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세계에서 이 사랑이 사라진다 해도
이치조 미사키 지음, 권영주 옮김 / 모모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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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책에 대한 사전정보를 미리 알고 구매하거나 빌리는 편인데, 이 책과의 만남은 다소 급작스러우면서도 충동적이었다. 대체휴무를 받고 쉬던 날, 집에만 있기가 갑갑해서 집 근처 상점가로 산책을 나갔다가 얼마 전에는 없었던 특이한 부스를 발견했다.



 바로 말로만 듣던 무인 도서관!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친다고, 차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한 번 들어가보기로 했다. 처음엔 문이 안 열려서 당황했는데, 알고보니 출입문에 도서관 회원증 바코드를 찍어야만 출입이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도서관 회원증은 집에 놔두고 왔는데, 다행히 모바일회원증으로도 입장이 가능해서 무사히 입장...! 요즘 세상이 참 좋아졌다는걸 새삼 다시 느낀다.


 들어가면 이렇게 커다란 기계가 날 반겨준다.

 왼쪽에 있는 커다란 모니터에서 책을 고르고, 오른쪽으로 이동해서 대여 절차를 마저 진행하는 방식이었는데... 도서관 만큼 장서가 다양한 편은 아니었지만, 마침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어서 회사 아래층 도서관에 예약을 걸어둔 책이 보여서 고민없이 선택했다.


 그런데 나온 책이... 내가 선택한 책이 아니다?^_^?!




 당황해서 한참을 기계 주변을 맴돌다 깨달았다. 내가 관심있었던 책은 이미 대출중이었고, 내가 선택한 책은 그 책과 표지가 비슷한 다른 책이었던 것으로... 처음엔 그냥 반납할까 했지만,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이겠거니 싶어서 그대로 빌려왔다.

 그리고 정말로 성공적인 선택이었다.




 최근 독서기록을 시작하면서 다양한 책을 많이 읽는 습관을 들이려고 하고 있는데... 다양한 책들을 읽을 수 있었던건 좋았지만, 책을 덮었을 때 그 작가의 다른 책이 궁금해질만큼 정말 마음에 드는 느낌은 한동안 받지 못했다. 그게 나로 하여금 계속해서 책을 읽게 하는 원동력이었기 때문에 늘 아주 작은 아쉬움을 마음속에 품고 있었는데...


그런데 이 날, 이렇게 우연히 나에게 찾아온 책으로부터 정말 오랜만에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이었다. 어쩌면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 아니었을까 싶을 만큼. 그동안 이런 느낌을 많이 받았던 책들이 대부분 일본문학이었던걸 보면, 어쩌면 나는 일본문학의 감성과 맞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게 이런 감정을 느끼게 해준 이 책은, 평범한 남학생 가미야 도루(원어로는 아마도 '카미야 토오루'라는 예쁜 이름일텐데...일본어 원문표기에 익숙한 나에게는 일본어의 한국식 표기가 여전히 어색하기만 하다...)와, 날마다 일정 시기 이후의 기억을 잃어버리는 선행성 기억장애를 앓고 있는 히노 마오리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책을 잘못 빌린 순간 책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검색하며 알게 된 이 책의 소개를 읽자마자 대강이나마 이 책의 결말이 짐작이 갔더랬다. 그랬기에 큰 기대 없이 읽어내려가던 소설인데... 이 소설은 그런 내 예상을 보기 좋게 뒤집어주었다. 책을 먼저 읽은 분들이 말하던 "기대를 배반했다", "편견이 무너졌다" 라는 평가들을 나 역시도 이해하게 된 것이었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잔잔하게 흘러가는 책의 분위기상, 뒤통수를 얻어맞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의 커다란 반전은 아니었기에 그런 반전을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울 수도 있지만... 나는 오히려 마구 격동적인 소재의 글들보다는 이런 잔잔한 작품들이 정말 좋다.

 내가 늘 겪고있는 일상과 별반 다르지 않은, 각자의 특수성에 의해 조금씩 다를 뿐인 그런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어지는 평범한 나날들. 그런 평범한 날들을 보내며 느끼는 각자의 기쁨과, 추억, 마음들이 차곡차곡 쌓여 마침내 결말에 이르게 되기까지의 그 흐름들이.

 작품 내내 쌓아온 그 행복하면서도 청량한 장면들 덕분이었을까. 마냥 행복하기만 한 결말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생각보다는 그렇게 슬픈 이야기로만 남아있지는 않다. 반전 뒤에도 히노 마오리는 여전히 희망을 품은 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으니까. 잊혀졌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도루의 누나가 한 말을 떠올리면서도 아플 동안은 울자고 생각했다. 상관없다. 울보면 뭐 어떤가. 전부 내 것이다. 슬픔도, 아픔도, 추억도, 전부. 전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또 울었다.

p. 362

모두 언젠가는 잃을 것들이다. 없어질 것들이다. 그래도...... 온갖 것이 변해간다 해도. 인생을 삶으로써 과거가, 아름다운 것이 흐릿해진다 해도. 변하지 않는 것은 분명히 있다. 마음이 그리는 세계는 언제까지도 빛바래지 않는다.

p. 374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 두 사람을 곁에서 지켜보는 '와타야 이즈미'라는 캐릭터도 무척이나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는데, 블로그 글을 쓰기 위해 알아보는 과정에서 이즈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후속작이 최근에 출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빌린 무인 서점에는 없었고, 평소에 자주 다니고는 했던 근처 도서관에도 없는 책이라 애가 타지만... 조만간 비치를 요청하든, 구입을 하든, 꼭 챙겨서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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