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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각본
김지혜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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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모르겠다(Mother died today. Or maybe, yesterday; I can't be sure)."


알베르 카뮈 <이방인>의 첫 문장이다.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주인공의 성격을 드러내는 문장으로 손꼽힌다.

김지혜 작가의 신작 <가족 각본>의 첫 문장,

"가족이 견고한 각본 같다는 생각을 한다"

역시 그가 하고픈 메시지와 이 책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탁월한 문장이다.


작가는 흔히 일컬어지는 '정상 가족', '정상인', '평범한 삶'의 범주 안에서 그려지는 모습의 모순과 문제점을 이야기한다. '정상'은 누가 정의하고 누가 속하는 것인가. 변화하는 사회와 문화의 흐름에서 달라진 시선과 가치관과는 달리 고여 있는, '전통'이라 대변하며 눈 감고 붙잡고 있는 '가족'이라는 개념을 파헤친다.


이 책은 이러한 정형화된 각본 속 가족의 모습이 지닌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근본적인 물음을 통해 문제를 직면하고, 작가와 독자, 독자와 사회, 그리고 스스로 대화하며 각자의 해결책을 찾는 과정을 제시한다.


가족을 의미하는 'family'의 어원(familia - 가장에게 속한 소유물)부터 시작해 부정당하는 동성 간의 관계, 남성 중심의 호칭 체계, 기울어진 성 역할, 저출생 문제 등등 사회 곳곳에 자리한 문제점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다시금 과거와 오늘날 그리고 앞으로의 사회 모습을 생각해 보게 한다.


앞서 말했듯 작가는 정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아니, 그 누구도 우리 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해결책, 정답을 제시할 수 없다. 문제점들을 인지하고, 공론화하여 지지부진한 대화를 통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닿는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 방향을 다잡는 데에 이 책은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 글은 출판사 창비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가족이 견고한 각본 같다는 생각을 한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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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 위의 고백들 에세이&
이혜미 지음 / 창비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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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작은 숲을 들인다.
숲속을 살피며 자박자박 흙 밟는 소리를 듣고,
푸른 색보다 더 푸른 바람을 맞고,
여름의 무성함을 들인다.

그렇게 숲속을 걸어 나와 차린 식탁에서
계절을, 마음을 마주하고 한술을 크게 뜬다.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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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단단한, 무른, 색색의 식재료를 손에 담고 싶었고, 그 계절을 맛보고 싶었다.
잊고 있던, 모르고 있던, 좋아하던 계절의 맛을 깊이 맛본 식탁이었어.
덕분에 계절을 더 오래 보게 되었고,
여름을 더 사랑하게 되었어.
정말 맛있는 한 끼였어.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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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탁워의고백들 #이혜미 #창비 #에세이 #에세이엔 #Essay& #에세이앤시리즈 #당근라페 #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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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복숭아 - 꺼내놓는 비밀들
김신회 외 지음 / 글항아리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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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부: 남에게 드러내고 싶지 아니한 부끄러운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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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드러내고 싶지 않은, 서랍 깊숙이 숨겨놓은 부끄러운 조각이 있지 않을까.

그 한 조각을 꺼내어 보여준 아홉 명의 작가, 아홉 개의 복숭아가 담겨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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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여름한 빛깔의 표지와 복숭아

동그란 형태와 탐스러운 빛깔을 지닌 복숭아지만 쉽게 물러버린다는 점을 숨기고 있다.

이 책에 나오는 아홉 명의 작가, 그리고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도 당당하게 내세우는 겉모습의 이면에 복숭아의 무른 성질이 있다.

하지만 그 무른 성질,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조각, 치명적 약점이라 부르는 '아킬레스건'이야말로 다르게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를 지탱해 준 가장 나다운 모습이 아닐까.

