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 - 박경리 장편소설
박경리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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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시] 박경리 장편소설

 

 

[파시]....

책 제목이 조금 낮설다.

인터넷 사전을 뒤적여보니 '바다 위에 열리는 생선시장'이라고 정의되어 있다.

 

파시(波市)

특정 어획물을 어획하는 어장에서 어선과 상선 사이에 어획물의 매매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파시는 실제로 이보다 넓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어장과 가까운 위치에 있는 육상 근거지에서 어업자와 어부를 고객으로한 각종 상행위가 이루어지는 곳도 파시라고 한다. _ 네이버 검색(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 책의 주 무대가 통영과 부산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소설속 주요사건의 배경이 바다와 관련되어 있다는 점에서 [파시]라는 제목이 잘 어울린다.

많은 사람들 만큼이나 많은 사연을 간직한 곳이 시장이고 이 소설이 그런 사람들의 삶을 담아냈기 때문에 [파시]라는 제목이 붙여지지 않았을까 하고 짐작해 본다.

이 책 [파시]는 [김약국집 딸들]과 [뱁새족]에 이어 내가 세번째로 접하는 박경리 작가의 소설이다.

박경리 하면 생각나는 책인 [토지]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사실 [토지]의 배경이 내 고향과 그리 멀지않은 곳이라는 점 때문에 무척이나 애착이 가는 작품이지만 정작 그 내용에 빠져보지는 못한 것 같다. 대하소설이라는 압박감 때문일까... 어째든...

 

[파시]는 한국전쟁 말미에 전쟁의 포화에서 약간 벗어난 통영의 이야기다.

치열한 전투가 이루어 지지는 않았지만 그 나름대로 전쟁의 폐해와 후유증을 간직한 그곳 사람들의 순탄치 않은 삶이 그려진다.

이 소설은 조만섭을 따라 통영으로 가는 수옥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북에서 홀로 내려와서 부산에서 몹쓸(?) 경험을 하고 이를 가엽게 여긴 조만섭이 그녀를 통영으로 데려오지만 서영래와 조만섭의 아내인 서울댁에 의해서 또다시 시련을 겪게 된다.

그런 수옥을 사랑하게 된 학수는 그녀를 데리고 개섬으로 떠나게 되지만 학수가 군대에 끌려가게되고 그녀의 짧은 행복을 다시 전쟁속으로 사라지는 듯 하다.

그렇지만 불운한 운명으로 끝날 것 같은 가여운 수옥에게 아이의 잉태가 새로운 희망을 암시한다.

 

조만섭의 딸인 명화는 미쳐서 죽은 어머니의 굴례에서 벗어나지 못한 삶을 살아간다.

명화와 응주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응주 아버지의 반대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응주 아버지인 박의사에게서 반대의 이유를 전해듣고 명화는 모든것을 버리고 밀항을 결정한다. 

딸 명화를 위해 고향인 통영을 버리고 부산으로 이사를 하고, 응주와의 혼인을 위해 노심초사하는 조만섭에게서 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졌다.

또한 온전히 행복하지 못한 삶을 사는 듯한 조만섭과 박의사 그리고 그들 가족의 모습에서 안타까움도 묻어났지만, 한국전쟁의 치열한 전쟁의 소용돌이를 느끼지 못하고 남부러울 것 없이 살아가는 그들을 보며 왠지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

 

이 소설의 또다른 주요 인물에 학수의 여동생 학자가 있다.

잘 살던 집안의 가세가 기울어지고 아버지가 병들어 눕게되고, 학자는 박의사의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려한다.

박의사의 냉대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그녀의 사고는 더욱 삐뚤어지고 결국은 타락(?)의 길을 걷게된다.

한국전쟁이라는 특별한 상황에서 누군가는 자신의 삶이 완전히 파괴되고, 어떤 이들는 그 속에서 이익을 챙긴다.

밀매업으로 뱃속을 체우는 서영래와 서울댁 등등의 사람들이 그렇다.

 

전쟁이라는 상황에서도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꽤나 흥미로웠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한국전쟁이야기가 자주 나오지만 온통 전쟁의 화염에 시달리고 그 속에서 신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직접 전쟁을 격어보지 못한 요즘세대들에게 한국전쟁은 어쩌면 영화에서나 보는 멋진 전쟁장면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나역시 한국전쟁과는 거리가 있는 세대인지라 아버지께 전해들은 단편적인 이야기들만 마치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야기처럼 뇌리에 저장되어 있다. 

