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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미너리스 1
엘리너 캐턴 지음, 김지원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2월
평점 :
2013년 맨부커상 수상작. 별빛처럼 찬란하게 펼쳐지는 치밀하고 세련된 역사 미스터리라는 '루미너리스'.
이 소설은 1860년대 뉴질랜드 골드러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처음으로 등장하는 인물인 무디는 그런 뉴질랜드에서 한몫 잡겠다는 생각으로 오게되고, 그날 저녁 우연히 들어간 금광 마을의 허름한 호텔 흡연실에서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휩쓸린다. 그리고 그 자리에 있던 12명의 남자들과 작은 접점을 발견한 뒤 12명의 남자들이 비밀모임을 시작하게 된 사정을 듣게 되는데...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생각치도 못한 곳에서 서로에게 조금씩 영향을 주며 얽혀있었다.
점성술에서 가장 밝게 빛나는 해와 달을 의미한다는 단어 루미너리스는 그 제목의 분위기에 맞게 많은 별과 행성의 움직임을 토대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그렇다고 점성술에 관해 알아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냥 등장 인물 중 어떤 사람이 무슨 별인지 알아두면 소제목을 보고 어떤 인물에 관련된 내용이겠구나하는 유추를 할 수 있을 뿐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해변에서 사금을 줍고 살아가는 곳에서 일어난 한 사건으로부터 시작되는 '루미너리스'는 많은 등장인물이 그 사건의 전후로 모두 얽혀있었다. 외딴 오두막에서 살해된 부랑자와 그 집에서 발견된 어마어마한 양의 금에 대해 해운업자, 중개상, 약제사, 은행원 등등의 사람들은 무디에게 자신들이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많은 인물들을 하나로 묶고있는 것은 골드러시 시대가 배경인만큼 '금'이지만 인물들은 의외의 곳에서 또 의외의 인연으로 얽혀있기도 했다. 때문에 읽으면서 인물들의 단편적인 면이 조금씩 나와 뒷 내용을 짐작하면, 이후에 또 다른 사실이 나와 뒤통수를 맞을 때가 많았다. 그만큼 이야기는 한 뭉치로 복잡하게 엉켜있는 실타래를 조금씩 풀어가듯 느리고 아주 세심하게 진행된다. 하나의 이야기를 진행하다가 그 이야기가 조금 풀리면 또 다른 면의 이야기가 튀어나오고 다시 꼬이고 또 조금 풀어주고 이런 식의 반복이었다고나 할까.. 게다가 이야기 순서가 뒤죽박죽이라 더했던 것 같다. 그래서 솔직히 1권은 너무 힘들었고 1권의 분량이 모두 전개부분이라서 지치기도 했다. 하지만 1권의 반을 넘어가니까 훨씬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전까지는 너무 장황하고 손에 안잡히는 사건들이 나열되어 있어서 읽는 속도가 나지 않았다. 과연 금은 어디서 난 것일까? 이 금이 어떤 사람들까지 얽고 있는 것일까? 계속 의문이 생기는데 이야기는 계속 꼬여만 갔으니까.
그 밖에 12명을 12궁에 대입한 점이나 또 다른 인물들을 행성에 대입한 점, 사라진 금의 행방, 서로가 말하는 금의 출처 등등 초반부부터 휘몰아치는 많은 정보들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메모지를 꺼내들었다. 읽는 속도가 배로 느려지지만 도저히 메모없이는 읽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가뜩이나 이름장애까지 있는 나에겐 인물들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으니까.. (12궁 그리고 행성만 합쳐도 숫자가 15가 넘는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면 12명의 인물이 각각 자신들의 이야기를 진행하고 서로 얽혀가며 각각의 사건들의 빈칸을 맞춰가는데, 조금씩 적어나가다보니 확실히 느껴졌다. 이런 짜임을 생각한 점은 정말 대단하다고. 다만 정확한 이해를 하려면 독자는 고생할 소설이었다. 소제목이나 밑에 짧은 문구들 때문에 길을 잃지는 않았지만 그 소제목이 '궁수자리의 수성' 이런 식이라 궁수자리가 누구를 의미하고 수성은 또 누구인지 알아야 어떤 인물의 이야기겠구나 추측할 수 있는 식이었다. (그 두 별간의 상관관계는 점성술을 전혀 몰라서 모르겠다.) 소제목 아래 마치 예언하듯 적힌 짧은 문구들도 있어서 덕분에 책의 분위기가 복잡하면서도 신비스러워졌던 것 같다.
두툼한 두께를 자랑하는 두 권짜리 소설인 루미너리스는 간만에 완독을 하고 시원한 해방감을 느꼈던 책이다. 이 책은 끝까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며 결말을 향해 달려갔기에 끝까지 섣부르게 결말을 예상할 수 없었다. 그 짜임새는 감탄할만하나 별자리가 돌고도는 것 처럼 이야기도 돌고돈다는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중재자이자 해결사 역할이었던 처음의 화자 무디는 결국 12개의 서로 다른 진실을 밝혀낸다. 책 속에서 보았던 황금을 둘러싸고 벌이는 치밀한 눈치전, 욕심, 배신 등등 물질에 휘둘리는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금=욕망을 마주하고 미묘하게 변해서 서로 자신의 욕심을 위해 이익을 숨기고, 다른 사람을 의심하며 때로는 협상하기도 했던 사람들의 모습들은 그만큼 현실감 있게 그려지고 있었다. 많은 인물들이 각각 이야기를 해나가는 방식이라 전개방식이스피드하지는 않지만 아마 천천히 진행되는 역사적 측면이 강한 소설을 좋아하는 분은 잘 맞을지도 모르겠다. 분량 외에도 묘사된 이야기가 방대하고도 세심한 소설이니 호기심이 생기시는 분이라면 천천히 읽어보는 편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