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대목은 이 책이 고발하는 인간 중심적 시선의 모순을 날카롭게 보여준다. 그동안 인간은 북극곰을 빙하 위에서 외롭게 굶어 죽어가는 불쌍한 보호 대상(가짜 공존)으로 보거나, 반대로 문명을 위협하는 흉포한 무법자로만 여겨왔다. 하지만 곰들의 진짜 시선은 다르다. 그들에게 인간은 그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한 약해 빠진 사냥감이자 기이한 야생 존재일 뿐이다.
북극곰을 두고 문명을 파괴하는 무법자라고 비난하다가도 빙하 위의 외로운 약자로 동정하는 인간의 시선, 수천 년간 이어져 온 뱀장어의 물길을 댐으로 막아버린 인간의 업적을 보며 나 또한 자연을 소유하고 통제하려 들었던 이기적인 인간 사회의 일원이었다는 사실이 부끄럽다.
이 책에서는 저자의 날카로운 비판적 견해와 저널리스트 특유의 집요한 취재력이 엿보인다. 인간이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동물을 어떻게 대상화하고 오독해 왔는지 가짜 공존의 역사를 들춰낸다. 인간의 언어로 재단된 자연은 결코 진정한 자연일 수 없는 슬픈 진실을 보게 된다.
러시아에 불만과 불안이 쌓여가던 20세기 말 무렵 서양의 생태학자들은 이미 이 외래종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토종 생태계는 이 침입자들에 대체로 무력했다. 이 새로운 종엔 '침입 외래종'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P382)
외래종 침입자로 전락한 왕게 군단의 이야기나 인간의 구획 정리로 이방인이 되어버린 순록의 사연을 접하면서 과연 이 지구상에서 진짜 침입자이자 무법자는 누구인가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만들어낸 제도와 과학, 정치와 문화라는 틀이 얼마나 지극히 인간적인 편견으로 가득 차 있는지 이 책은 동물의 시선을 빌려와 차분하면서도 담담하게 전달한다.
과거의 역사적 사실과 21세기의 현대적 사건들을 조화롭게 엮어서 마음의 울림을 준다. 예를 들어 400여 년 전 극지방 원정대의 실패담과 오늘날 급변하는 기후 위기의 현장을 교차시키는 서사 방식이 그렇다. 자연은 침묵하지 않는다는 경고처럼, 무너진 서식지에서 동물들이 보내는 마지막 신호들은 결국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낸 세계를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언제쯤 되어야 영원한 포식자라는 거만한 가면을 벗고, 우리 역시 그저 야생의 한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자연을 사랑한다는 우리의 말조차 동물들에게는 냉소적인 독백으로 들릴지 모른다. 오랜만에 지적 해갈과 동시에 가슴 아픈 반성을 안겨준 이 책은 인간이 만들어낸 세계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꼭 읽어보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가치가 있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