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흔들릴 때마다 나는 도스토옙스키를 읽었다 - 희망이 사치일 때 우리는 무엇으로 버티는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지음 / 닻 / 2026년 6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 내면의 가장 어두운 심연과 모순을 해부한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대문호이자 사상가이다. 그의 삶은 그 자체로 비극이자 기적이었는데, 청년 시절 사회주의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집행 직전 극적으로 감형되어 시베리아 형무소에서 4년간 족쇄를 찬 채 강제 노동을 겪었다. 이후 병사로 계급 없는 군 복무를 몇 년 더 한 뒤에서야 완전한 자유를 얻었다.
개인사적으로도 평생을 지독한 간질 발작과 도박 중독에 시달렸으며, 첫 아내와 형의 죽음, 그리고 어린 자식들을 연이어 가슴에 묻는 참혹한 가족사를 버텨내야 했다. 이러한 극단적인 고통과 죽음의 문턱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로 <죄와 벌>,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같은 불멸의 걸작들을 탄생시켰다.
만약 도스토옙스키의 복잡하고 치열한 성향을 오늘날의 MBTI로 비유한다면 무엇일까 궁금하다. 아마도 그는 전형적인 INFJ(옹호자형)나 INFP(중재자형)의 극단에 서 있는 인물이었을 것이다. 끊임없이 고독 속으로 걸어 들어가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의미를 추구하고, 눈앞의 현실 너머의 도덕적, 철학적 심연을 탐구하며, 고통과 모순 속에서도 끝내 인간에 대한 사랑과 구원을 갈망했기 때문이다. 다만 평생을 흔들리는 내면과 싸우며 철저하게 사색했던 그의 성향은, 정돈된 계획가보다는 매 순간 삶의 모순과 본능에 부딪히며 방황했던 열정적인 탐색가의 어두운 이면에 더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도스토옙스키는 부조리한 현실을 내 입맛대로 포장하거나 회피하려는 헛된 시도를 멈추고, 그 참혹함을 있는 그대로 껴안을 때 비로소 진정한 구원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즉, 쓰디쓴 현실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비로소 현실 안에서 움직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는 말이다. (p049)
이 책을 읽다보면 왜 우리가 삶의 궤도에서 이탈해 격렬하게 흔들릴 때마다 하필 도스토옙스키를 찾아야 하는지 그 해답이 보인다. 세상은 우리에게 잘 될 거라는 긍정과 위로를 건네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어설픈 희망을 버리고 쓰디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삼키라고 한다. 사형대 위에서 남은 5분의 시간을 영원처럼 쓰고자 했던 그처럼, 진짜 삶은 고통을 외면할 때가 아니라 그 밑바닥과 정면으로 마주할 때 시작된다.
도스토옙스키가 우리에게 보내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타인의 시선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해 내 안의 모순과 추악함까지도 기꺼이 끌어안으라는 것, 그리고 시베리아의 혹한 같은 시련이 닥쳐오더라도 남을 탓하며 주도권을 넘겨주지 말고 내 영혼을 지켜내라는 외침이다. 정답 없는 세상에서 기꺼이 이단아가 되어 무거운 삶의 십자가를 짊어지라는 조언은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준다.
도스토옙스키라는 이름이 주는 무게감에 비해, 이 책은 당장 내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조언들을 담고 있다. 지친 하루 끝에 읽기에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