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웨이크 시리즈 - 전3권 - 꿈을 엿보는 소녀 + 끝나지 않는 악몽 + 최후의 선택 블랙 로맨스 클럽
리사 맥먼 지음, 김은숙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3월
평점 :
절판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블랙 로맨스 클럽의 로맨틱 스릴러 웨이크 시리즈. 소개글을 볼 때부터 취향이라고 생각했던 글이라 많이 기대해서 실망하면 어쩌나 싶었다. 하지만 다 읽고나니 그 기대에 부응해준 것만 같아 만족스러웠다.​

웨이크 시리즈는 <꿈을 엿보는 소녀> - <끝나지 않는 악몽> - <최후의 선택> ​순으로 책의 표지에서부터 가볍지 않은 분위기를 풍긴다.

 

'꿈은 기억이 아니야. 그저 희망과 공포일 뿐이야.'​

그 중 웨이크시리즈의 첫 번째 책인 ‘꿈을 엿보는 소녀’는 주인공 제이니 해너건의 적응기였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웨이크시리즈의 주인공은 드림캐칭, 즉 꿈을 엿보는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제이니가 마냥 특별한 인물인 건 아니다. ​책 뒷면 띠지에 적힌 멘트 '타인의 꿈을 엿보는 능력, 그것은 저주인가, 축복인가?' 는 그런 제이니의 상태를 잘 요약한 멘트라고 생각한다. 책에서는 어떻게보면 평범하고 보잘것 없어보이는 소녀가 드림캐칭을 경험하게 되면서 직면하게 되는 문제들을 현실감있게 다루고 있었다.

책을 읽기전에는 드림캐칭이라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면 주인공이 다른사람의 은밀한 사생활과 생각을 엿보며 사건을 어렵지 않게 해결해 나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도 잠시 환상적인 분위기도 뒤이어 몇 페이지를 읽으니 그냥 저주같았다. 제이니는 8살에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꿈에 빨려들어간 이후 자신의 주변에 꿈을 꾸는 사람이 있으면 그 꿈에 빨려들어간다. 자신의 의사에 상관없이 꿈에 들어가 꿈을 경험하고 빠져나온 후엔 기력이 심하게 고갈되며 신체마비같은 후유증에 시달린다. 꿈에 들어가있는 동안에는 자신의 육체를 통제할 수도 없고 심한 악몽인경우 몸이 뻣뻣해지며 발작을 일으키기도 한다. 잠을 자다가도 마찬가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문에 의해 가로막힌 자신만의 공간 뿐이다.

제이니의 몸에 감각이 사라진다. 발이 브레이크 페달에서 천천히 떨어진다.

그녀의 차가 길에서 벗어나 구르기 시작한다.

매우 느리게. - 꿈을 엿보는 소녀 59p

​어느 날 집으로 가기 위해 운전 중이던 제이니는 끔찍한 악몽에 빨려들어가게 되고 몸은 통제불능의 상태에 놓인다.

조절되지 않는 초능력은 이런식으로 계속해서 주인공을 몰아간다. 궁지에 모는 솜씨가 일품이다라고 느낄 정도로.

가까스로 큰 사고를 면한 제이니는 이후 그 꿈의 주인공이었던 케이벨을 만나게 된다. 가난하고 관심없는 부모밑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제이니. 아무도 이해해 줄 수 없는 벽에 둘러싸인 자신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를 공포에 떨게 한 악몽 속의 주인공 케이벨이었다.

그리고 꿈을 이용해 제이니에게 고백하는 케이벨. 제이니에게 항상 꿈은 두렵고 무서운 것이었지만 케이벨은 그 꿈을 매개체로 다가왔다. 비록 처음에는 악몽으로 만났을지라도 꿈을 이용해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모습이 나는 희망으로 보였다.

어쩌면 그녀는 지금 누군가의 아주 이상한 꿈속에 있는데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녀는 공황 상태다. - 꿈을 엿보는 소녀 70p

초반부에는 제이니가 가진 능력, 조건, 후유증 등 읽는 내내 모든 것이 의문투성였다. 꿈의 주인은 제이니를 보면 항상 도움을 청하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모른다.

꿈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명쾌한 해석이 불가능하며 항상 무엇인가 덧씌워져 있는 듯했다. 두려움, 비밀 등... 본능이 감춰져 있는 듯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제이니 또한 독자와 함께 불안하기는 마찬가지. 시도때도 없이 꿈에 빨려들어가는 능력 때문에 꿈과 현실의 경계를 명확히 할 수 없다. 그래서 이후 마사 스투빈 양에게서 온 편지를 봤을때 소름이 돋을 정도로 반가웠는지도 모르겠다. 이때 드림캐처라는 말이 처음 나온다.

단서가 될만한 편지를 받았지만 여전히 의문점은 존재한다. 능력이란 건 뭐고 더 많은 힘을 가졌다는 건 무슨 뜻일까? 제이니는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 찾아가며 드림캐칭 능력에 대한 컨트롤을 천천히 배워간다. 능력을 자각하고 드림캐처인 제이니의 능력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드림캐칭 능력이 당사자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힘든 상황이 겹치고 겹침에도 제이니는 생각보다 담담하다. 여지껏 겪어왔던 일들이 모두 범상치 않아서일까?

분명 친절한 글이 아님에도 뒷 내용이 궁금해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제이니와 마찬가지인 독자. 그래서 제이니의 상황에 좀 더 몰입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책을 다 읽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기분이었다. 한 권의 책이 모두 전개부분이었다면 그 뒤의 이야기는 자신의 능력을 다듬은 제이니가 또 어떤 상황을 헤쳐나갈지 더욱 더 기대된다.  