꼭꼭 숨기고 싶은 마음만큼 가장 내면의 내 모습을 닮은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여름밤의 서늘함과 습도, 소리, 맥주 한 잔이 내면의 아킬레스건을 스르륵 내보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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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 이야기'라는 포괄적인 주제로 묶인 아홉 개 이야기의 통일감이 약해 아쉬운 마음이 든다. 아홉 명 작가의 색이 서로 달라 아홉 개의 복숭아보다는 각자 다른 과일을 꺼내놓은 듯하다.
그중 가장 입에 맞았던 과일은 남궁인 작가의 「도-레-미-미-미」다. 노래방과 음치 에피소드를 읽으며 킥킥대며 한참을 읽었다. 이슬아 작가의 『일간 이슬아』2021년 늦봄호에 등장하는 NK의 노래방 에피소드의 시퀄을 본 듯하다. 최근작 『우리 사이엔 오해가 있다』처럼 글에 담긴 유쾌함에 즐거웠다. 남궁인 작가의 팬으로 이 꼭지 글 하나만으로도 이 책을 읽을 가치가 충분했다.


사랑이라는 감정은 책임감을 필요로 한다. 내 감정을 믿고 가겠다는 마음. 사랑이 끝나거나 사랑 때문에 상처받고 관계에 실패하더라도 감당하겠다는 마음. 그건 용기이기도 하다. - P20

어쩌면 우리는 한 권의 책이 될지도 모르는 이야기를 매일 쌓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이란, 나무에서 시작해 한 장의 종이가 되고, 종이가 하나둘 쌓여 책 한 권이 되는 건 아닐까. 어딘가의 책장에 자리를 잡고 지내다가, 다시 나무가 될 준비를 갖추는 존재가 아닐까.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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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이동호 지음 / 창비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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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는 농장의 동물인가, 공장의 식품인가?

-환경과 채식, ‘함께라는 가치에 대한 끝없는 의문에 답을 찾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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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는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또는 인자한 독재자와 같이 양립하기 어려운 문장으로 눈길을 끈다.

새끼 돼지 분양부터 돼지우리 만들기, 사육과 교감에 이어 도축까지. 순진한 시티보이에서 어엿한 대안축산연구회의 구성원이 되는 좌충우돌의 시간이 한가득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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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동물은 경제 논리 안에 있다. 이 논리에 맞춰 인간은 동물을 살이 빨리 찌거나, 알을 많이 낳거나, 젖이 많이 나오는 품종으로 개량한다. 기준에 맞지 않는 동물은 불량품이다. 꼬리와 송곳니, 뿔과 부리를 자르고 거세를 한다. 햇볕을 쬐거나 흙을 밟거나 기지개 한번 제대로 켜지 못하는 틀 안에서 산다. 동물은 인간에게 값싼 고기만 제공하면 되는 공산품일까? 살아 있는 기쁨을 누릴 필요가 없는 기계일까? 이것을 그저 동물권의 문제라고만 할 수 있을까?”(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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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끗하고 적정한 크기의 축사에서 돼지의 본성을 억압하지 않고 사육하는 자연양돈을 통해 동물을 키우고 먹는다는 것의 의미를 고민하고 서툴지만 진정성 있게 그 답을 찾아간다.

동물복지’, ‘자연양돈이라는 것도 결국은 사람 중심의 사고는 아닐까? 일말의 죄책감을 덜고 마치 자신은 정당하다는 식의 자기방어이자 자기변명은 아닐까? 아니면 진정 동물권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이자 공존의 방법인 것일까? 갈수록 깊어지는 고민과 한없이 생겨나는 질문에 누구 하나 정확히 답을 해주지 않기에 끊임없이 되묻고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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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식 축산은 소비자들이 불편하게 여기는 사육과 도살을 대행해주는 시스템이다. 공장식 축산은 소비자들이 불편한 감정을 경험할 기회를 차단한다. 축산기업은 구매자가 조금이라도 불편할까봐 동물의 사체에 웃는 소, 행복한 닭의 이미지를 붙여 전시한다. 불편함은 휘발된다. 소비자는 불편함으로부터 보호된다. 편한 소비가 가능해진다. 보이지 않기에, 내 손으로 죽이지 않았기에, 마음 편하게 육식을 즐길 수 있게 된다. 고기를 더 싸게, 더 많이 소비하는 것이 미덕이 되는 사회에서 육식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은 도리어 불편한 존재가 된다.”

