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중세 유럽이 침체기를 겪는 동안 이슬람 세계가 고대 그리스 수학을 붙들고 발전시켰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훗날 유럽을 뒤흔든 르네상스와 과학혁명의 뿌리 중 일부는 사실 바그다드에 닿아 있다. 그리고 20세기 괴팅겐의 사례는 가장 서늘하게 읽혔다. 세계 최고 수준의 수학 공동체가 1933년 나치 집권 이후 유대인 학자들이 하루아침에 쫓겨나면서 순식간에 무너졌고, 그 지식과 사람들이 미국으로 건너가자 학문의 중심지도 이동했다. 지식 공동체는 오랜 시간 축적되지만, 무너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수학은 수천 년 전에 이미 앞서 출발해 저 멀리 걸어가고 있고, 그 수학적 성취가 실제 기술로 구현되기까지는 아직 긴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첨담이라고 느끼는 지금의 과학기술은 사실 그 긴 여정의 초입일 수 있다. 이 관점은 기초학문의 가치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꾼다. 지금은 당장 활용이 보이지 않는 순수수학의 개념들도 언젠가 새로운 기술과 문명의 토대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
이 책은 수학을 잘하는 사람보다 오히려 수학과 멀어진 사람에게 더 잘 맞는다. 수식 하나 없이도 읽히는 책이기 때문에, 학창 시절 수학에 질렸던 어른이라면 의외로 술술 넘어갈 것이다. 특히 자녀에게 왜 수학을 배워야 하냐고 질문을 받는 부모라면 이 책을 통해 꽤 유용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토론거리로 몇 가지 질문을 도출해봤다.
수학은 정말로 모든 학문의 기반인가, 아니면 특정 영역에만 강력한 영향력을 가지는가.
순수학문에 대한 투자는 장기적으로 반드시 성과를 보장하는가, 아니면 사회적 선택의 문제일까.
오늘날 한국 사회는 수학과 과학을 도구로 보고 있는지, 아니면 기반으로 보고 있는가.
마지막으로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가져야 할 경쟁력은 수학적 사고력이라는 주장에 대해 어디까지 동의할 수 있을까.
역사와 철학 쪽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다. 문명사로 읽어도 흥미롭고, AI나 반도체 같은 기술 산업의 밑바닥이 어디서 왔는지 궁금한 독자들에게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