***

 

'안전하다는 건 지루하다는 말과 같아.'​

두 번째 책인 '끝나지 않는 악몽'​에서는 제이니가 고등학교에 숨어 있을지 모르는 성 범죄자를 찾기위해 능력을 사용하기로 하며 본격적인 사건에 휘말린다.

추리와 비밀잠입, ​드림캐칭을 이용해 범죄자를 검거하는 데 도움이 되고 케이벨과 괜찮은 미래를 그려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제이니의 앞에 갑자기 나타난 얇은 녹색 스프링 노트는 모든 것을 부숴버린다.

​내가 나눠야 할 정보들은 두 가지 부분으로 나뉩니다: 기쁜 부분과 두려운 부분. - 끝나지 않는 악몽 122p

 

중간중간 불안한 요소들이 많았지만 나는 능력을 자각한 제이니가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불안감이 증폭된 상태에서 등장한 스투빈 양의 녹색 스프링노트는 진짜 뒤통수를 한대 맞은듯한 기분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만은 아니길 바랐는데... 드림캐칭 능력 이면에 감춰진 대가는 제목처럼 끝나지도 않고 여전히 제이니를 몰아간다. 한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능력의 대가. 여지껏 통제할 수도 없었던 능력의 대가로 불구가 될지 모른다는데 어느누가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난리가 제 일에 영향을 끼치도록 하지는 않을 거라고 약속드려요. 서장님 밑에서 일하는 건 제 인생에서 가장 멋진 부분이에요. 제가 정말로 변화를 만들어 낸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아시죠?" - 끝나지 않는 악몽 284p

그럼에도 제이니는 강인한 면모를 보여준다.진실을 받아들이고 성장하는 제이니. 그런 그녀의 곁에는 끝까지 케이벨이 있었다.

 

 

"너도 알겠지만, 그렇게 마른 네 모습을 계속 보다가는 분명 난 미치고 말 거야. 그건 결코 좋은 일이 아니라고." - 끝나지 않는 악몽 38p

 

대가를 어렴풋이 눈치채고 그런 제이니를 잃을까 전전긍긍하기도하고 항상 제이니를 걱정해주는 케이벨. 그는 제이니의 버팀목이었다.

힘든 상황에 놓인 제이니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줄 것만 같아서 다행이었다. 무엇보다 저런 말투속에 가득 담긴 진심이라니.. 끝까지 제이니만을 바라봐서 좋았다.

아무리 재밌는 소설이라도 주인공들이 매력이 없다면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은데 덤덤한 제이니와 덤덤한 척 하지만 안달복달하는 케이벨은 충분히 매력적이라 둘이 대화하는 장면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두 권을 거치며 길었던 두 사람의 고등학교 생활이 끝났다. 2권을 읽은 후 나는 드림캐칭 능력을 이용해 경찰내부의 비밀요원으로 활동하는 제이니의 활약이 좀 더 나왔다면 더 재밌었을텐데라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었다. 에피소드가 딱 하나라니...​

저 넓은 캠퍼스(=다음권)에선 두 사람이 무슨 사건에 휘말릴까.

 

아무튼 제이니가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두 사람의 앞날이 평탄하기를...​ 

 

 

 

 

***

 
'넌 그냥 내게 헤어지자고 말하는 게 나았어......'

 

최후의 선택​

 

 

​자연스레 다음권은 캠퍼스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갑작스레 헨리 파인골드라는 남자가 등장한다. 의식불명인 채 나타난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자. 하지만 이내 제이니는 그가 자신의 아버지임을 알게된다. 그리고 알게된 진실은 다시한번 제이니를 흔들어 놓는다. 

 

다른 선택지가 있을 때도, 눈이 멀어 가는 것, 그것이 과연 가치가 있는 것인가? - 최후의 선택​ 82p

갑작스레 등장한 아버지는 제이니에게 의문만을 남긴다. 끔찍한 악몽, 또 다른 드림캐처인 아버지.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능력의 대가를 치루지 않았다.

그 일로 제이니는 혼란스러워한다. 갑자기 언제 찾아올 지도 모르는 대가때문에 마음졸이던 제이니는 또 다른 선택지 앞에서 갈등한다.

눈이 멀어가면서도 이게 옳은일인가? 두려워하고 불구가 될 것을 알면서 케이벨을 계속 잡고 있어도 될까?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하던 제이니는 마침내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두 가지의 선택 중 제이니는 뭘 선택해야 것인지 계속 갈등한다. 그러나 제이니는 또 다른 선택지의 이면에 감춰진 진실에 대해 깨닫게 된다.

키워드는 모턴의 두 갈래 논법.

'부자는 부유하기 때문에 세금을 낼 수 있음이 명백하고, 가난한 자들은 절약하며 살기 때문에 따라서 저축을 통해 또한 세금을 낼 수 있음이 명백하다' 

어떤 상황이라도 세금을 내야하는 상황. 제이니도 어떤 상황이라도 능력에 대가를 치룰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결국 두 개의 동등하게 끔찍한 결과 사이에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하는 상황(최후의 선택 245p)으로 몰리게 되고 제이니는 최후의 선택을 한다.​

"20대에 눈이 멀고 불구가 되느냐, 30대 후반에 머리가 폭발해서 죽느냐. 서장님이라면 뭘 하시겠어요? 저는, 제가 케이벨을 가졌기 때문에, 눈이 멀고 불구가 되는 쪽을 택하기로 한 것 같아요. 그가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할 거예요." - 최후의 선택​ 259p

 

케이벨이 함께 하기에 선택한 길. 죽을때까지 홀로 고립되어 살기보다 케이벨이 있는 세상 밖으로 나올 결심을 한 제이니.  

후에 자신이 어떻게 변할지 알면서도 곁에 있어준 케이벨은 ​제이니에게 희망이자 안식처가 아니었을까.

