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례 이야기 1 - 개정증보판
지수현 지음 / 테라스북(Terrace Book) / 2015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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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그 여자, 쌀례의 이야기!​

1943년 싸릿골 봉 초시 댁 열네 살 쌀례는 꽃가마 대신 기차를 타고 경성으로 시집을 간다. 암울한 시대적 배경. 살기위해 선택했던 길 혼례.

​흉흉한 소문에 급하게 팔려가듯 혼인길에 오른 쌀례(성례)는 기차를 타고 가다 봉변을 당하지만 어느 학생의 도움으로 무사히 상황을 넘긴다.

그렇게 만신창이로 도착한 시댁. 그 곳에서 쌀례는 열넷의 나이이지만 열​두살같다며 집에서 키우는 바둑이마냥 어린아이 취급을 당하고 얼굴도 모르는 남편이라는 작자는 보이지도 않는다. 오밤중에 처음으로 맞이한 서방님​은 그녀더러 자꾸 고향 집으로 다시 돌아가라 한다. 돌아갈 곳이 없다 사정하여 결국 혼례는 올리게 되었지만 여전히 둘의 사이는 데면데면하다.

선재에게 들이밀어진 쌀례는 친일파 아버지 밑에서 조선어 야학을 운영하며 반항한 벌이었다. 6살 어린 아내. 여자가 되려면 10년은 족히 남은 것 같은 아이.

하지만 금주와 함께 있던 것을 본 쌀례가 상처받은 듯 뛰쳐나간 이후 선재는 그 쌀알같은 계집애가 조금씩 신경쓰이기 시작한다.​

 

 

 

'쌀례 이야기'는 현재 개정 증보판이 나온 상태다. 이번에 새로 출간된 개정증보판에는 몇 몇 에피소드가 추가된다고 한다. 드라마 제작이 확정되어 새롭게 개정판이 나온 것 같은데 추가되었다는 에피소드가 궁금하다. 왼쪽이 구판 오른쪽이 개정 증보판의 표지로 일러스트는 지수현 작가님이 직접 그리셨다고 한다.
동글동글한 눈동자가 어린아이의 천진함을 가지고 있는 쌀례와 굉장히 잘 맞는 이미지였다. 작품 분위기는 쌀례처럼 마냥 순수하고 밝지는 않았지만...

아무도 편들어주지 않는 곳 시댁에서도 개에게 정을 붙이며 살아갔고 힘든 일이 있으면 아궁이 앞에 앉아 한 솥 가득 밥을 하며 스스로를 위로했던 쌀례.
쌀례는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히 버티며 살아간다.​ 금주와의 일 이후 선재는 어린 아내에게 '어른이 될 때까지'라는 조건을 붙여 협상을 제안하고 ​말로는 서방님을 따르겠다고 하지만 한 마디도 지지 않던 쌀례를 설득해 글을 가르쳐준다. ​

꽉 막힌 집에서 살던 쌀례는 여자도 배울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이제껏 한번도 생각치 못한 일에 의문을 제기한다. 이에 선재는 쌀례의 대답에 간단하게 답해준다.
 
"왜 이렇게까지 제게 글을 가르치시려는 거지요? 어제까지도 이런 말씀 없으셨잖아요?"
(중략)
"재미있을 것 같아서."​    (1권 119-120p)​
아마 이때부터 선재는 어린 아내에게 점점 마음이 기울기 시작하지 않았을까?
이 일을 계기로 쌀례가 멋진여성으로 탈바꿈 할 것이라는 걸 예측할 수 있었다.​ 배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적극적이고 강한 여성으로 그 시대의 당당했던 여성상으로 그려질 것 같았다.
 
그렇게 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두 사람은 진정한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쌀례 씨. 아니, 성례 씨."
"예? 예."
"나하고, 혼인해 주시겠습니까?"
혼인한 지 7년 만에 남자는 묻고 있었다. (1권 280p)
 
하지만 그렇게 단란했던 것도 한 때의 일일 뿐, 한국전쟁으로 쌀례는 선재와 헤어지게 된다.​
일제시대, 한국전쟁​ 그리고 전쟁이후의 시기까지. 이 책에서 취하고 있는 시대적 배경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쌀례는 그 중심에 서 있었다.
​그 파란만장한 삶을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쌀례 이야기를 통해 그 시대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며 그 시대 사람들의 고난을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었다.
일제 강점기의 막바지, 6.25 피난길 그리고 노아의 방주. 돈과 권력으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조종하는 사람들...
그 혼란한 시기. 쌀례는 그래도 꿋꿋하고 당당하게 살아남았다.

