

p.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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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 유품정리사가 떠난 이들의 뒷모습에서 발견한 삶의 의미
김새별 지음 / 청림출판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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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책을 손에 들게 된 계기는 명확하게 기억이 나질 않는다. 유퀴즈였던가. 유튜브의 연관 동영상을 타고, 타면서 이동하던 도중에 발견한 영상이 있었고, 아마도 당시에 발견했던 영상에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한 김새별 분께서 게스트로 출연했었고. 들려주시는 이야기들이 좋아서 조금 더 많은 이야기를 보고자 하는 마음에 언젠가 읽을 책 리스트에 살짝 추가를 해두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어제 이곳에서 살던 고인을

오늘 천국으로 이사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다.

<천국으로의 이사를 돕는 사람들> 中

 죽음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유쾌한 일이 아니고, 또 누구나 피하고 싶은 일일 것이기에. 보통의 사람들이 살면서 죽음에 대해 입에 담는 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했고, 때문에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사실은 생각조차 해본 적 없는 것 같다. 죽은 사람들이 남기고 간 흔적은 어떻게 되는걸까.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면서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주변의 가까웠던 사람들을 통해 누군가를 떠나보내는 일들을 한두번씩 겪어보고 난 뒤에도 그 뒤에 남겨져있을 일들에 대해선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생각해볼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다는 말이 더 맞을 것이다. 나이를 먹어가는 와중에도 나는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였고, 내가 보고 있는 가족의 형태가 어디에서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런 내 좁은 식견이 우스워질 만큼, 책 속에는 다양한 형태의 죽음이 있었다. 최근들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고독사부터 자살, 타인에 의한 원하지 않는 죽음, 그리고 이따금씩은 예견된 죽음까지. 그에 따라 다양한 가족의 형태도 볼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관련된 경험이 있었던 탓이었을까.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내가 만났던 사람들이 떠오르고는 했다.

 업무 특성상 필연적으로 가까운 가족을 잃은 사람들을 마주하는 날도 있는데, 이따금씩. 일부이지만 정말 이따금씩, 망인보다도 남겨진 그의 재산에만 관심을 갖는 모습에 씁쓸함을 느꼈던 경험이 있다. 피가 섞인 가족들마저도 이러한데 이해관계가 얽힌 생판 남은 오죽했을까. 죽음을 맞이하는 그 순간까지도 외로웠을 사람들이 죽어서까지도 원망을 듣는 모습들은 그저 글로 읽어내려가는 나에게도 안타까웠다.


 그렇지만 인정(人情) 역시 어딘가에는 존재한다. 그다지 교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길을 배웅하고자 꽃 한송이를 두고 가는 이웃도 있고, 자신의 손익보다도 그저 순수하게 한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고 안타까워하는 마음 역시 있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본 순간,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에 뵈었던 분이 떠올랐다. 배우자분을 병마로 떠나보내신 뒤에 남은 행정절차를 처리하기 위해 방문했던 분이었는데, 그 외에도 용무가 있어서 두어달 가량을 계속 방문하시던 끝에 마침내 다가온 마지막 날. 갑자기 내 손을 꼭 쥐며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남편을 보낸 뒤로 너무 많이 힘들었는데 정말 큰 힘이 되었다'고. '너무 감사하다'고.

 그때의 나는 정해진 일만 했을 뿐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해드린 적이 없었기에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몇년이 지난 이제야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반드시 눈에 보이는 거창할 것이 아닐지라도, 내 별것아닌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큰 위로가 될수도 있겠구나 라는.


 책을 덮으며 유품정리사라는 직업의 의의를 되새기는 한편, 직업적 사명감은 물론이요 심적으로도 단단해야만 하는 직업임을 크게 느꼈다. 동시에 생각했다. 이들처럼 직접적으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이 되진 못할지언정, 언젠가 누군가의 죽음을 가까이에서 목격했을 때. 죽은 이를 원망하기보다는 그 앞길에 꽃 한송이나마 놓아줄 수 있는 사람이나마 되고 싶다고.



자식이 부모 마음을 어찌 헤아리겠는가. 장례지도사로 일할 때 수많은 죽음을 보았지만 돌아가신 부모를 안고 우는 자식은 거의 보지 못했다. 하지만 부모는 반드시 자식을 품에 안는다.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中

꽃은 꽃대로 벌레는 벌레대로 그저 존재한다. 장미가 아름답고 송충이가 징그러운 것은 우리가 선입견을 갖고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상은 그 무엇도 아름답거나 추하지 않다. 삶과 죽음도 마찬가지다.

<화장실에 놓인 국화 한 송이> 中

끝까지 버티는 사람이 승자라는 말은 언제나 진리다. 애초의 목표에 도달하지 못했다 해도, 버티다 보면 내가 해야 할 일이 번뜩이며 찾아올 때가 반드시 있다. 끝까지 버텨야 그런 날이 온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열심히 하다 보면 길이 보이고, 그 길을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

<현실을 버텨내는 용기> 中

괴로움은 삶에 다달이 지불하는 월세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행복이 우리를 찾아온다. 당연하게 여겨서 모를 뿐이다.

<고통, 삶에 다달이 지불하는 월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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