이 책 [파시]를 통해서 잔잔하지만 운명이라고 치부해 버리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물론 소설이지만 그 시절 통영의 모습을 잘 전해주고 있는 것 같아 의미있는 책읽기가 아니었나 싶다.

머지않은 미래에 박경리 작가의 또다른 이름이 되어버린 [토지]도 꼭 접해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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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불량헬스
최영민 / 롤링다이스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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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라인과 식스팩에 돌직구를 날리다

 

 

운동을 안한지 정말 오래되었다. 나름 운동을 좋아하는 편이라 소시적 헬스클럽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기억이있지만, 가정을 가지게되고 아이들의 출산에 따라 운동과는 점점 멀어졌다.(주로 엄마들이 하는 변명이지만.. 나름 육아에 힘쓴 공로도 있으니 한번 쯤 써먹어도 보련다. ㅎㅎ) 그렇게 운동과 담을 쌓은지 몇 년이 훌쩍 넘은 것 같다. 바쁘다는 핑계로 조금만 여유가 생기면 다시 시작해야지.. 하고 다짐만 하다가 지금까지 내 몸을 방치하게 되었다. 내가 주로 헬스클럽을 찾는 이유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위해서였다. 그냥 먹고 자고만 반복하면 살이 빠지는 체질이라(짜증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이런 체질도 있으니.. 이해하시길...ㅜ.ㅜ;) 적당한 체중유지를 위해서 웨이트 트래이닝을 활용해 왔었다. 그런 노력조차 하지않는 요즘은 지나치게 날씬해져버린 내 몸을 보면서 더이상 이렇게 방치하면 언젠가 큰일(?)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찾왔다. 이제는 더이상은 안된다는 위기감을 느끼는 요즘 무작정 헬스클럽으로 달려가기 전 한권이 눈에 들어왔다. [불량헬스]라는 좀 특이한 제목의 책이다.

 

요즘은 누구나 몇 분만 투자하면 인터넷을 통해서 운동과 다이어트 관련 정보를 소화하기 힘들 정도로 엄청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각종 블로그나 카페의 포스팅을 보고 있노라면 금방이라도 몸짱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 책  [불량헬스]는 근거없이 떠돌아 다니는 운동법과 잘못된 상식을 뒤집는 유용한 정보들을 전해준다. 그리고 여름만 다가오면 벼락치기 다이어트로 몸짱의 반열에 올라보려고 무모한 도전을 하는 사람들과 그들의 심리를 이용해 매출을 올리려는 헬스클럽과 일부 트레이너들에 대한 쓴소리도 아끼지 않는다.

 

피트니스 산업의 특징 하나를 꼽자면, 갑의 위치에 있는 소비자들이 다른 산업에 비해 너무나 무지하다는 것이다. 처음에 필자는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인 인터넷과 방송에서 활약하는 정보 전달자들이 무지해서라고 햇악했었다. 더구나 그런 함량 미달의 정보를 사람들은 너무 쉽게 믿어버린다! 물론 방송에 나올 정도면 그래도 믿을 만하겠거니 생각하는 게 시청자의 잘못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넙죽 믿는 사람들이 있으니 소위 유명 트레이너라는 사람들이 방송에 나와 헛소리를 해대는 것이 아닐까? _ p49

 

이 책은 1장 '다이어트의 진실', 2장 '여성들의 건강과 다이어트', 3장 '헬스클럽 이용 가이드', 4장 '본격 트레이닝 입문', 5장 '남자를 위한 터프한 운동법' 그리고 부록 '스포츠를 말한다'로 크게 여섯개의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개인적으로 태어날 때부터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스트레스의 원인인 다이어트로 부터 자유로운 몸이라 1장과 2장은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수 있었다. 강 건너 불구경한다는 말이 이런걸까? ㅎㅎ 그렇지만 1장에서 전해주는 다이어트와 현재 피트니스 산업의 특징을 읽고 그동안 내가 알고있었던 잘못된 진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몸짱의 꿈을 이루지 못하는 것에 대한 책임은 바로 자신에게 있다는 말과 다이어트의 필수요건이 '양심'이라는 말에 격한 공감을 표하고 싶다.

 

내가 가장 관심있게 읽은 부분이 4장과 5장이다. 헬스클럽의 최대 우량주(?)가 스콰트(Squat)와 데드리프트(Dead lift)그리고 스텐딩 밀리터리 프레스(Standing military press)라는데는 전적으로 동감이다. 개인적으로 벤치프레스(Bench press)도 우량주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저자의 생각은 약간 다른가 보다... 어째든 보여주기식 급조된 몸이 아니라 진정으로 건강하고 파워넘치는 몸을 만들기 위한 조언들은 하나하나 천천히 곱씹어 볼만한 것이었다.

