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정하게 행동하는 것 vs 공정해 보이는 것 이 대목은 인간의 이중성을 날카롭게 찌르는 주제다. 고전 경제학이 인간을 순수한 이기주의자로 보았다면, 행동경제학은 인간이 공정함이라는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의 공정함이 언제나 순수하지만은 않다는 불편한 진실을 말해준다.
책 속의 실험적 증거를 보면, 사람들은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고 보복의 위험이 없는 상황(독재자 게임)에서는 슬그머니 자신의 몫을 더 많이 챙기는 이기적인 본성을 드러낸다. 타인의 시선이 있거나 상대방이 불공정한 제안에 보복할 수 있는 구조일 때 비로소 공정해 보이도록 행동을 수정한다는 의미다. 시장의 기업들 역시 진심으로 소비자를 위해 공정하게 행동하기보다, 평판이 깎여 불매운동 같은 보복을 당하지 않으려고 공정한 척 가면을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는 스스로 꽤 정의롭고 공정하다고 믿으며 살아가지만, 정작 아무도 보지 않는 밀실이나 나에게 아무런 해가 없는 상황에서도 똑같이 공정할 수 있을지 ......
현실의 삶에서 보면, SNS에 보여주기식 선행을 베풀거나 남들의 시선 때문에 도덕을 지키는 모습들이 모두 '공정해 보이는 것'에 매몰된 결과로 느껴진다. 진정으로 단단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타인의 시선이나 보복의 두려움이 아니고 내면의 준엄한 기준에 따라 진짜 공정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또 재밌었던 부분은 4장의 '초기 부존 효과'와 타이거 우즈의 사례에 관한 내용이다. 인간은 어떤 물건이든 일단 자기 소유가 되는 순간 그 가치를 전보다 높게 평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세계 최고의 골프 선수인 타이거 우즈조차 버디를 잡을 기회보다 보기를 피해야 하는 순간에 손실 회피 본능이 극대화되어 더 강한 집중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훈련된 전문가라 할지라도 손해 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인간의 본능 앞에서는 어쩔 수 없나보다.
30년이 넘는 세월의 증거들을 집대성하다 보니 챕터마다 추가된 학술적 분석들이 많아 교양서로 가볍게 읽기에는 벅차고 딱딱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작금의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실천적인 삶의 태도를 요구한다. 이 책이 인간의 비합리성과 결함을 파헤치는 작업이라면, 전에 읽었던 <넛지>는 그 불완전한 인간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하도록 유도하는 실천적 대안이다. 수학적 최적화보다 내 안의 비합리성을 먼저 인정하고 통제하려는 노력이 결국 승자의 저주를 피하는 무기가 수 있다.
자꾸만 중심을 잃고 시장의 소음에 흔들리는 투자가들이나,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서 후회와 자책을 반복하는 결단력이 유약한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해주고 싶다. 코인이나 주식, 부동산으로 돈을 벌었다는 소식에 소외감(FOMO)을 느끼며 덜컥 무리한 투자를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 나에게 이 책은 차가운 이성의 브레이크를 밟게 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