최후의 선택은 전의 두 편보다 제이니의 갈등이 위주라 사건은 복잡하지 않았지만 심리상황에 따른 속도감이 있었다. 정신없이 막 읽어내려갔지만 개인적으론 결말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물론 제이니의 선택이 최선이라는 것을 이해하지만 미래에는 잘 살아가고 있다고 믿고 싶었는데. 예정되어 있는 암담한 현실이 드리워지니 뭔가 이도저도 아닌 기분이다. 최악과 최악 사이에서의 선택. 조금 더 희망적인 삶이 기다리고 있기를 바랐지만 그건 나의 욕심이었을까. 물론 가족같은 경찰관계자분들과 사랑하는 케이벨은 제이니 곁을 지킬 것이다. 제이니의 어머니도 점점 나아질테고. 하지만 초능력 뒤에 감춰진 진실들과 주인공의 현실은 씁쓸했다.

블랙 로맨스 클럽의 웨이크 시리즈는 색다른 로맨스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읽는 동안 즐거웠다. 주인공 제이니와 케이벨의 성격이 취향에 부합하기도 했고.

​영상물을 보는 듯한 전개방식과 현재시점으로 서술되는 문장은 더욱 더 매력을 더해주었다. 아무것도 몰랐던 제이니와 헤매고 상처받아가면서 함께했던 내내 같이 성장해나가는 듯한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제이니의 책에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은 결코 오지 않더라도(최후의 선택 263p) 그것을 같이 이겨내고 위로해줄 사람이 곁에 있기에 제이니 자신은 선택에 후회가 없으리라고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크르르르 - 제3-4 ZA 문학 공모전 수상 작품집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8
김민수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좀비물이라고 하면 피가튀고 징그럽다는 편견때문에 잘 보지 않았지만, 단편들을 소개하는 멘트에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읽어보게 되었다.

좀비로 인한 세상의 종말이라는 독특한 소재로 매년 마니아들의 높은 지지를 받고 있는 'ZA(좀비 아포칼립스) 문학 공모전' 3~4회 수상 작품집 '크르르르'

('좀비 아포칼립스'는 전염병에 걸린 사람은 죽은 후 움직이는 시체가 되고, 이 시체는 다른 살아 있는 인간을 물어 전염시킨다는 개념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마치 좀비가 우는 소리를 연상시키듯한 제목을 가진 '크르르르'는 짧게 짧게 끝나는 단편모음집이지만 각각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5편의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스릴러 같은 분위기를 띄는 이야기도 있었고 좀비물의 특성에 잘 맞는 이야기도 있었다. 역시 좀비물이니만큼 좀 징그럽기도 한 묘사들이 간혹 있었지만 장르적 특성상 그정도는 감수하니 읽기엔 괜찮았던 것 같다.

 

 

엘리베이터 액션

좀비들이 들끓는 마트 안에 갇혀있던 주인공은 순찰을 돌던 중 우연히 스니커즈 간판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생쌀과 통조림으로 연명하던 주인공의 눈에는 구원과도 같았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스니커즈를 얻어 힘들게 엘리베이터를 탄 순간 전기가 완전히 끊어지게 되는데...

 

첫번째 이야기인 엘리베이터 액션은 탈출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다. 액션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어 그 상황에 대한 긴박감을 느낄 수 있었다.

극한상황에서 오는 음식에 대한 갈망 즉 스니커즈에 대한 갈망도 충분히 공감이 갔고...

하지만 인물과의 갈등관계가 잠시 나오다가 갑자기 탈출액션극으로 탈바꿈하면서 뒷 이야기가 심도있게 다뤄지지는 않는다는 점이 아쉬웠다.

단편의 한계점 중 하나겠지만 스피드있게 읽어가기엔 괜찮은 이야기였다.

 

 

장마

​어느 날 비에 섞인 이상물질로 사람들이 하나 둘 변해가기 시작한다. 서로를 잡아먹는 좀비처럼. 하지만 그 변한 사람들은 비와 물을 두려워한다. 생존자들은 그런 변한 사람들의 특성을 알고 비가 오는 날이면 우비를 걸치고 생필품을 구하러 다닌다. 그 과정에서 만난 낯선 빨간 우비. 그리고 갑자기 자신이 구해주게 된 낯선 여자까지. 그 동안 평온하게 살고있던 주인공은 새로운 인물들을 만나며 사건에 말려들게 된다.

 

책에서 제일 긴 중단편 정도의 이야기. 제일 취향이었던 이야기라 재밌게 읽었다. (어쩌면 장편을 좋아하는 특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설정도 흥미로웠다. 비와 바이러스를 접목해 '변한 사람들'을 탄생시킨 것도 그렇고 비로 인해 만들어졌음에도 비와 물을 두려워한다는 점도 독특해보였다.

 

초반부 조금씩 미심쩍은 상황을 보여주면서 이야기를 진행하는 데 감질맛이 났다. 때문에 빨리 결말결말!을 외치며 후루룩 읽어 나갔다

비, 장마, 빨간 우비, 한 쪽만 있는 귀걸이, 가방... 평온한 삶을 살고 싶었던 주인공의 바람은 한 여자가 눈 앞에 나타나자 뒤엉켜 버린다.

하나 둘 미심쩍은 상황들이 모이고 주인공을 몰아가고 그 끝에서 맞이한 진실은 남자가 끝까지 외면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미국 설정이 조금 아쉬웠지만 중단편임에도 재밌는 설정과 사람 본연의 모습을 잘 그려내며 이끌어나간다는 점 때문에 제일 기억에 남은 이야기였다.

 

 

여름좀비

좀비가 인류의 새로운 에너지원이 된 가까운 미래. 지칠줄 모르는 활동성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찾은 인류는 좀비퇴치를 중단하고 오히려 생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 값어치 높은 좀비를 사냥하는 두 사냥꾼은 우연히 변종 좀비를 발견한다. 지적 능력과 뛰어난 신체 활동력. 그들은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고 몰래 좀비를 잡으려한다.