 

 

전체적으로 상당히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책이었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마트처럼 흔하게 널려있는 헬스클럽의 만행과 트레이너의 자격미달을 침튀기며 역설하고는 정작 중요하다고 소개하는 운동법의 구분동작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뭐 말로는 좋은 코치를 찾아서 직접 배우라고 조언하지만... 스쿼트를 제대로 가르칠 수 있는 트레이너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더군다나 인터넷이나 책만보고 따라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럼 어쩌란 말인가...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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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 - 태양과 청춘의 찬가
김영래 엮음 / 토담미디어(빵봉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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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티파사의 아침에 폐허 위에 맺히는 이슬.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것 위에 세상에서 가장 젊고 신선한 것.

이것이 바로 나의 신앙이고,

또 내가 생각하는 예술과 삶의 원칙이다. _ 알베르 카뮈

 

 

알베르 카뮈하면 맨 먼저 '이방인'이 떠오른다. 사실 카뮈의 책 중 제대로 읽은 책이 '이방인'밖에 없으니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베르 카뮈의 소설과 에세이에 대해서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그의 작품세계는 한마디로 난해했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학창시절 '이방인'을 읽고도 무덤덤하게 마지막 책장을 덥었고, 거의 10년이 지나서 다시 읽고는 괜찮은 책이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그의 에세이인 '시지프의 신화'도 중간중간 일부만 읽은 것이 전부였다. 그렇기에 알베르 카뮈의 명성에 비해 내가 그에대해 너무 아는것이 없다는 생각에 이 책 [알베르 카뮈 _ 태양과 청춘의 창가]를 선택했다. 어쩌면 나에게는 어렵기만 한 알베르 카뮈의 작품세계를 좀더 많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고, 그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에서 말이다.

 

알베르 카뮈라고 하면 작가이면서도 '이방인'과 '시지프의 신화'를  발표하고 철학자로서도 인정받았다고 한다. 또한 사형제도에 반대하고 인권운동에도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실 결혼제도역시 반대하여 그의 결혼생활이 순탄하지 않았다는 말도 있지만....  어째든 [알베르 카뮈 _ 태양과 청춘의 창가]는 카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엮은 책이라고 한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열개의 거울에 비춰본 카뮈'는 카뮈 자신이 어떤 인터뷰에서 '가장 좋아하는 열 개의 단어'를 묻는 물음에 답한 것을 바탕으로 세계, 고통, 대지, 어머니, 사람들, 사막, 명예, 비참, 여름, 바다의 10개의 단어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 있다.

 

 

2부 '카뮈를 읽다'에는 그의 대표작인 '이방인'과 '페스트'의 중요 부분을 발취하여 수록하였고, 그의 대표적인 에세이인 '시지프의 신화' 중 마지막을 장식한 '시시포스의 신화' 전문을 수록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3부 '카뮈를 만나다'에서는  노벨상 수상식에서 행해진 강연과 그의 은사들과 나눈 편지 그리고 여러 인터뷰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 한권으로 알베르 카뮈에 대한 문학적 깊이를 다 이해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것 같다. 물론 책의 내용이 모자라다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인 이해력의 차이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을 엮은 이유는 독자들이 카뮈와 악수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라고... 극작가이자 카뮈의 전기 작가인 장 크로드 브리스빌이 '카뮈의 작품을 읽는다는 것은 그와 악수하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는 것이다.'라고 말 했듯이 이 책을 통해서 알베르 카뮈의 작품을 더욱 잘 이해하고 그의 작품세계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 작가의 의도일 듯 하다. 개인적으로 카뮈라는 인간에 대해서 그리고 그의 작품에 대해서 조금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진 듯 하다. 그렇지만 아직도 카뮈의 작품에 담겨있는 철학적 고찰을 이해하기에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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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 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윤성근 엮음 / 큐리어스(Qrious)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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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책방에 머물러 있던 청춘의 글씨들

 

 

헌책방에 들러본 것이 언제인지 정말 까마득하다. 학창시절 얇은 지갑을 들고 전공서적을 구하기 위해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던 기억이 마지막인 것 같다. 온라인 서점의 편리함 덕분에 골목길을 지키고 있던 헌책방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헌책방에서 느낄 수 있었던 아련한 향수도 점점 잊혀지고 있는 것 같다. 상당한 시간이 지났지만 주인이 몇 번이고 바뀐 나이든 책들이 뿜어내던 독특한 책냄새가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이 책 [헌책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는 책장 속 오래된 책장을 넘길때 코끝을 간지럽히는 구수한 헌책 냄새같은 책이다. 누군가 책장속에 남겨두고 간 추억과 신념과 사랑을 만날 수 있다.

