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의 설득법 - 10개의 질문으로 만나는
이현우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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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세상이 참 빠르게 변한다는 것을 실감한다. 아침에 눈을 떠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확인하고, 무심코 켠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끄는 영상을 보다 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지금 나는 내 의지대로 선택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설득당하고 있는 걸까?

마침 올해는 국내에 <설득의 심리학>이 번역되어 소개된 지 꼭 30주년이 되는 해라고 한다. 이현우 교수의 신간은 타인을 내 뜻대로 움직이는 설득의 기술을 전달하는 책이 아니다. 설득이라는 도구를 통해 인간의 본질과 마음의 여정을 추적해 온 심리학자들의 역사를 담은 책이다. 그다지 무거운 내용은 아니지만, 인간의 이성과 감정, 그리고 관계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들이 꽤나 밀도감있게 정리 되어 있다.

현대 설득 심리학의 시초가 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모병 연구부터 시작하여 인지 부조화, 프레이밍 효과, 넛지에 이르기까지의 방대한 이론들을 인물 중심으로 다룬다. 특히 레온 페스팅거의 '인지 부조화 이론'에 관한 내용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자신의 신념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을 때 극심한 심리적 불편함을 느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 행동 대신 '생각'을 바꾸어 버린다는 사실은 무척 인간적이면서도 씁쓸했다.

얼마 전 나의 일화가 떠오른다. 건강을 위해 저녁 여섯 시 이후로는 절대 야식을 먹지 않겠노라 굳게 다짐해놓고는, 영화를 보면서 야식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양껏 먹었다. 밀려오는 후회 속에서 내가 택한 것은 반성이 아닌 합리화였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 먹고 행복한 게 건강에 더 이로워라며 내 행동을 옹호하는 생각들로 마음을 채우고 있었던 것이다.

사회적 현상까지 갈 것도 없이, 내 안의 인지 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해 사실을 비틀던 내 모습이 바로 페스팅거가 말한 그 본능적 방어기제였던 셈이다. 이렇듯 낯선 학문의 이론들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내 일상을 파고들고 있었다.

돌아보면 우리는 얼마나 자주 스스로가 내린 잘못된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마음의 사실을 포장해왔던가. 스마트폰 속 화려한 타인의 삶과 초라한 나의 일상 사이에서 느끼는 괴리감을 메우기 위해 편한 정보만을 편식하는 현대인의 모습 또한 이 백 년 전 정립된 이론의 테두리 안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대니얼 카너먼과 아모스 트버스키의 '인지 휴리스틱'과 '프레이밍 효과'에 관한 내용도 재밌다. '성공 확률이 90퍼센트'라는 말과 '실패 확률이 10퍼센트'라는 말은 이성적으로 동일한 수치다. 손실을 극도로 회피하려는 인간의 본능은 후자의 이야기에 본능적으로 움츠러든다. 홈쇼핑의 호스트가 마감 임박을 외칠 때 나도 모르게 결제 버튼을 누르게 되는 그 조급함의 정체가 바로 '손실 회피 심리'다.

로버트 치알디니 연구팀의 최신 실험을 소개하는 부분도 꽤나 흥미롭다. 철저한 보안 장치가 설정된 AI조차 설득 심리학의 정교한 언어로 접근했을 때 금기시된 답변율이 33.3퍼센트에서 72퍼센트까지 치솟았다. 인간의 언어를 학습한 AI는 사람과 다름없이 얼마든지 설득 가능한 존재라니......

인간의 언어를 학습한 기계 역시 결국 설득당할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많은 것을 돌아보게 된다. AI가 개인의 취향과 상태를 정밀하게 학습하여 맞춤형 설득을 시도하는 거대한 알고리즘의 바다 속에서,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저자는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끊임없이 묻는 인간, '호모 콰렌스(Homo Quarens, 질문하는 인간)'의 태도를 강조한다.



인간 이해의 가장 오래된 전제, '이성이 감정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을 정면으로 다시 묻는 데서 시작한다. …현대 과학자들은 감정이 단순히 이성을 방해하는 요소가 아니라 인간의 판단과 행동을 움직이는 핵심 동력이라고 설명한다. (P194)

타인을 설득하고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서는 차가운 이성의 설득법을 넘어서 상대의 감정을 읽고 공감하는 것이다. 살다 보면 정연한 논리와 완벽한 정답을 제시하는 사람 앞에서는 마음을 닫게 되지만, 내 서툰 마음에 귀 기울여주고 공감해 주는 이 앞에서는 쉽게 빗장이 풀리던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고 철이 든다는 것은 감정을 다스리고 이성적으로 변하는 과정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중년의 길목에서 바라보니,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만들고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따스한 마음의 파동이었다. 아무리 훌륭한 정답이라 할지라도 가슴에 와닿지 않으면 공허한 울림에 불과하다. 누군가를 설득한다는 것은 내 온기를 나누어 상대의 감정에 닿는 다정한 노력이어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단절되어 가는 디지털 사회 속에서 인간다운 소통을 이어가기 위해 설득의 원리를 배워야 한다. 이 책은 정확하고 객관적인 학술적 사실들을 다루지만, 문체가 딱딱하지 않아서 가독성이 좋다. 사람의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이 궁금한 독자라면 일독을 추천한다. 지식을 채우는 기쁨과 나를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주는 심리학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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