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구 감소와 대도시 집중 현상으로 인한 빈집, 빈터 문제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저출산, 고령화가 가속화되면서 지방 소멸은 현실화되었고, 한때 부의 상징이던 토지는 관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는 불명 토지와 빈집으로 변해 국토의 황폐화를 초래하고 있다. 거품경제 시기 지가 폭등의 참상을 보며 패전보다 더 심각한 위기라 한탄했던 시바 료타로의 지적처럼 근대적 토지 소유 관념이 마주한 심각한 구조적 재난이다. 삶의 터전인 토지가 사적 소유의 굴레에 갇혀 제 기능을 잃어가는 현 시점, 인구 감소 시대의 토지 문제와 그 새로운 활용 방안에 대한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이 시급하다.
평소 토지나 부동산은 그저 자산가들의 투자 대상이거나 나와는 거리가 먼 법률과 제도의 영역이라고만 여겼다. 골치 아픈 세금 문제나 복잡한 등기법 정도로 치부하며 특별한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은 토지를 바라보는 해묵은 생각을 바꾸어 놓았다. 부동산이라는 재테크 수단으로만 보던 나의 좁은 시각을 벗어나, 공동체의 생존과 삶의 터전이라는 사회과학적 관점으로 토지를 다시 보게 되었다.
국가의 총력을 기울인 지원에도 인구 감소를 막지 못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신 토지기본법 제정에 앞서 무엇보다 이 부흥 경험을 살아 있는 참고 사례로 연구했어야 했다. ... 수많은 불명토지의 존재에 대해서도 구획 정리와 도시 재개발 같은 부흥의 장애가 된다는 정도의 발언이 있었을 뿐, (p51)
이 책은 토지기본법의 역사적 변천과 상속법 등의 법제도 분석을 통해 빈집, 빈터 문제의 근원적 원인을 조사한다. 저자는 거품경제에 대응하던 구 토지기본법에서 불명 토지와 빈집 문제를 다루는 신 토지기본법으로의 전환을 설명하며, 사적 소유권을 절대시하는 근대적 토지소유권의 한계를 이야기한다.
충격적인 것은 개인이 땅을 독점하고 처분하는 근대적 사적 소유권이 오히려 사회적 재난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구가 줄어들면서 주인 없이 방치된 불명 토지와 빈집이 늘어나는 현상이 개별 법 제도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 내 땅은 내 마음대로 한다는 자본주의적 토지 관념의 한계에서 비롯되었다.
메이지유신 이후 확립된 근대적 토지 소유 관념이 인구 감소라는 새로운 시대적 조건 앞에서 어떻게 기능 부전에 빠졌는지 설명하는 부분은 새롭게 알게 된 내용이다. 미국과 일본의 랜드뱅크 사례 등 외국의 도시계획과 상속 제도를 비교하며, 토지를 공동체의 풍요를 위한 자산으로 활용하는 대안들을 비교한다. 인구가 줄어드는 21세기 중반의 국토를 어떻게 효율적이고 풍요롭게 재편할 것인지 그 미래 비전을 검토하는 이유도 설명한다. 토지 소유권의 개념이 시대에 따라 변해왔으며, 토지는 결코 고정불변의 사유재산이 아니라는 점.
저자가 인구 감소 시대의 핵심 해법으로 제시한 '현대 총유'라는 개념은 새롭다. 원래 법학에서 총유는 개인의 구체적인 지분 없이 마을 공동체가 재산을 소유하고 함께 이용하던 전통적인 개념을 뜻한다. 저자는 이 낡은 법률 용어를 오늘날의 빈집과 불명 토지 문제를 해결할 21세기형 대안으로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