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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아빠의 몰락
로버트 H. 프랭크 지음, 황해선 옮김 / 창비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부자 아빠의 몰락> (원제: Falling Behind )
저자: 로버트 H. 프랭크
역자: 황해선
쪽수: 한국어판에 더한 저자 서문 6쪽 + 머리말 10쪽 + 본문 148쪽 + 해설 15쪽 + 각주 및 참조문헌 16쪽
가격: 11000원
출판사: 창비
초판1쇄: 2009년 2월 6일
0. 사실을 고백하건대, 이 책은 전혀 읽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출판사로부터 책이 도착했을 때, '이번에 냈다는 이 책'을 보고 일단 큰 한숨부터 내쉬며 이렇게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공간도 없는데 이딴 걸 뭐하러 보낸 거야?" 그럴 만도 했다. 제목을 보라. <부자 아빠의 몰락>이라고 하면 자기계발서 내지는 실용서 어쩌고 하는 부류의 책으로 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걸 어떻게 처리해 버릴지 잠시간 고민하다가(당연히 한 장도 펼쳐보지 않았다) 그 고민하는 시간조차 아까워져서 결국 망각 속에 잊혀지고 말았다. 그러다가...... 올해 3월 들어, 아무래도 좋은 이 책을 '우연히 발굴하여' 이 자리에 소개하게 된 것이다. 게시물을 올려야겠다는 의무감이 생기지 않았다면 이 책은 앞으로 수십여 년이 흘러도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을 뻔했다. 그런데... 속물스런 사고방식에 따라 집어든 <부자 아빠의 몰락>은 의외로 재미있었다. 이 책은 경제개론서에 가까운 모양새를 띠고 있지만 어렵지 않을 뿐더러 단순명료하다. 중학생에게 쥐어 줘도 이해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비록 내가 필요로 하는 지식과는 방향성이 전혀 달랐지만 구매할 의사가 있을 법한 이들에게는 꽤 매력적인 내용으로 와닿을 것 같았다.
1. 이 책은 소득 불균형의 원인과 사회에 미친 영향, 앞으로 미치게 될 영향, 그리고 그 개선방안에 대한 내용을 싣고 있다. 어찌 보면 지금까지 했던 말을 또 하는, 천한 내용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괜찮게 썼다. 책의 내용을 요약해 두는 것이 잘 하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간단하게 적어두겠다. 그러나 모든 이야기가 그러하듯 가장 중요한 것은 개요가 아니라 과정이다.
2. 요약
-현대 사회에서는 급여 대비 생산성과 소득이 비례하지 않으며, 오히려 최상위층 이외의 모든 계층에 대한 소득불평등을 야기한다.
-빈부격차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은 정황(context)과 가치평가(evaluation) 사이의 주관적이고 상대적인 차이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는 것 같다. 말하자면 특정한 공간 내에서 가지는 위상 문제다. 상류층 밀집지역에 끼어 사는 중류층은 객관적인 기준으로 볼 때 불행할 이유가 없지만, 해당 공간 내에서는 박탈감을 느낀다. 이것은 비단 박탈감 자체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을 점차적으로 변화시켜 나간다. 책에서는 자동차의 성능이나 저택의 크기 등을 예로 들었는데, 과거에는 자동차의 속도가 시속 50km만 되어도 아주 빠른 차라 생각하고 만족했지만, 오늘날에 들어서는 더이상 그렇지 않다. 객관적인 성능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눈높이가 달라진 것이다. 바로 인식의 변화다. 또한 현 사회는 예전에 비해 발전된 문명수준을 이룩한 덕분에 상류층과 그렇지 못한 사람 사이에 범위를 따질 수 없을 만큼 붙어 충분히 밀접해 있다. 따라서 인식은 전체 사회에 걸쳐서 이루어지며 정황은 항상 활성화된 상태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 의한 상대적인 가치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결국 사회적인 기준 자체를 바꾸어 놓는다. 친히 한국의 예를 들어보겠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해도 국민학교의 한 반을 이루는 수는 50-60명 사이였다. 그리고 그것이 그 당시의 인식이었고 평균이었다. 그 때는 한 반을 이루는 급우의 수가 너무 많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새천년을 넘어선 지금에 와선 그 인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생각해 보라. 인식의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만할 것이다.
-위와 같은 상대적인 요소를 결정짓는 재화를 저자는 '지위재'(positional good) / '비지위재' (nonpositional good) 이라고 표현했다. 즉, 사람은 자신과 타인과의 상대적인 차이를 신경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 부분은 꽤 철학적인 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왜냐면 '각 사람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본다' 즉 상대의 반응을 통해 자신을 확인하는 생물이기 때문이다. 경제학 서적을 읽으며 이런 부분을 떠올리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나 단순히 생각해보면 이러한 점은 경제학의 기본을 이루는 요소같다.
-이제 생각해보자, 이러한 지위재 지출은 당연히 모든 계층에서 이루어지겠지만, 위업을 달성하는 건 최상위층에게만 해당될 것이며 나머지 계층은 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지출을 할 것이다. 그러나 현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과실을 먹는 건 최상위층이며 나머지는 그렇지 않다. 지난 수십년간 배부분의 배당소득은 최상위계층에 돌아갔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그 부유층의 자기과시 및 지위재 지출은 간접적으로 차상위계층에게도 영향을 주어, 연쇄적 반응을 통해 중류층이 최상위층이 보유한 지위재의 일부에 보다 많은 관심을 보이게 된다고 한다. 이를테면 주택과 부동산이 그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예를 들자면 나의 사촌은 현재 삼성에서 일하고 있다. 그는 독신임에도 불구하고 혼자 살기에는 너무나도 넓은 사십여 평의 아파트를 샀다. 그에게 수도권의 사십여 평 아파트가 필요없음은 물론이다. 그는 대기업의 사원으로 자정이 다 되어서야 귀가하는 이니까. 사촌이 말했다. "부모님이 오실 때 머물 공간이 필요해." 그의 친구들은 모두 그럴싸한 집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수준을 맞추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사촌의 그러한 행동이 지위재 지출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지위적 불평등은 여러 방면에서 비교 하위 계층에게 악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이 책에서 주로 다루는 계층이 중산층이니 중산층에게 악영향을 미친다고 해두겠다. 이 책에서는 이와 같은 정황판단에 대한 논리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상대적 박탈감은 상상 이상으로 중요한 요소다.
-그리고 이러한 지출경쟁은 승자독식시장에 의해 소득과 부 전체가 최상위계층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이 사회에서 극적인 지출불균형이라는 형태로 나타난다. 이것은 손을 쓰지 않는 한 점점 악화될 것이다. 따라서 만족감을 도출하는 지출의 동기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그것이 저자가 주장하는 누진소비세다. 소비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것이다. 이것은 불필요한 과소비를 억제하고 따라서 만족감을 높여줄 것이다. 불필요한 지출이 줄어든다면 경제는 오히려 나은 상태에 놓이게 된다.
3. 책 자체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간단했지만, 그 간단한 결론을 내기 위해 사용한 방식이 흥미로왔다. 그러나 읽어볼 이만 읽는 것으로 족한 책이다.
덧: 특히 한국어판에 포함된 저자 서문은 정말 보기 좋았다. 저자 서문에 대한 합당한 경의를 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