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인의 사랑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장현주 옮김 / 새움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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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회사의 기사였던 스물여덟의 가와이 조지는 모범적인 샐러리맨으로 검소하고 성실하고 재미없을 정도로 평범하며, 아무 불평, 불만도 없는 소위 '군자'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그는 직장인치고 높은 급여를 받으며 도쿄에서 혼자 생활하며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고 있었다. 그는 촌사람이기는 했지만 체격도 좋고, 품행도 방정하고, 그럭저럭 남자답고 회사에서 평판도 좋았기 때문에 그가 결혼하고 싶어 했다면 누구라도 기꺼이 중매를 서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당시 결혼 풍습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던 '중매'라는 것이 싫었다.


그는 어린 소녀를 집에 들여 천천히 성장과정을 지켜보고 나서 마음에 들면 아내로 맞이하고 싶어 했다. 그 소녀를 친구로 삼아 매일 그녀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며 밝고 명랑하게 놀이 기분으로 한집에 사는 것이 정식으로 가정을 꾸리는 것과는 다른 각별한 즐거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카페의 병아리 호스티스 나오미를 점찍고 그녀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는 틈만 나면 그 카페에 들러 나오미와 친해질 기회를 만든다. 나오미는 열다섯에 이름이 서양인처럼 세련된 느낌인데다가 생김새도 어딘지 서양인 같고 무척 영리해 보였기에 카페의 여급으로 두기에는 아깝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카페에 손님이 없어 한가한 어느 날, 조지는 나오미를 테이블에 불러 앉히고는 그녀의 관심사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그녀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자신이 공부도 시켜주고 돌봐주며 훌륭한 여자로 키워주겠다고 제안했고, 이에 나오미는 아무런 주저 없이 승낙한다.


그 후 오모리에 집을 빌려 같이 살기 시작한 두 사람의 생활은 조지의 계획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그리고 나오미가 열여섯 살이 되던 해 두 사람 사이에 무언의 '이해'가 생겨 둘은 육체적인 관계로까지 발전하여 양쪽 부모의 허락하에 법률상 부부가 되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앞으로도 계속 일반적인 부부가 아닌 친구처럼 살자고 약속한다.


조지는 점점 더 나오미의 비위를 맞추며 그녀에게 빠져드는 한편 나오미는 점점 더 게으르고 이기적이고 난폭하고 학문적으로 아둔한 모습을 보여준다. 영리하지 못한 나오미의 기를 세워주기 위해 조지는 일부러 나오미의 허세에 놀란 척을 해주고 게임에도 져주는 등 그녀를 기쁘게 해 줬지만, 나오미는 점점 더 건방진 자신감이 가득해지고 득의양양해졌다. 조지는 나오미를 길러주는 것이 아니라 그녀에게 점점 더 질질 끌려다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오미가 열여덟이 되던 해의 가을, 여느 때보다 회사일이 빨리 끝나 일찍 집에 돌아오니 한 번도 본 적 없는 한 소년이 나오미와 정원에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조지를 보자 얼굴을 감추듯이 모자챙을 누르고 가버렸고 나오미는 아무렇지 않게 그 소년은 자신의 친구 하마다 씨라고 이야기한다. 그는 성악 교실에서 만난 친구로 사교댄스 클럽을 만드니까 가입하라는 말을 전하러 왔을 뿐이라고 이야기한다.

나오미가 강하게 주장하여 조지는 그녀와 함께 댄스 클럽에 함께 가입해서 배우러 가게 된다. 그런데 나오미는 같이 간 교습장에서 마주친 구마가이라는 학생이나 그곳 점원들과 알고 있는 사이인 듯 스스럼없이 인사를 주고받는데…….



이야기는 조지의 서술로 전개되고 있다. 8년 전 아내인 나오미를 만나는 무렵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조지는 처음부터 그들 부부관계가 남다르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조지는 나오미를 몹시 아름다운 부인으로 만들어 데리고 다니며 남들의 부러움을 사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오미의 실체를 아는 회사 사람들에 의해 문란한 여자를 데리고 다닌다는 조롱만 당한다.

결국 조지와 나오미의 관계는 조지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고 어린 나오미에게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 휘둘리게 된다. 부부임에도 조지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남보다도 못하게 무시당하고 돈은 돈대로 가져다 바친다. 그리고 나오미는 그런 조지를 마음대로 조종하고 사치와 성적 문란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조지는 왜 그런 그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신의 영혼까지 바치는 비굴함으로 모든 것을 갖다 바친 것일까? 과연 그것이 사랑일까?


이 소설을 읽으면서 괜히 읽었다는 찜찜함만 남았다. 전혀 유쾌하지도 아름답지도 슬프지도 애잔하지도 않은 소설이다. 지울 수 있다면 이 소설 내용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나오미는 범죄자 수준의 악녀이다.

이야기를 읽으면서 요즘 한창 이슈화되고 있는 남편을 가스라이팅 해서 죽인 '계곡 살인 사건' 이야기가 자꾸 겹쳐져서 떠올랐다.

만약 조지에게서 더 이상 돈이 나오지 않았다면 분명 나오미는 조지를 버렸을 것이고, 아마 지금처럼 보험금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사건처럼 자신의 내연남들이랑 공모해 충분히 조지를 죽이고도 남았을 인간인 것 같다.

과연 조지가 나오미 곁에 남아 있는 것이 행복일까? 그것이 또 다른 부부관계의 한 형태라고 인정할 수 있을까?

글쎄, 내가 보기에는 조지는 나오미 곁에서 분리시킨 후 정신과 상담이 시급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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