 

첫 작품인 엘리베이터 액션처럼 이 이야기도 액션극이 주를 이루었다. 인류의 에너지원이 된 좀비와 좀비를 사냥하는 사냥꾼의 이야기라니.

그래서인지 초반부는 흥미로웠다. 좀비의 특성을 이용해 사냥하고 이용하는 인류의 모습을 보며 놀라운 적응력을 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결말은 초반부 그렇게 흥미로웠던 설정들을 다 살리지 못한 것 같아 정말 아쉬웠다. 마무리에 좀 더 신경썼다면 좋은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초반의 기대감에 비해 아쉬웠던 이야기다.

 

 

해피랜드

시어머니와 남편과 함께 대관람차에 탄 전직 체조코치 출신 며느리. 돈 많은 시어머니에게 경제적 도움을 얻기 위해 찾아왔지만 갑작스런 좀비들의 습격으로 관람차 안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오른발에서 좀비에게 긁힌 상처를 발견하고 감염여부를 놓고 옥신각신 하다 그동안 잠재된 고부 갈등이 폭발한다.

 

​책을 읽기전 제일 궁금해 했던 이야기다. 밖에는 좀비들이 돌아다니는데 고부갈등이라니.. 그럴 정신이 있을까? 하고.

하지만 극한 상황에서 주인공의 마음이 어떻게 변하가는 지 납득할 수 있게끔 서술되어 있었다. 결국 발악해봤자였지만..

중간중간 명확하진 않은 점이 있었고(마지막 쯤 나온 시어머니에게 걸려온 그 전화는 대체 뭘까.. ) 주인공이 슈퍼맨급의 능력을 가진데 반해 좀 찜찜한 결말이라 아쉬웠다.

차라리 중간에 그냥 탈출해서 다른 전개가 되어도 그건 그것 나름대로 재밌었을 것 같기도... 라고 말하면 내 욕심일까?

 

 

좀비, 눈뜨다

좀비가 되어 사람을 사냥하던 주인공은 어느 순간 갑자기 정신을 차린다. 몸이 다시 인간으로 돌아간 것. 하지만 좀비떼에서 자신만 인간이 되었다는 게 들통나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이제 해야할일은 자신의 아들을 죽인 좀비 보스에 대한 복수와 같이 좀비로 변해버린 아내를 데리고 무사히 탈출하는 것. 그리고 혼란 속에서 잃어버린 딸아이도 찾아야 한다. 때문에 그는 좀비들 틈에서 좀비의 흉내를 내며 기회를 엿본다.

 

이 이야기가 마지막인것이 다행이었다. 개인적으론 결말이 제일 마음에 드는 이야기이기도 했고, 여운이 제일 길게 남았기에..

좀비물을 많이 접해보지 않아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좀비에서 인간으로 다시 돌아온다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예상외로 가족의 정을 볼 수 있기도 했고.

앞의 이야기들이 어딘가 회의적이고 절박한데 반해 이 이야기는 나름 훈훈(?)했다고 본다.

 

 

처음에 단편집을 집어들었을 땐 내가 언제 이런 좀비물 모음집을 또 볼까? 라는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런 재기발랄한 이야기 모음집이라면 다음 수상작들에도 관심이 생길 것 같다. 액션, 탈출기, 통쾌함 그리고 인간의 내면, 절박함 사랑 희생까지. 짧은 이야기들이지만 골고루 많은 것을 담아넣은 것 같았다.

좀비가 판치는 상황. 인간이 처할 수 있는 극한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이지만 그 속의 인물들은 악착같이 살아가고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려 애쓴다.

 

각자의 세계를 구축해 이끌어나가는 이야기들은 그만큼 다양해서 보는 재미가 있었다. 비록 결말들은 조금씩 찜찜함을 남겼음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매력적인 단편모음집이라는 생각이다. 좀비물이라 괜히 겁먹었지만 '크르르르'는 생각보다 가볍고 재밌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너의 마음이 안녕하기를 - 때로는 빛나고 가끔은 쓸쓸하지만
김재연 지음, 김효정 사진 / 인디고(글담)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타블로의 꿈꾸는 라디오>, <김C의 뮤직쇼> 김재연 작가의 따뜻한 글과 밤삼킨별 김효정 작가의 감성적인 사진이 만나 오늘 하루도 힘껏 버티고 있는 우리의 매일을 위로하는 에세이'

 

손글씨 쓰는 라디오 작가 김재연. 그녀는 라디오 작가가 세상에 퍼져있는 이야기를 잘 골라내어 좋은 이야기를 다시 잘 퍼트리는 멋진 직업이라고 말한다.

책을 읽으면서 그 말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작가가 들려주는 이런 이야기들을 하나 둘 모아 나도 누군가에게 전해주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김효정 작가의 감성 가득한 사진과 김재연 작가의 글, 따뜻한 색감이 가득한 표지에서부터 느껴지는 기운. 그만큼  '너의 마음이 안녕하기를'은 따뜻한 봄과도 같은, 봄에 잘 어울리는 감성에세이였다.

 

'라디오 작가가 하는 일은 이런것.

세상에 퍼져 있는 이야기에 관심 갖기.

누군가와기억고 싶은 좋은 이야기 골라내기.

그걸 다시 세상에 잘 퍼뜨리기.' (16p)

 

 

 

 

'때로는

빛나고

가끔은

쓸쓸하지만

너의 마음이 안녕하기를'

 

책에서 내내 든 생각은 누군가에게 들려주고 싶을 만큼 포근하고 따뜻하다였다.

