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가방에 내가 없다
권지연 외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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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평범한 여덟 여성이 가방이라는 일상적인 사물을 단서로 잃어버린 자신을 찾아간 9개월의 기록을 담았다. 산부인과 의사, 공무원, 워킹맘 등 직업도 사연도 다른 이들은 글쓰기 플랫폼에서 만나 서로의 글을 고치며 하나의 목소리를 완성한다.

이들의 가방 속은 가족의 약, 아이의 간식, 빛바랜 영수증으로 무겁지만, 정작 자신을 위한 립스틱 한 자루나 거울 한 장은 없다.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 직장인으로 살아가며 정작 나를 잃어버린 채 살아온 우리 시대 여성들의 자화상이 가방이라는 사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책을 읽으며 나역시 자연스럽게 나의 가방을 돌아보고, 그동안 외면했던 스스로의 결핍과 마주하는 감정을 느낀다.

이번에 꾸리는 가방 안에는 조금 다른 풍경을 담으려 한다. 아이를 위한 물건들 틈새로, 내가 좋아하는 책 한 권과 '나'라는 이름 석 자를 잊지 않고 챙겨 넣을 것이다(P79). 내 경우에도 늘 가족의 필요나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들을 가방 속에 가득 채우고 다니느라 어깨가 무거웠던 기억이 있다. 가방이 무거워질수록 정작 나 자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여유는 점점 줄어들었다. 이 문장은 내 삶의 주도권을 다시 찾아오겠다는 다짐처럼 느껴진다.






가방 안쪽 깊숙한 곳처럼 손이 닿지 않아 잊고 지내던 자리. 아이를 챙기느라 밀어 두었던 마음이 그곳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는 그 마음을 가방 앞 칸으로 옮겨 두려 한다. 가장 먼저 손이 닿는 곳에. 오래 비워 둔 자리를 조금씩 채워간다. 뒤로 밀려나 있던 내가 천천히 돌아온다(P108).

가족을 돌보고 일상을 지켜내는 동안 얼마나 많은 순간 나의 마음을 가방 구석에 밀어 넣어 두었는지 느껴졌다. 내 경험을 돌이켜보아도 늘 아이의 필요와 일상의 의무들이 가방 앞 칸을 차지하고 있었다. 내 생각과 감정, 배우고 싶은 열망 같은 것들은 늘 뒷전이었고, 그렇게 밀려난 마음들은 가방 깊숙한 곳에서 먼지가 쌓인 채 방치되곤 했다. 오래 비워 둔 자리를 나만의 온기로 채워가며, 희미해졌던 나라는 존재를 천천히 복원해 나가는 발걸음에 깊은 지지와 공감을 보내게 된다.

책의 구성은 서사적 흐름이 있다. 1부에서는 타인의 요구와 의무로만 채워진 가방의 안쪽을 응시한다. 새벽마다 교구를 만들던 손, 친정엄마의 낡은 보라색 가방, 거울 하나 없는 의사의 가방 등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통해 묻어둔 상처를 꺼낸다. 2부에서는 가방 속 무거운 희생을 비워내고, 무엇으로 다시 채울지 스스로 결정하는 주체적인 변화를 보여준다. 이러한 구성은 신세 한탄으로 느껴지지 않고, 삶의 주도권을 다시 쥐는 성장의 과정으로 느껴진다.

누군가의 이야기에서는 나의 엄마를 보고, 또 다른 이야기에서는 일터에서 고군분투하는 나의 모습을 발견한다. 비록 한 사람의 서사를 길게 늘어놓지는 않지만, 오히려 다양한 삶의 단면들이 모여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여성의 독박 육아나 경력 단절 같은 소재 자체는 기존 에세이에서 익숙한 주제라 신선함이 덜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엄마라는 이름 뒤로 밀려나 있던 나를 다시 삶의 중심에 넣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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