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이 뒤집혀 있어도 세상은 돌아갈 테니까
쓰보우치 지음, 김윤수 옮김 / 문학수첩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낙엽만 굴러가도 웃는 나이가 한참 지났기 때문일까. 최근 들어 진심으로 무언가에 공감해서 소리 내어 웃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쏟아지는 뉴스들은 분노를 유발하는 내용들뿐이고, 좋아하는 소설 장르는 죽느냐 사느냐 심각한 이야기들이니 웃음 포인트가 없는 게 당연할지도. 코미디라는 이름을 가지고 나온 프로그램이나 글들 중에는 억지스러움이 느껴져 보다 보면 어이없을 때도 많다.


그런데 '맞아 나도 그랬어', '대박 이거 완전 내 얘긴데'라며 공감을 이끌어내며 웃음을 주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바로 『양말이 뒤집혀 있어도 세상은 돌아갈 테니까』이다.

이 작품은 일본의 레터스 클럽과 트위터에 연재되며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사랑을 받은 만화로 작가의 평범한 일상을 재미있고 생동감 있게 풀어내고 있다.



이 만화는 저자 쓰보우치와 남편, 태어나서 크리스마스를 두 번 맞은 아들 다보, 이렇게 세 식구의 왁자지껄 현생 라이프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책을 처음 펼치자마자 전개되는 공감 백배 이야기에 '나는 어땠더라' 하며 나의 경험을 소환하여 비교하면서 읽게 되었다.


어느 나라든 똑같이 여자들은 결혼 후 생활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나 보다. 생활 속에서 그저 결혼이라는 행사를 한번 치렀을 뿐인데.


쓰보우치 씨는 결혼 후 혼자 집안 살림을 도맡아 아등바등 치우고 살지만 결혼 전과 전혀 변화 없는 아들 내지는 손님 모드의 남편과 트러블을 겪기도 한다. 쓰보우치 씨가 치우지 않으면 배수구는 머리카락 등으로 막히고 쓰레기는 휴지통에서 넘쳐나며, 남편이 도와준답시고 설거지한 그릇은 기름기로 미끄덩거리는 데다 기껏 정성껏 해준 음식에 남편은 칭찬보다는 사소한 것 하나에 불평을 하는…. 게다가 같이 사는 공간인데 혼자서만 주야장천 치우는 모습.


원래 살림이란 열심히 해도 티가 안 나지만, 조금이라도 하지 않으면 엄청 안한 티가 난다는 것을 누구나 다들 겪고 나서야 깨닫는 법이다.

나 같은 경우, 초기에 나도 내 살림을 처음 가져본 초보자였으면서 뭘 그렇게 처음부터 살림에 도가 튼 베테랑인 것 마냥 행동했었던지. 집이 어지러운 꼴을 못 보고 조금이라도 어질러져 있으면 즉시 치워대고, 뭐든지 혼자 척척 알아서 하고, 음식도 요리학원에 다니며 매일매일 끼니때마다 새로운 메뉴들을 해댔다. 그런데 남편은 고마워하기는커녕 나중에는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고 안 그러면 불평했다. 나중에 몸살로 드러누우니 "누가 너한테 그렇게 하라고 시킨 적 없는데?"라는 말을 해서 얼마나 서러웠던지….

우리 집에는 영원히 내 편이 아닌 남편이 있다. 😑



쓰보우치 씨의 옷장을 보고 내 옷장이 생각나 엄청 웃었다.

'뭔가에 홀린 듯 비슷비슷한 옷만 구매'했다는 게 남의 일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도 결혼 전에는 다양한 종류 다양한 디자인의 옷들을 구매하고 입었는데, 결혼 후 언젠가부터 무난한 색상에 실용성 위주로 옷을 구매하고 있었다.

한동안은 나도 모르게 사계절 옷들을 전부 검정 내지는 남색의 줄무늬로만 구매한 적도 있었다. 하루는 우리 집에 놀러 온 동생이 내 옷장을 보더니 "언니는 빠삐용이야?"라고 말해서 정신 차리고 옷장을 둘러보며 배꼽 잡고 웃었던 적이 있다.