실제로 이 책은 <김C의 뮤직쇼> ‘생각 없는 생각’ 이라는 데일리 코너를 통해 청취자들에게 깊은 공감과 따뜻한 위로가 되어준 이야기들을 다듬고 더한 책이다.

많은 사람에게서 공감을 이끌어낸만큼 책 안에는 두고두고 읽어볼 수 있을정도의 글이 가득했다.​

​거기다 보기만해도 눈이 행복해지는 예쁜 사진들을 더해 눈길을 잡아끈다. 나도 한 사람의 내면의 생각을 가까이 들여다보면서 점차 공감하고 위로를 받았다.

추천사의 김C의 말처럼 가만히 혼자 말해보고 적어보면 좋을 글들이 가득해서 생각보다 읽는 속도는 나지 않았지만 그래도 천천히 읽는만큼 읽을 수 있는 것이 많아 좋기만 했다.

 

- 그녀는 이번 책을 통해 우리가 행복해야 할 이유들에 대해 잔잔히 묻는다.​ (이병률 시인의 추천사 中 11p)

- 그녀가 쓴 글을 소리 내 읽던 기쁨이 아직 남아있다. 좀 쑥스러워도 혼자만의 시간일 때 나지막이 소리 내 이 책을 읽어보시라 (김C의 추천사 中 13p)

 

 

 

 

책장이 하나 둘 넘어가면서 메모가 많아져 갔다. 표시해뒀다 한번쯤 다시 펼쳐보고 싶어져서,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덧붙여 이야기해주고 싶어서...

촉촉히 젖어드는 봄비처럼. 이야기가 점점 내게 스며들어갔다.

 

 

 

죽기 전날 알렉스는

앵무새 특유의 목소리로 혀를 굴리며

박사에게 마지막으로 세 마디 말을 남겼다.

"잘 지내."

"다음에 또 봐."

"사랑해."  (41p)

 

읽으면서 제일 슬펐던 알렉스 에피소드. 앵무새보다 많은 단어를 알고있음에도 표현하는 말이 적었기에 더 먹먹하게 봤다.

짧은 글 속의 긴 여운이랄까...

작은 표현이라도 많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법인데 그걸 점점 잊어가고 있는 것 같다.

 

내재된 감성을 툭툭 건드려 일깨우고 토닥거려준 이야기들. 사실 이야기자체는 이렇게 특별한 것이 없다.

보통의 사람. 보통의 일.

하지만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하고 주변에서 일어날법하다고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글. 오히려 그런 글이기에 더욱더 공감할 수 있었다.

 

 

 

시를 쓰는 사람들은 참 이상한 취미가 있다.

지금은 봄도 아니고

또 가을도 아닌데

문장 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참 뒤숭숭하게 만든다.

 

그나저나 어떤 바람이 됐을까.

방금 나를 지나간 바람은. (72p)

 

나무에 바람이 불면 녹색바람, 꽃에 바람이 불면 꽃바람이라고 말하는 시.

나도 덩달아 뒤숭숭하게 만들어놓았지만 작가는 담담한 듯 위와같이 서술한다. 이런 문체에서 즐거움과 아련함을 동시에 느낀다면 아이러니할까..

위로와 공감 그리고 그냥 넘겨버릴 문장이 아니라 한번 생각할 수 있게 유도하는 글. 그래서 읽는 내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 밖에도 신경을 많이 쓴 듯한 편집이 정성스러운 이 글에 더욱 잘 어울려서 기억에 남았다.

아래의 사진처럼 이렇게 소제목들의 세심한 배치가 눈에 띌때마다 조용히 미소를 머금고 볼 수 있었다. 마치 조용한 배려같아 보여서...

 

 

 

 

 

제목부터 마음이 안녕하기를 바란다라고 했던 책. 그래서일까. 이야기의 끝에서 작가는 같은말을 한다.

 

 

 

곰이 푹신한 나뭇잎을 모아다 겨울잠 준비를 하는 것처럼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아다 겨울 양식을 미리 땅에 묻는 것처럼

그렇게 우리 역시

부지런히 겨울 맞을 채비를 한다.

 

따뜻해질 준비를 한다. (278p)

 

작지만 일상을 견디게 하는 힘. 따뜻한 시선, 서로의 공감. 작가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너의 마음이 안녕하기를'은 따뜻하고 섬세한 감성을 마음껏 즐길 수 있었던 글이었다.

천천히 책장을 넘겨야하는 이야기였음에도 어느새 아쉽게 마지막 장을 넘기고 있었다.

마치 어느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듯 조곤조곤하게 속삭이는 듯한 글은 마음 한켠을 따뜻하게 만들어 위로와 힘이 되어준다.

 

따뜻한 봄날 마음이 더 따뜻해지길 바란다면 조용히 이 책을 집어들어 읽어볼 것을 권유해본다.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는 따뜻한 마음이 바로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버틸 수 있는 위로와 힘이 되어주기를 나도 작가와 함께 바라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고래뼈 요람
김유정 지음 / 황금가지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 1회 황금드래곤 문학상 수상 작가 김유정의 신작 소설선 '고래뼈 요람'​은 단편인 '진저와 시나몬', 중편인 '고래뼈 요람'의 두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감성 판타지라는 이름에 걸맞게 내재된 감성을 툭툭 건드리는 듯 했던 두 이야기는 천천히 읽어봐야 그 참맛을 느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 단편 '진저와 시나몬'

 

 -  “이름이 없거나 익명이거나 예명인 자들은 그렇게 떠돌 것이다.”

가짜 이름으로 살아가는 두 남녀의 달고도 씁쓸한 감성 단편 「진저와 시나몬」

 

생강계피(ginger cinnamon) 차를 떠올리게 하는 단편 '진저와 시나몬'은 질문자의 질문 하나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최근에 누군가와 감정적인 교류를 가져본 적이 있느냐'

 

그리고 이어지는 케이트의 이야기.