 
그건 하소연이 아니라 쌀례에게 자랑이고 무용담이며 혹은 경고였다. (1권 513p)
살기 위해 살아가기 위해 미용사라는 직업을 선택한 쌀례. 그 시절 사치를 조장한다는 뒷말을 들으면서도 쌀례는 열심히 살아갔다.
다시만난 찬경에게 이겨냈다고 담담하게 말하며...
 
그런데 1권 후반부부터 짠내나기 시작하는 남조 윤찬경은 '쌀례 이야기'의 아련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단단히 한 몫을 했다.
아씨마님인 쌀례를 통해 세상과 소통할 수 있게 되지만 그의 출생부터 비뚤어진 상황은 찬경을 계속 몰아붙인다.
거렁뱅이로 살다 쌀례의 서방님을 대신해 사지에 갔다오고 그 빚을 받기위해 찾아간 곳에선 다시 거부당한다. 그 후 입대하여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도 살아돌아와 서방님을 잃은 쌀례를 보살피려 하지만 강력한 거부에 찬경은 밀려나기만 한다. 거침없고 저

 

돌적인 성격이지만 쌀례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던 그런 찬경의 모습은 아련하게만 보였다.
 

 
쌀례가 마음을 받아주는 것 까지는 바라지 않았지만 찬경이 조금 더 행복해졌으면 했던 나에겐 소설을 읽는 내내 계속 찬경이 생각났다.
중반부부터 증발해버려 비중이 확 줄어든 선재의 탓도 있겠지만 나는 선재보다 찬경이 더욱 매력적인 인물로 보였다.

소설을 읽으면서 중간중간 이런 생각이 계속 들었다. 
무슨 고생을 얼마나 더 하려고 아직 1권이지?라는 생각. 그만큼 치열한 삶의 기록을 엿보는 느낌이 들었다.


 
휴전 이후 쌀례는 혼자 아이와 살기위해 여자를 포기했다. 괜찮은 여자 같은건 필요없다고..
그 때의 세상에는 여자라는 사실이 저주같을 때였다. 남자들이 많이 죽고 살아남은 남자들은 살아남은 여자들을 약간의 돈, 혹은 쌀만 있으면 얼마든지, 누구든지 품에 안을 수 있다고 하는 세상이었다. 남편 없는 젊은 여자, 애 딸린 과부는 가책 없이 희롱할 수 있는 존재였다. (1권 520p)

쌀례가 힘겹게 이끌어가는 이야기는 ​2권 초반부부터 주춤거리기 시작한다. 쌀례가 사고로 기억을 잃어버린 것.
때문에 물러터진 것처럼 갑갑한 면도 보인다. 찬경과 함께 지내면서 꽤 괜찮은 남자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그렇고... 다시 검사가 되어 복귀한 선재를 보면서도 누군지 못알아보지만 어쩐지 익숙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그렇고...
후반부 쯤엔 기억을 되찾지만 쌀례가 기억을 잃은 후부터는 이야기가 좀 늘어지는 느낌이었다. 찬경과의 이야기가 계속 나와서 오히려 찬경을 더 안쓰럽게 만들기도 했고...

기억을 되찾고 다시 마주하게 된 쌀례가 두 남자를 보며 한 첫 마디
 
"...... 식사들은 하셨어요?" (2권 364p)
지독히 쌀례다웠다. 평생 쌀알 모자라는 법 없이 풍요롭게 살라는 뜻을 담아 붙여진 아명이었지만 그만큼 그녀와 어울리는 이름이 없었다.
​쌀례의 이야기를 읽는 내내 윤기흐르는 쌀밥이 생각났다. 어려웠던 시기. 그 때 따뜻한 밥 한 그릇은 굶주린 영혼의 위로였고 살아갈 힘의 원천이었다.

아씨마님. 쌀례 밥순이 성례. 한 여자를 일컫었던 모든 단어.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조왕신의 부엌에 정안수를 떠놓고 기도하고 밥을 하면서 힘을 얻었던 쌀례는 어쩌면 그 시절 가장 강한 여성이 아니었을까?

2권에서 쌀례의 기억상실 부분이 아쉬웠지만 가슴먹먹한 여운이 남았던 책이었다.

경이 오라버니 찬경도 그렇고 쌀례도 선재도 하나같이 먹먹한 감정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런 그들에게 섣불리 동정심을 느낄 수는 없었다.
안됐다고 말하기에는 열심히 살았던 그들에게 실례가 될 것이기에...

그리고 작가후기​에 나왔던 한 문장

'그 어두운 시절이 누군가에겐 빛나는 청춘의 한 자락이었겠구나'

쌀례이야기에 딱 맞는 정의같았다. 힘든시절이 누군가에게는 빛나는 청춘이었던 것 처럼. 그 시절 쌀례의 이야기는 마냥 암담한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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