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함의 배신 - 은밀하고 정교하게 숨겨온 인간 본성의 비밀
조너선 R. 굿먼 지음, 박지혜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무상 제공받아 작성한 주관적 리뷰입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유난히 피로를 느끼던 시기가 있었다. 겉으로는 배려와 이해가 오가는 것처럼 보였지만, 어느 순간 그 친절이 보이지 않는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정도는 해줄 수 있지 않느냐'는 말 속에 숨어 있는 기대와 요구, 그리고 거절하기 어려운 분위기. 그때부터 다정함이라는 감정이 과연 순수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고, 그런 고민이 쌓이던 중 이 책을 펼치게 되었다.

다정함의 배신을 통해 그는 다양한 학문을 가로지르며 인류가 서로를 착취하기 위해 다정해졌다고 폭로한다. 인간은 언제나 사회가 중시하는 자본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기에 근본적으로 자본주의자로서 서로를 착취한다는 것이다 (책날개).인간의 다정함이 도덕적 성숙의 결과라기보다, 생존과 경쟁 과정에서 선택된 전략일 수 있다는 해석이다. 즉 우리는 타인과 협력하고 배려하는 존재이기 이전에, 자원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관계를 활용하는 존재라는 전제다. 여기서 말하는 자본은 돈에 국한되지 않는다. 명예, 신뢰, 영향력, 평판까지 포함한 모든 사회적 자원이다. 인간은 시대마다 중요한 자원이 무엇인지에 맞춰 행동 방식을 조정해 왔고, 그 과정에서 다정함조차 유용한 도구로 발전했다는 의미다.

이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많은 장면들이 새롭게 해석된다. 누군가의 친절이 순수한 호의로 보이지만, 동시에 관계를 유지하거나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려는 계산이 함께 작동할 수 있다. 협력 역시 공동의 이익을 위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선택일 수 있다. 결국 인간은 이타성과 이기심을 구분해서 사용하는 존재가 아니라, 상황에 맞게 두 가지를 동시에 운용하는 존재에 가깝다.

개인적으로는 이 해석이 불편하면서도 유용하다고 느껴진다. 다정함이 어떤 맥락에서 작동하는지 읽어낼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관계를 맺을 때 감정만으로 판단하기보다, 그 안에 흐르는 이해관계를 함께 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그래야 기대와 실망의 간극이 줄어들고, 더 현실적인 신뢰가 형성될 수 있다.


<다정함의 배신>은 인간이 서로를 위하는 존재라는 통념을 정면으로 흔든다. 협력과 연대가 언제나 선한 결과를 낳는다는 믿음 뒤에 숨겨진 구조를 보여준다. 인간은 협력을 통해 생존해 왔지만, 그 과정에서 권력과 이익을 재배치하는 방식 역시 함께 발전시켜 왔다. 겉으로는 상호 이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특정 집단에게 더 많은 자원이 집중되는 형태가 반복되어 왔다는 점을 드러낸다.

다정함이 도덕적 미덕으로만 기능하지 않는다는 분석은 흥미롭다. 친절과 배려는 관계를 부드럽게 만드는 동시에, 상대를 통제하는 수단으로도 작동한다. 누군가에게 베푼 호의는 보이지 않는 빚으로 남고, 그 빚은 선택의 자유를 제한하는 장치가 된다. 이 책은 그러한 메커니즘을 구조와 전략의 관점에서 설명한다. 인간은 선의를 표현하면서도 동시에 이익을 계산하는 존재이며, 두 가지는 충돌하지 않고 공존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또 불평등이 형성되는 방식도 새로웠다. 그것은 노골적인 강압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오히려 협력과 신뢰라는 가치가 강조될수록, 그 틀 안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환경이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공동체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명분 아래 자신이 처한 위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고, 그 과정에서 구조적 격차는 더욱 공고해진다. 이런 관점은 우리가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좋은 사회의 기준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신뢰와 연대는 허상에 불과한가. 저자는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냉정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감정에 기대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권력과 이해관계의 흐름을 인식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진정한 연대는 서로의 취약성을 이용하지 않는 구조 속에서 가능하며, 이를 위해서는 투명성과 책임이 확보되어야 한다.

이 책은 인간을 비관적으로 묘사하려는 의도가 없다. 오히려 인간을 보다 정확하게 바라보려는 시도에 가깝다. 우리가 스스로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해석할 때, 그 틈을 통해 기만과 착취가 스며든다. 반대로 인간의 복합적인 본성을 인정할 때, 관계는 더 건강한 방향으로 재구성될 수 있다. 다정함을 의심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것이 어떤 조건 속에서 작동하는지를 살펴보라는 의미다.

우리는 정말 서로를 위해 행동하는가,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어 하는가. 그 질문을 외면하지 않을 때, 비로소 신뢰와 연대는 감정의 언어를 넘어 현실의 힘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