진저색 붉은 머리의 경찰인 케이트는 24시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 시나몬을 만난다. 시나몬은 겉으로는 통통 튀고 발랄한 성격으로 케이트와는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얼핏 어울리지 않는 요상한 조합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나 두 사람은 '진저와 시나몬'이라는 팀명을 이루며 제법 잘 어울려 지낸다.

 

하지만 둘 다 진명은 가르쳐주지 않는다. 별명같은 케이트로 불리길 원하는 남자, 그리고 극의 역할같은 시나몬이라고 불리길 원하는 여자 단지 그것 뿐이다.

소설에서는 어느 것 하나 확실하게 정체를 드러낼 법한 단어가 없었다. 심지어 케이트가 여자친구를 지칭하는 말도 '그녀'였다.

케이트와 시나몬은 제법 친해졌으면서도 여전히 타인의 이름을 가진 관계일 뿐이다. 낯선 타인. 그래서 더욱 자신의 마음을 적당히 비춰볼 수 있는 그런 관계.

소설의 중반쯤부터 시나몬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레즈비언이라는 자아정체성을 드러내고 무언가에 쫓겨가는 듯 하면서...

하지만 그녀의 짐은 오로지 그녀 자신만의 것이었다. 케이트는 철저히 타인이므로 그녀의 주위를 배회할 수밖에 없었다. 케이트에게 이미 시나몬은 하나의 의미가 되어버렸지만 시나몬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 관계 맺어진 것은 진명이 아닌 가명이기에 두 사람은 철저히 혼자일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두 사람의 관계는 점점 균열을 드러낸다. 처음엔 아무 의미없었던 조그만 틈이 갈수록 벌어져 케이트와 시나몬의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깊은 벼랑이 있는 것 같았다. 시나몬에게는 아무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시나몬은 케이트를 밀어낸다. 케이트는 그녀를 거쳐간 수 많은 타인 중 하나일 뿐이었다.​

 

시나몬에게 케이트라는 사람의 의미는 그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해방될 구실에 불과했다. 그게 누구든 상관없었던 것이다. 가늘게 이어갈 관계가 필요했을 뿐.

 

달고 씁쓸한 시나몬처럼 이야기의 분위기도 그러했다.

 

그녀는 그의 머릿속 지하실에 보존되었고 그를 살게 했다. 케이트의 시나몬으로 존재했다. 이름이 없거나 익명이거나 예명인 자들은 그렇게 떠돌 것이다.

 

이름이 없다는 것. 그 사람에 대해 모른다는 것은 자신의 기준과 생각에 맞춰 그 사람을 생각한다는 의미다.

케이트는 자신만의 시나몬을 끝까지 기다리고 있다. 정작 진짜 그녀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시나몬이라는 여자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기억은 그렇게나 불확실하다.

 

마지막에 케이트의 독백은 그것을 인정한다. 자신만의 시나몬은 자신의 머릿속에만 존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처음엔 이름으로 엮이면 그 사람과 엮이는 것이 된다 뭐 이런이야기인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훨씬 더 심오한 이야기가 담겨있었다.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관계의 불확실성.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은 뭐하나 속시원히 그게 진정한 정체라고 말할 수 없었다. 익명 그리고 가명에 의존해 서로에게 선을 긋고 있어서 철저히 타인처럼 관계하며 살아간다. 케이트와 시나몬은 결국 서로에게 타인인 것이었다.

 

 

 

* 중편 '고래뼈 요람'

 

- “우리 마을의 하늘에는 뼈만 남은 거대한 고래가 살고 있다.”

어느 날 문득 하늘에서 떨어진 한 소녀의 정체는?

죽음의 세계를 뛰어넘는 삶에 대한 집요한 믿음을 간직한 작품 「고래뼈 요람」

하늘에 커다란 고래뼈가 떠있다.

꿈의 세계. 뼈만 남은 거대한 고래 엔이 떠다니는 이상한 마을. 얼핏보면 평화로워 보이는 마을.

 

어느 날 그 평화롭던 마을에 사소한 규칙 하나가 깨졌다. 여관에 이름표도 내용물도 없는 트렁크 하나가 도착한 것.

미스테리하면서 알쏭달쏭한 분위기. 초반 이런 내용들때문에 읽기가 힘들었다. 대체 이 분위기는 뭐고 이 마을의 정체는 무엇인가 고래뼈의 정체는 뭘까? 수많은 의문들이 뒤따랐지만 무엇하나 확실한 것이 없었다. 의미심장한 문장들도 그렇고... 

그리고 뒤이어 등장한 하늘에서 떨어진 소녀. 빈 트렁크의 주인인 듯 엔(=고래뼈의 이름)의 근처 하늘에서 사람이 떨어진 기묘한 소녀는 마치 공기인 것처럼 아무런 무게가 느껴지지 않기도 하고 옷이 물에 젖지도 않는다. 이 소녀의 등장으로 크리스티안의 숨통이 막힐 정도로 평온하던 일상이 흔들린다. 하늘에서 떨어진 크리스티아네는 크리스티안과 이름마저 비슷하고 백발을 가진 외모마저 흡사하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크리스티아네는 밤중에 가만히 멈춰있는 사람들을 보고 이곳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다. 

 

 

낮의 시간은 끝났다. 이제 달빛과 별빛만이 검은 주단 같은 밤하늘 위에 희끄무레하게 깜박이고 있었다.

(중략)

당신들은 죽은 이들이었구나.

그리고 아마 나도.

 

크리스티아네가 자신이 머무는 곳이 죽은자의 마을이라는 것을 깨닫고 며칠 후 트렁크가 돌아왔다.