황윤 사랑할까, 먹을까에서

 

고기의 이면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기는 3분 요리처럼 띵동하고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고기 이전에 돼지가 있고, 돼지는 인간과 연결되어 있다. 어떤 고기를 먹을지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 이면까지 알고 선택할 때에야 비로소 진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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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이 채식주의자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치는 게 아니다. ‘돼지, 다른 여타의 동물을 공장에서 뚝딱하고 만들어진 식품이 아니라 농장에서 삶을 영위하는 하나의 생명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더 많은 이들이 음식, 고기 이전의 시간과 과정을 한번쯤 돌이켜 보기를 바란다. ‘사람도 먹고 살기 힘들다’, ‘그렇게 까다롭게 굴어서는 어느 것 하나 마음 편히 하지 못한다등의 자기중심적인 사고로 눈앞의 것들을 손 저어 치워내기 보다는 너무도 많은 것을 외면한 채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가 생각하는, ‘조금의 불편함이 공존의 전제 요소임을 깨닫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지금의 동물은 경제 논리 안에 있다. 이 논리에 맞춰 인간은 동물을 살이 빨리 찌거나, 알을 많이 낳거나, 젖이 많이 나오는 품종으로 개량한다. 기준에 맞지 않는 동물은 불량품이다. 꼬리와 송곳니, 뿔과 부리를 자르고 거세를 한다. 햇볕을 쬐거나 흙을 밟거나 기지개 한번 제대로 켜지 못하는 틀 안에서 산다. 동물은 인간에게 값싼 고기만 제공하면 되는 공산품일까? 살아 있는 기쁨을 누릴 필요가 없는 기계일까? 이것을 그저 동물권의 문제라고만 할 수 있을까? - P111

고기의 이면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고기는 3분 요리처럼 ‘띵동’하고 나오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다. 고기 이전에 돼지가 있고, 돼지는 인간과 연결되어 있다. 어떤 고기를 먹을지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지만, 그 이면까지 알고 선택할 때에야 비로소 진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 P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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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눈동자 안의 지옥 - 모성과 광기에 대하여
캐서린 조 지음, 김수민 옮김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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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이야기 보다는 ‘여성’, 한 명의 ‘인간’이 겪는 혼란과 혼동 속 내면을 파고드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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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여성이 겪는 우울증, 산후 정신증의 기록이다. 바다와 같던 아기 눈에서 어느 날 마주친 악마, 그 전과 후의 시간을 담아냈다.
한국계 미국인인 작가가 서로 다른 두 문화 사이에서 혼란을 느끼듯 ‘여성’으로서의 개인의 삶과 ‘엄마’의 모습 사이에서 겪는 혼란을 기록한 에세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책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다. 하지만 텍스트를 읽고 있으면 ‘에세이’라는 장르 자체를 의심하게 만든다. 저자의 기록은 여성과 임신, 사회 관습과 모성을 바라보는 우리의 자세에 질문을 던지고 그 속에 서 있게 했다.
모성은 무엇인가? 탄생과 함께 찾아오는 본능인가, 사회제도가 몰아넣어 끼워 맞추는 다수의 가치관인가.

나는 엄마였고, 여전히 내가 엄마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나를 정의하는 단 하나의 정체성이었을까? 나를 따라오는 그림자였을까? 나를 설명하기 위해 내 이름 뒤에 붙는 단어였을까? 옷처럼 입었다 벗었다 할 수 있는 무언가였을까? 확신할 수 없었다. - P189

내 나이는 서른살이었다. 어머니가 나를 임신했던 나이와 같았다. 또 외할머니가 어머니를 임신한 나이도 서른살이었다. 마치 내 운명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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