 

 

 

 

책속에 담겨진 사연들은 1970~90년대의 이야기다. 헌책 구석에 손글씨를 남긴 주인공들 중 대부분은 지금쯤 중년을 훌쩍 넘긴 나이가 되어있을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들이 한자한자 눌러쓴 문장들은 중년의 중후함이 아닌 풋사과 같은 철부지의 고민이 느껴지기도 했고, 피끓는 청춘의 사랑이 느껴지기도 했다. 만약 헌책 속 글씨의 주인공이 이 책을 보게 된다면 눈물겹도록 돌아가고 싶은 젋은날을 회상하게 되겠지.....

 

 

책속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하듯 누군가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것을 고스란이 책으로 옮겨놓은 이 책을 보며 마치 누군가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느낌이었다. 책속에 고이 숨겨둔 누군가를 향한 사랑의 편지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얼굴에 흐믓한 웃음이 그려졌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변해도 젊은시절 느끼는 감정과 우정, 무언가에 대한 신념과 열정은 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약간의 사고방식은 변할지도 모르겠지만....

 

 

 

 

참 여운을 많이 남기는 책이다. 책으로 손글씨를 읽어볼 수 있는 특이한 경험도 그랬지만 나름 힘든 시기를 겪은 사람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더욱 그랬다. 짧은 문장이지만 그보다 몇 배나 긴 속뜻을 간직한 이야기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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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딱선 - 손가락 그리고 달
설묵 지음 / 지혜의눈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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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 · 그리고 달

 

 

한때 종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아직은 딱히 내 마음 깊숙히 자리잡은 종교가 존재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그렇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아직 종교를 종교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삐뚤어진 마음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절에도 자주 다니고, 학창시절 교회도 자주 나가보았지만 아직 내 마음을 흔드는 감흥을 느끼지 못한 것 같다. 나름 성경도 불경도 읽어보고(완독 하지는 못했지만...) 가끔 종교관련 서적도 뒤적여 보지만 그럴수록 종교란 모두 똑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어줍잖은 결론에 도달하곤 한다. 그렇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교리가 있고, 개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종교는 모두 그 나름의 의미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무 편견없이 종교를 대하려고 노력하고, 많은 종교와 종교적 신념이 주는 가르침을 배우려고 항상 고군분투 중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 [삐딱선]역시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전해주었다. 사실 이 책은 '설묵 스님'의 행자시절 기록해 둔 일기이고, 그와 같은 길을 택한 불자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서 출판된 책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목적이야 어찌됐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전해준다. 결코 쉽지않은 수행의 길을 선택한 한 인간의 고뇌도 느껴졌고, 행자의 일상이 그대로 묻어나기도 했고, 깨달음을 향한 고통도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불자로서 속세 사람들을 지켜보는 시각이 인상깊었다.

 

"새해는 언제나 즐겁게 시작될 것이라는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하루였다. 설날이지만 아침 10시부터 시작된 제사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건 정말 의미 없는 일이다. 잠시 후에 피 흘리며 승자와 패자를 찢어 나눌 권투선수들이 시합 전 인사를 나누며 흘리는 웃음을 생각해보라. 오늘 법당에 모였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바로 몇 시간 후에는 동료를 밟고 일어서야 할 인생의 투사들이었다. 모두들 여유로운 듯 웃고 있지만 마음에는 좀 더 오래 살고 싶어 하고, 좀 더 부유해지길 원하며 좋은 일은 나에게, 그리고 나쁜 일만은 자신을 피해 남엑 갔으면 좋겠다는, 지독한 이기주의와 어리석음에 싸여 있었다. 그리고 그 이기심을 이 세상에서는 가족애, 또는 가장의 책임감이라고 부른다..." _ p55

 

얼마전 혜민스님의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책을 읽은적 있다. 혜민스님이 전해주는 이야기에 참 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세상에 나온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음에도 온라인서점 베스트셀러 상위순위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을 보니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는 듯 하다. 이 책 [삐딱선]은 그런 가르침을 위한 책과는 약간 다른 책이다. '이렇게 하세요...', '저렇게 하세요...' 하고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는 다른 스님들의 책들과는 다르게 담담한 행자의 일상과 생각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이 나에게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더 많은 고찰의 기회를 준 것 같다. 말이 많아서 설묵이라는 법명을 받았다는 설묵스님의 수다스러운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해 졌다. 근데 법명대로 정말 말이 없어지셨으면 어떡하지...??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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