또한 옷장은 터져나갈 것 같은데 막상 입고 나가려면 입을 옷이 없다는 쓰보우치 씨. 이것도 아마 모든 사람들이 공감하는 내용일 것이다.

나도 예전에 옷장 속에 한두 번 밖에 입지 않아 아까워서 정리하지 못하고 계속 가지고 있던 옷들이 꽤 있었다. 목표는 '살 빼고 다시 입어야지'였다.

그러던 중 아이가 우연히 내 옷장에 걸린 옷들을 보더니 "자리 많이 차지하지 않도록 옷을 작게 만들어 보관하세요?"라고 말해서 웃으며 등짝 스매싱을 가볍게 날린 적이 있다. 물론 그 이후 아까워서 정리하지 못했던 옷들을 과감히 버렸다는 사실.



그리고 책에는 식사 준비할 때 보채는 아이를 아빠와 산책 내보내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도 쓰보우치 씨처럼 아이가 어릴 때 집안일이나 요리할 때 남편과 아이를 산책 보냈던 적이 있다. 하루는 배달음식을 시켜 먹을 생각으로 식사 준비를 안 하고 같이 산책을 나가려고 하니 아이가 "엄마는 산책하는 거 아닌데, 산책은 아빠랑 하는 건데."라고 말해서 충격받았던 적이 있다. 어느새 아이에겐 산책은 아빠와 둘이 나가는 것이고 엄마는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입력된 모양이었다.

우리 집에는 앞으로 나라의 아들이나 사돈의 아들이 될 현재만 나의 아들인 아이가 있다. 😑



여자의 변신은 유죄인가 무죄인가.

일본과 한국의 여성 화장룰이 이렇게나 똑같을 수가. 😂

나도 쓰보우치 씨처럼 결혼하기 전에는 풀 메이크업이 아니면 집 앞 슈퍼도 나가지 않을 정도였는데, 결혼하고 아이가 태어나면서 쓰보우치 씨처럼 화장품 개수가 줄며 점점 간소화되더니, 이제는 세수도 안 하고 눈곱만 떼고 나갈 때도 있다. 누가 날 본다고….

그러다 어쩌다 하는 화장은 너무 어색하기 그지없다.

아이들이 옷차림이나 얼굴에 지나치게 신경 쓰면 "의외로 다른 사람들은 남의 일에 관심이 없단다. 남들이 자신을 쳐다본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야"라고 말하곤 한다.



그리고 책은 단순히 재미와 힐링만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각 장의 마지막에는 쓰보우치 씨가 일본의 심플 라이프 연구가 마키 씨에게서 들은 살림 팁을 고스란히 전해주고 있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세탁 후 빨래를 개고 싶지 않아 뒤집어진 채로 옷장에 넣었던 일화, 꼭 필요할 것 같아 산 가전제품들이 전시용으로 기능을 다하는 일화, 어린 아들 다보가 성장해 나가는 모습 등 생활 속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며 공감과 웃음과 힐링을 주고 있다.

내가 경험했을 때에는 분명 다큐이자 전투였는데 쓰보우치 씨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훈훈한 힐링으로 다가오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 당시 실전을 치르고 있던 나에게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양말이 뒤집혀 있다고 아니, 양말을 한 짝 뒤집어 신고 나간다고 해서 큰일 나지는 않다는 것을 살면서 절실히 느낀다. 자고 일어나서 각 잡고 침대 정리를 한다고 해서 행복하고 침대 위에 이불이 너저분하게 널려 있다고 해서 불행하지 않다는 것을 매일 깨닫는다. 음식이 짜면 물을 조금 더 붓거나 정 안되면 건강을 위해 그냥 쿨하게 버리면 되지 않을까?


사소한 것에 연연하며 스트레스 받지 않고 자신의 삶 자체를 소중하게 사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 같다. 산다는 게 전부 그런 거지 않을까?

이 책을 보면서 다시 한번 나의 일상을 돌아보며 행복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행복을 희망하며 진심으로 웃고 싶은 모두에게 유쾌한 이 책을 추천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고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