하지만 크리스티아네는 아직 죽지 않은 그저 길을 잃고 마을에 떨어진 상태로 이방인처럼 마을에서 떠도는 존재다.

 

"네가 누군지 알 것 같아."

 

크리스티아네는 크리스티안과 평온한 일상을 보내지만 점차 얽혀있는 인연의 끈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크리스티안과 크리스티아네의 관계도...

이어진 감정. 서로에게 닿지 않았던 감정. 고래뼈가 떠있는 곳에서 둘은 비로소 서로를 마주한다.

그동안은 마치 고래뼈가 나를 짓누르는 것처럼 너무 갑갑했다. 때문에 서서히 관계가 밝혀지고 일의 인과가 드러나면서부터는 이야기가 흥미를 더해갔다.

하지만 이야기가 후반을 향해갈 수록 세계의 균열도 같이 찾아온다.

 

엔이 잠들어 있는 동안 그 짧은동안만을 빌려 존재하는 마을.

 

금방이라도 깨어질 듯 불안한 평화. 마치 빙판위를 걷듯 크리스티아네는 걸어갔다. 사연있는 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린 상실감에 자신의 의미이자 기도였던 크리스티안을 찾아온 크리스티아네.

 

빈 트렁크에서 나온 기차표는 세계의 종말을 고했다.

그동안 해묵었던 갈등이 서서히 풀리고 서로의 마음을 알아가지만 고래뼈가 있는 이 세계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넘어가야 해. 넌 살아 있고 난 이제 죽었어. 너는 나의 꿈이고 기도지만, 나는 너의 병이고 어둠이야. 나는 너의 주변을 보이지 않게 도는 달이고 너는 나 없이도 스스로 회전하는 세상이야. 그러니 넌 우리처럼 되면 안 돼. 서로 소중한 존재였는데도 헤어지고, 발버둥쳐도 불행에 사로잡힌 우리처럼 되면 절대로......"

 

그리고 이별의 순간 크리스티안이 간신히 건넨 고백의 한마디. '...... 나는 네가 와 주어 기뻤다.'

30년을 건너뛰어 전해진 연애편지가 아련한 분위기를 더했다. 마침내 크리스티아네가 기차를 타고 떠나자 마을은 무너져내린다.

 

 

'고래뼈 요람'의 두 소설은 관계가 키워드였던 듯하다.

가명으로 맺어진 관계, 비슷한 이름을 따서 지은 두 사람의 관계...

상큼발랄하게 끝나지 않았던 감성판타지이지만 긴 여운을 느낄 수 있었다. 두 이야기 모두 상통하는 바가 있어 읽으면서 이야기가 굉장히 잘 어울렸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천천히 읽어보면 여운이 길게 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작품이다. 조용하고 잔잔하지만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깊은 물처럼... 이 소설도 그런 잔잔한 분위기를 한껏 맛보게 해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쌀례 이야기 1 - 개정증보판
지수현 지음 / 테라스북(Terrace Book) / 201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그 여자, 쌀례의 이야기!​

1943년 싸릿골 봉 초시 댁 열네 살 쌀례는 꽃가마 대신 기차를 타고 경성으로 시집을 간다. 암울한 시대적 배경. 살기위해 선택했던 길 혼례.

​흉흉한 소문에 급하게 팔려가듯 혼인길에 오른 쌀례(성례)는 기차를 타고 가다 봉변을 당하지만 어느 학생의 도움으로 무사히 상황을 넘긴다.

그렇게 만신창이로 도착한 시댁. 그 곳에서 쌀례는 열넷의 나이이지만 열​두살같다며 집에서 키우는 바둑이마냥 어린아이 취급을 당하고 얼굴도 모르는 남편이라는 작자는 보이지도 않는다. 오밤중에 처음으로 맞이한 서방님​은 그녀더러 자꾸 고향 집으로 다시 돌아가라 한다. 돌아갈 곳이 없다 사정하여 결국 혼례는 올리게 되었지만 여전히 둘의 사이는 데면데면하다.

선재에게 들이밀어진 쌀례는 친일파 아버지 밑에서 조선어 야학을 운영하며 반항한 벌이었다. 6살 어린 아내. 여자가 되려면 10년은 족히 남은 것 같은 아이.

하지만 금주와 함께 있던 것을 본 쌀례가 상처받은 듯 뛰쳐나간 이후 선재는 그 쌀알같은 계집애가 조금씩 신경쓰이기 시작한다.​

 

 

 

'쌀례 이야기'는 현재 개정 증보판이 나온 상태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개정증보판에는 몇 몇 에피소드가 추가된다고 한다. 드라마 제작이 확정되어 새롭게 개정판이 나온 것 같은데 추가되었다는 에피소드가 궁금하다. 왼쪽이 구판 오른쪽이 개정 증보판의 표지로 일러스트는 지수현 작가님이 직접 그리셨다고 한다.
동글동글한 눈동자가 어린아이의 천진함을 가지고 있는 쌀례와 굉장히 잘 맞는 이미지였다. 작품 분위기는 쌀례처럼 마냥 순수하고 밝지는 않았지만...

아무도 편들어주지 않는 곳 시댁에서도 개에게 정을 붙이며 살아갔고 힘든 일이 있으면 아궁이 앞에 앉아 한 솥 가득 밥을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던 쌀례.
쌀례는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히 버티며 살아간다.​ 금주와의 일 이후 선재는 어린 아내에게 '어른이 될 때까지'라는 조건을 붙여 협상을 제안하고 ​말로는 서방님을 따르겠다고 하지만 한 마디도 지지 않던 쌀례를 설득해 글을 가르쳐준다. ​

꽉 막힌 집에서 살던 쌀례는 여자도 배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이제껏 한번도 생각치 못한 일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선재는 쌀례의 대답에 간단하게 답해준다.
 
