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키어 수강일지
우마루내 지음 / 나무옆의자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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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접속' 처럼 온라인 채팅으로 급만남이 이뤄지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아주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고 위험성이 커졌지만 그때는 워낙 많은 이들이 그런 식의 '건전한(?)' 만남에 동조하여 크게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 핸드폰이 귀하던 시절이라 지역이 같고 말이 통한다 하여 옷과 생김새만으로 약속장소에 나가 보면 그리던 모습과는 전혀 생각지 않은 외모에 실망하여 서로 알면서도 모르는척 지나치는 일도 허다했으리라.

 

15세의 소녀 주인공 '나'는 인터넷 채팅방 '존나 카와이', 존카의 멤버이다. 지역과 나이대가 한정되어 있는 관심사가 비슷한 이들끼리 채팅이 이루어지곤 했고 인기인과 왕따를 당하는 이가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그 중에서도 썰렁한 유머 게시글로 꾸준하게 자기 할일을 하는 '한스 요아힘 마르세유'는 시간이 많은 건지 자주 보였고 부장님 개그를 생활화하는걸 볼때 40대 이상으로 추정되었다.

 

'나'는 반 친구들과 도시락 반찬먹기 눈치게임을 하고 남중 애와의 서투른 뽀뽀로 당황스러워하며 자신이 낚시 가게 아저씨의 엉덩이에 관심이 생긴 것을 털어놓을 누군가가 필요해진다. 이런 고민거리를 놀림받지 않고 할만한 상대는 누가 있을까. 채팅방의 익명성을 이용하여 이야기를 할 사람을 찾던 중 마침 딱 보인 사람이 '한스 요아힘 마르세유'였다는 건 우연이었을까. 

 

'나'는 케밥남자와의 인연으로 여러 면에서 자유로울 것 같은 터키문화원에 관심을 가지고 수강하게 된다. 거기서 만난 건 '한스~' 바로 그 남자다. 이런 우연이 있을까. 존카의 그와 같은 사람인지 일부러 확인하지 않은 채 터키말과 문화를 배우고 공연구경도 가게 된다. 터키어 강의중에 배웠던 문법과 어휘같은 걸 실생활과 맞춰보거나 표로 도식화하며 정리해본다. 온전히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누가 있는가, 터키어를 배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의 자기질문을 이어나가던 중 시간이 지나 수강인원이 몇사람 남지 않게 되자 폐강을 두려워한 이들은 '나'와 '한스~'에게 압박을 해오는데...

 

이 책은 여러 가지 이야기가 섞여 있고 소녀의 자아를 찾는 과정이라고 하기에도 머뭇거려진다. 익명성을 편하게 생각하며 어느 정도의 경계를 가져야 할지 고민하는 순간도 있고 당연한 사실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편견이었음을 나중에 알기도 하며 자투리라고 생각되는 소소한 대화들의 묶음이기도 하다. 세대별로 고민거리뿐 아니라 과거의 경험, 일상의 현장이 서로 다를 수 있겠으나 터키어를 배우는 것 처럼 공통 분모를 가질 수도 있지 않을까. 그 강의가 끝이 가까워오고 계속 되진 않더라도 말이다. 젊은 작가의 역량이 맘껏 꽃피워 언젠가 좋은 소식을 전해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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