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졸업학교 교과서
임부돌 외 11인 지음 / 작가의집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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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성인이 되고 사회에서 자리를 잡기까지 수많은 입학과 공부를 반복하지만, 정작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마침표인 죽음과 노년에 대해서는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대한민국에서 이 책은 나이 듦을 두려움이 아닌 하나의 완성해 가는 과정으로 바라보게 하는 신선한 책이다.

의사와 법률가, 행정가 등 각계 전문가 12인이 경북 경주의 작은 산골 마을 산내면에서 2년간 치열하게 진행한 강의록을 엮었다. 30년간 임상에서 수많은 떠남을 지켜본 의사의 시선과 현장의 숨결이 그대로 녹아있다.

이 책은 막연한 위로나 감상주의에 빠지지 않는다. 노화에 따른 신체 변화나 노인성 난청처럼 당장 직면하게 될 현실적인 건강 문제부터 다룬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의료 환경을 스스로 진단해 보라는 조언은 노년의 독립적인 삶을 위해 얼마나 실질적인 준비가 필요한지 일깨운다.

유언장 작성, 연명의료의향서, 장기기증, 그리고 영정사진 준비와 재정 갈물리에 이르는 구체적인 절차들이소개된다. 보통 이런 주제들은 피하고 싶기 마련인데, 책에서는 이를 준비된 현역 어르신으로 살아가기 위한 당당한 권리이자 예의로 기록한다. 게다가 놀라웠던 것은 첨단 AI 기술을 노년의 생활 디자인에 접목한 부분이다.



최근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직접 작성하고 돌아오는 길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내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어떻게 장식할 것인가에 대한 주체적인 선언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강조하듯, 연명의료의향서는 죽음을 회피의 대상이 아닌 당당하게 준비해야 할 인생의 한 절기로 바라보게 하는 장치이다. 이 서류를 작성하는 행위는 현대 의학의 발전이 가져온 거대하고 무거운 질문, 즉 무의미한 생명 연장인가, 아니면 존엄한 마무리인가라는 화두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환자 본인이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상태에서 오직 인공호흡기나 혈액투석에 의지해 고통을 늘리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삶이라고 보기 어렵다. 이는 생명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떠나는 이와 남겨진 가족 모두에게 정신적, 경제적 고통을 가중시키는 무의미한 연장에 불과하다. 의학적 기술이 삶의 질을 보장하지 못하는 한계 상황에 이르렀을 때, 기계를 멈추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생명을 포기하는 행위가 아니다. 존엄한 마무리란 죽음을 외면하지 않고 내 손으로 직접 내 삶의 졸업 작품을 완성하겠다는 결단이며,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작성은 그 청사진을 그리는 첫걸음이 된다.

급변하는 시대에 발맞추어 AI를 활용해 하루를 계획하고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신세대 어르신의 모습을 제시하는 대목은 주목할만하다. 먼저 고령화를 겪은 일본이 익숙한 내 집에서 존엄하게 늙어가는 것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면, 우리는 우리만의 새로운 길을 스스로 만들 역량을 길러야 한다.

책을 술술 눈으로 읽고 고개를 끄덕이는 데서 끝나면 안 된다. 진정한 가치는 책 말미에 수록된 15개 주제별 홈스쿨 과제에 있다. 내 몸 진단 체크리스트부터 시작해 직접 적어보는 유언장 양식, 물품 정리표와 AI 일일계획서, 그리고 나만의 24시간 시간표 설계까지 수록되어 있다. 직접 연필을 들고 빈칸을 채워 내려가는 동안, 내 남은 생을 주체적으로 설계하는 기록장이 된다.

나를 돌아보고 주변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막연했던 노후의 불안감이 사라지고, 오히려 지금부터 어떻게 더 가치 있게 살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이 그려진다.

인생졸업학교는 마침을 준비하는 곳이 아니라 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오늘 입학하는 곳이다. 부부가 함께, 혹은 연세 드신 부모님과 장성한 자녀가 둘러앉아 서로의 생각을 나누며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삶의 마지막 페이지를 내 손으로 아름답게 매듭짓고, 남은 인생 후반전 30년을 당당하고 활기차게 살아가고 싶은 이들이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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