"왜 이렇게까지 제게 글을 가르치시려는 거지요? 어제까지도 이런 말씀 없으셨잖아요?"
(중략)
"재미있을 것 같아서."​    (1권 119-120p)​
아마 이때부터 선재는 어린 아내에게 점점 마음이 기울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이 일을 계기로 쌀례가 멋진여성으로 탈바꿈 할 것이라는 걸 예측할 수 있었다.​ 배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적극적이고 강한 여성으로 그 시대의 당당했던 여성상으로 그려질 것 같았다.
 
그렇게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두 사람은 진정한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쌀례 씨. 아니, 성례 씨."
"예? 예."
"나하고, 혼인해 주시겠습니까?"
혼인한 지 7년 만에 남자는 묻고 있었다. (1권 280p)
 
하지만 그렇게 단란했던 것도 한 때의 일일 뿐, 한국전쟁으로 쌀례는 선재와 헤어지게 된다.​
일제시대, 한국전쟁​ 그리고 전쟁이후의 시기까지. 이 책에서 취하고 있는 시대적 배경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쌀례는 그 중심에 서 있었다.
​그 파란만장한 삶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쌀례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그 시대 사람들의 고난을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의 막바지, 6.25 피난길 그리고 노아의 방주. 돈과 권력으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조종하는 사람들...
그 혼란한 시기. 쌀례는 그래도 꿋꿋하고 당당하게 살아남았다.

 
그건 하소연이 아니라 쌀례에게 자랑이고 무용담이며 혹은 경고였다. (1권 513p)
살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미용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쌀례. 그 시절 사치를 조장한다는 뒷말을 들으면서도 쌀례는 열심히 살아갔다.
다시만난 찬경에게 이겨냈다고 담담하게 말하며...
 
그런데 1권 후반부부터 짠내나기 시작하는 남조 윤찬경은 '쌀례 이야기'의 아련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단단히 한 몫을 했다.
아씨마님인 쌀례를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되지만 그의 출생부터 비뚤어진 상황은 찬경을 계속 몰아붙인다.
거렁뱅이로 살다 쌀례의 서방님을 대신해 사지에 갔다오고 그 빚을 받기위해 찾아간 곳에선 다시 거부당한다. 그 후 입대하여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도 살아돌아와 서방님을 잃은 쌀례를 보살피려 하지만 강력한 거부에 찬경은 밀려나기만 한다. 거침없고 저

 

돌적인 성격이지만 쌀례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던 그런 찬경의 모습은 아련하게만 보였다.
 

 
쌀례가 마음을 받아주는 것 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찬경이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했던 나에겐 소설을 읽는 내내 계속 찬경이 생각났다.
중반부부터 증발해버려 비중이 확 줄어든 선재의 탓도 있겠지만 나는 선재보다 찬경이 더욱 매력적인 인물로 보였다.

소설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무슨 고생을 얼마나 더 하려고 아직 1권이지?라는 생각. 그만큼 치열한 삶의 기록을 엿보는 느낌이 들었다.


 
휴전 이후 쌀례는 혼자 아이와 살기위해 여자를 포기했다. 괜찮은 여자 같은건 필요없다고..
그 때의 세상에는 여자라는 사실이 저주같을 때였다. 남자들이 많이 죽고 살아남은 남자들은 살아남은 여자들을 약간의 돈, 혹은 쌀만 있으면 얼마든지, 누구든지 품에 안을 수 있다고 하는 세상이었다. 남편 없는 젊은 여자, 애 딸린 과부는 가책 없이 희롱할 수 있는 존재였다. (1권 520p)

쌀례가 힘겹게 이끌어가는 이야기는 ​2권 초반부부터 주춤거리기 시작한다. 쌀례가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것.
때문에 물러터진 것처럼 갑갑한 면도 보인다. 찬경과 함께 지내면서 꽤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그렇고... 다시 검사가 되어 복귀한 선재를 보면서도 누군지 못알아보지만 어쩐지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후반부 쯤엔 기억을 되찾지만 쌀례가 기억을 잃은 후부터는 이야기가 좀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찬경과의 이야기가 계속 나와서 오히려 찬경을 더 안쓰럽게 만들기도 했고...

기억을 되찾고 다시 마주하게 된 쌀례가 두 남자를 보며 한 첫 마디
 
"...... 식사들은 하셨어요?" (2권 364p)
지독히 쌀례다웠다. 평생 쌀알 모자라는 법 없이 풍요롭게 살라는 뜻을 담아 붙여진 아명이었지만 그만큼 그녀와 어울리는 이름이 없었다.
​쌀례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윤기흐르는 쌀밥이 생각났다. 어려웠던 시기. 그 때 따뜻한 밥 한 그릇은 굶주린 영혼의 위로였고 살아갈 힘의 원천이었다.

아씨마님. 쌀례 밥순이 성례. 한 여자를 일컫었던 모든 단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조왕신의 부엌에 정안수를 떠놓고 기도하고 밥을 하면서 힘을 얻었던 쌀례는 어쩌면 그 시절 가장 강한 여성이 아니었을까?

2권에서 쌀례의 기억상실 부분이 아쉬웠지만 가슴먹먹한 여운이 남았던 책이었다.

경이 오라버니 찬경도 그렇고 쌀례도 선재도 하나같이 먹먹한 감정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섣불리 동정심을 느낄 수는 없었다.
안됐다고 말하기에는 열심히 살았던 그들에게 실례가 될 것이기에...

그리고 작가후기​에 나왔던 한 문장

'그 어두운 시절이 누군가에겐 빛나는 청춘의 한 자락이었겠구나'

쌀례이야기에 딱 맞는 정의같았다. 힘든시절이 누군가에게는 빛나는 청춘이었던 것 처럼. 그 시절 쌀례의 이야기는 마냥 암담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